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의 붕괴인가, 잠깐의 불안인가 : 잃어버린 20년으로 보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
붕괴의 서막?
불과 1년 사이에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 급변했다. 결정적 원인은 부동산 가격의 반전이었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천정부지로 치솟던 부동산가격은 2022년 들어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낙폭을 키웠다. 섣불리 바닥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장이 조성되자, 부동산 가격은 앞으로 계속해서 상승한다는 의견이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에 일본과 마찬가지로 거품이 꺼질 때까지 부동산 가격은 폭락, 혹은 장기간 하락한다는 주장이 주류로 부상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1980~90년대 일본과 오늘날 한국 부동산 시장의 비교를 통해 질문의 단서를 찾아보자.
무분별한 돈 풀기와 부동산 버블의 형성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일본은 버블 경제의 시기를 맞이했다. 일본 역사상 최대 호황기로 불리는 이때의 부동산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했다. 전체 국토의 평균 가격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5배 이상 올랐다. 같은 기간 도쿄, 오사카, 나고야 지역의 상업지는 3배, 주택지는 11배 상승했다. 단적인 예로 1988년 약 1,600조 엔에 이른 일본 국토의 총 평가액은 미국의 4배를 넘었다. 버블이 정점에 도달한 1991년 도쿄의 땅값은 미국 본토 전체를 사고도 남았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폭등한 데에는 다음의 두 가지 원인이 결정적이었다. 첫 번째는 금융 완화 정책이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급등한 엔화 가치(1달러당 240엔 → 120엔)가 야기하는 불황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다양한 내수 부양 조치를 시행했다. 기준 금리 인하(5% → 2.5%), 대출 규제 완화, 금융 자유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두 번째는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대출이었다. 기업들이 직접 금융을 통한 자금 조달을 우선시하자 금융기관은 개인과 회사를 상대로 한 부동산 관련 대출을 급속히 늘렸다. 특히 은행권은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대출 심사를 간소화는 동시에 주택 담보 대출 비율을 120%로 확대하고 대출 이율을 경쟁적으로 낮췄다.
정부의 저금리 기조와 금융기관의 방만한 여신 운영에 의해 형성된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은 부동산 투기를 부추겼다. 시세 차익을 노리고 토지와 주택을 매입하는 행위가 성행했고 부동산가격은 연일 최고가를 경신했다. 대규모 차입금에 의존하여 부동산을 구입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찾아왔다.
급격한 유동성 회수와 부동산 버블의 붕괴
일본 경제의 호황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투기성 차입 자금으로 쌓아 올린 자산 시장의 거대한 모래성은 1990년부터 무너져 내렸다. 제일 먼저 거품이 꺼진 곳은 주식 시장이었다. 1989년 39,000포인트까지 상승한 닛케이지수는 1990년 23,000포인트로 떨어지더니 1992년에는 14,000포인트를 찍었다. 버블 붕괴는 시차를 두고 부동산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1991년 10.4%의 상승률을 기록한 전국 도시의 평균 지가는 1992년에 -1.8%로 전환되었다. 그해 6대 도시의 평균 지가는 15.5%, 상업용지는 15.2%, 주택지는 17.9%, 산업용지는 13.1% 하락했다. 실례로 1990년 1억 766만 엔이었던 도쿄 지역의 맨션가격은 1992년 8,373만 엔을 거쳐 1994년 5,796만 엔으로 폭락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 정부가 자산 시장의 거품을 차단하기 위해 금융 긴축 정책을 강력히 실시했기 때문이다. 우선 일본은행은 1990년 8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기준 금리를 2.5%에서 6%로 신속히 인상하고 연평균 10% 이상 늘린 통화 공급을 1992년에는 0.1%로 축소했다. 다음으로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재무성은 1990년 3월 부동산 대출 증가율을 총 대출 증가율 이내로 한정하는 총량 규제를 도입하여 사실상 부동산에 대한 신규 대출을 금지하고 주택 담보 대출 비율을 70%로 제한했다. 나아가 재무성은 1992년 지가세를 신설하여 토지소유자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고정자산세와 양도소득세의 과세표준을 인상했다.
시중의 유동성이 감소하고 이자 부담이 가중되자, 부동산 시장에는 매도 물량이 넘쳤다. 그러나 이를 받아 줄 사람이 없었다. 매수세가 실종된 가운데 호가는 계속해서 떨어졌고 한계 상황에 이른 급매물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다.
섣부른 예단의 금물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나타난 현상은 외형적으로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형성-붕괴될 때와 유사하다. 먼저 상승기를 살펴보면, 부동산가격이 과도하게 올랐다. 2014년 3분기 8.8배였던 서울 아파트의 평균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2021년 2분기에 18.5배로 급상승했다. 이는 버블이 최고 절정에 이른 1990년 도쿄 맨션의 PIR(18.12배)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음으로 하락기를 살펴보면, 인플레이션 억제와 맞물려 금융 긴축이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2021년 7월까지 0.5%에 불과했던 한국의 기준 금리는 2022년 말 3.25%로 인상되었다. 은행권 주택 담보 대출의 준거가 되는 코픽스는 2022년 1월 1.64%에서 11월 4.34%로 2.65배 상승했다.
그럼에도 일본에 견주어 한국 부동산 시장의 미래를 속단하기는 이르다. 두 국가의 부동산 시장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주택의 수급이다. 1973년 도쿄의 가구당 주택 수가 1호를 넘어선 일본의 주택 시장은 공급 과잉의 상태에서 버블이 형성되었다. 반대로 2021년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보급률이 각각 94.2%, 96.8%에 불과한 한국은 아직까지 과잉 공급을 걱정할 단계가 아니다. 두 번째는 대출 조건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에서는 주택 담보 대출 비율이 120%, 심지어는 200%에 이를 정도로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대출이 성행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LTV(주택 담보 인정 비율)가 최대 70%로 억제되는 동시에 DSR(총 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이 40~50%로 설정된 탓에 소득 수준을 넘어선 대규모 차입이 애당초 불가능하다. 세 번째는 투자 집단이다. 일본에서는 엔고로 인해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손쉽게 돈을 벌기 위해 자체·매입 부지를 활용한 부동산 개발에 몰두했다. 반면에 IMF를 계기로 기업의 과다한 부동산 보유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 이후 한국의 주요 기업은 부동산 수익보다 생산을 통한 이익 창출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처럼 일본과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구조가 다르다. 다만 급등세를 거쳐 급락세를 보이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한 국면에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위험 신호를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무시해서도 안 된다. 부동산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종합 대책과 주택을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 간주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명학 한국교원대학교 한국근대교육사연구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