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수박의 비밀

맛 좋고 당도 높은 여름철 대표 과일, 수박. 우리나라에서 인기 많은 과일 중 하나로 손꼽히지만 원산지는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먹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처럼 붉은 과육과 다른 모습의 옛날 수박이 있음을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수박의 어원은 무엇인지, 또한 수박의 원산지 남아프리카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국가로 어떻게 전래했는지 등에 대해 낱낱이 알아보자.

옛날 수박은 지금처럼 붉은 과육이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수박의 모습은 초록색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외관과 붉은 과육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옛날 수박은 오늘날처럼 붉은 과육이 많지 않았으며 17세기 서양화 등에서 품종 개량 이전의 수박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수박은 한자로 ‘서과(西瓜)’로 표기하는데 이는 ‘서쪽에서 온 박’을 의미한다. 원래 있었던 박은 ‘동과(同瓜)’로 부르며 수박을 의미하는 서과와 구분하고자 했다. 한국어 ‘동과’는 이후 ‘동아’로 불렸고 중국어의 경우 겨울에 수확한다는 이유로 표기를 ‘동과(冬瓜)’로 변경했다.

동아시아사 곳곳에서 발견된 수박의 흔적들

여름철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수박은 사실 원산지가 남아프리카라고 전해진다. 약 4000년 전부터 이집트에서 재배가 시작됐으며 이는 이집트 벽화에서 묘사된 수박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수박은 ‘오아시스의 길’로 불리는 ‘실크로드’를 통해 동쪽 중앙아시아로 전파된다. 현재 키르기즈 공화국 북부에 위치한 5세기부터 11세기까지 번성한 오아시스 길의 천산 산맥 서부 북쪽 기슭 교역 도시에 있는 ‘아크 베심 유적’으로 알 수 있다.

시간이 흘러 679년 당나라가 서방 진출의 거점으로 이곳에 719년까지 존속하는 쇄엽진성을 건설하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보리, 밀, 기장, 좁쌀(이상 볏과), 렌즈콩, 참깨, 포도, 사과, 멜론 등의 씨앗과 함께 수박씨 2점이 출토됐는데 이로 말미암아 7세기 말에서 8세기 중엽 사이에 수박이 이 지역으로 전래했음이 확인됐다. 또한 이 시기에 ‘당삼채’로 만든 수박의 모습을 현재 중국 섬서성 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알 수 있다. 당삼채란 녹색, 황색, 갈색의 3가지 색을 이용한 도자기 작품으로 이 시기 서역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10세기 후반 서(西) 위구르(천산 위구르) 제국의 고승(高僧)이 돈황(敦煌)의 지인 3명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수박의 흔적이 발견된다. 그 편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지금 심부름꾼을 보내 편지와 함께 약소하지만 특산품인 ‘서쪽 지역의 양도[西地瓤桃]’ 3개를 한 주머니에 넣어 보내니, 각자 하나씩 받으십시오. 지금부터 심부름꾼이 갈 테니 이렇게 간단하게 편지를 부칩니다.”라고 적혀있는데 이 서쪽 지역의 양도가 수박을 가리킨다. 편지의 내용을 통해 10세기 서 위구르 제국 사람들에게도 수박이 서쪽에서 전해온 귀중한 작물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1099년 경에 조성됐으며 중국 적봉시(츠펑시) 오한기 양산에서 요나라 무덤이 발견됐다. 이 무덤 벽화에 무덤 주인의 연회 모습이 그려져 있었는데 연회에 차려진 과일 중 수박이 확인되기도 했다. 그리고 1330년에 몽골 황제의 양생과 보양을 위해 영양학 전문 서적인 『음선정요(飮膳正要)』이 간행됐다. 이 서적에서도 “수박은 맛이 달고, 성질은 밋밋하며 독이 없다. 주로 갈증을 해소하는 효능이 있고 가슴의 열을 치료하며 술독을 해독한다”며 수박의 특징과 효능을 언급한 바 있다.

고려시대, 드디어 한반도에도 수박이!

남아프리카에서 처음 재배된 수박이 동아시아로 어떠한 경로를 통해 전래됐고, 또한 어떤 유적에서 수박의 흔적이 남아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수박이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래되는 과정은 어떠했을까? 수박의 한반도 전래와 관련된 기록은 적은 편이기에 최근 기록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표적으로는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그림인 초충도의 일부에서 수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일본의 경우 1376년 경에 완성된 승려 기도 슈신의 문집인 『쿠게슈(空華集)』에 수박을 읊은 시가가 있음이 확인됐는데 여기에 수박이 전래된 경로가 중국(원나라) → 고려 → 일본 순이었음으로 추측하면 늦어도 14세기에는 고려에 수박이 전래됐음을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1123년에 완성된 서긍의 『고려도경(高麗圖經)』을 살펴보면 “고려의 토산품은 능금, 청리, 참외[瓜], 복숭아, 배, 대추 등이 있다”라고만 적혀있으며 수박의 언급은 없다고 한다.

이후 『세종실록』 중 세종 5년(1423) 음력 10월 8일 기록을 보면 “환관 ‘한문직’이라는 자가 주방을 맡고 있더니, 수박을 도둑질해 쓴 까닭에 곤장 1백 대를 치고 영해(오늘날의 경상북도 영해군)로 유배 보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조선시대의 유배형은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이다. 그렇다면 수박을 도둑질했다는 이유로 왜 이렇게 무거운 형벌을 내렸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이를 두고 크게 두 가지 추측이 존재하는데 첫 번째는 임금의 물건에 환관이 손을 댔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앞서 『음선정요』를 언급했듯이 당시 수박은 식품이 아니라 임금을 위한 약재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16세기 광해군 재위 시기로 넘어가 허균의 시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중 「도문대작(屠門大嚼)」을 봐도 “수박[西瓜]은 고려 때 홍차구(洪茶丘)가 처음 개성(開城)에다가 심었다. (중략) 충주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은데 모양이 동과(冬瓜, 동아)처럼 생긴 것이 좋다. 원주(原州) 것이 그 다음으로 좋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비록 『성소부부고』는 16세기의 기록이지만 수박이 13세기 고려에 전래되었다는 설명에 신빙성이 있음이 밝혀졌다.

지금까지 수박의 어원에서부터 시작해 처음의 모습, 원산지, 동아시아와 한반도에 전래된 경로 등 수박과 관련된 기록과 역사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수박을 기록한 여러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 흔적들로 말미암아 현재 우리가 여름에 일상적으로 먹는 ‘수박’이 사실은 동서 교류의 결과로 한반도에 전해진 작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이번 여름, 대부분이 알지 못했던 수박의 비밀을 안 채 수박을 더 맛있게 먹어보는 건 어떨까.

홍성민(동북아역사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