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조각의 발전, 로마네스크 미술
비잔틴 미술 이후, 11세기 무렵부터 13세기 초까지 번성한 미술 양식을 우리는 로마네스크(Romanesque)라고 부릅니다. 11세기를 전후해 유럽 각지의 수도원들이 문화적 구심점을 하게 되었으며, 정치적 안정과 함께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함께 나타난 양식이죠. 원래 이 용어는 주로 건축에서 사용되었는데요. 이는 수도원 조직이 자신들의 높아진 권위와 역할에 맞는 건축물을 찾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11세기 후반과 12세기 유럽의 주요 건물들은 두꺼운 벽과 아치가 있는 고대 로마의 석조 건물과 매우 닮아 있는데요. 로마네스크라는 이름 역시 당시의 건축이 로마 건축에서 파생되었음을 가리키는 프랑스어 '로망(roman)’에서 나온 것이었죠.
로마네스크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절단면이 반원 아치를 이루고 있는 형태인 석조궁륭의 이용을 들 수 있습니다. 궁륭 역시 고대 로마시대부터 사용된 건축 양식 중 하나였는데요. 이는 입구 위를 일자형 석재로 덮는 방식과 달리 보다 넓은 입구에 걸쳐질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재 건축물과 달리 내화성이 뛰어나 화재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죠.
목조 지붕과 얇은 벽으로 이루어진 이전 시대의 교회 건축과 달리, 내구성을 높이기 위한 석조 지붕이 이용된 것도 로마네스크 건축의 특징입니다. 이런 변화로 인해 기둥과 벽은 무거운 지붕을 충분히 받칠 수 있을 정도의 두께로 보강되었으며, 창문은 가능한 한 작게 만들어지게 되었죠. 이런 변화는 이 시기의 건축물들이 탄탄하고 육중한 외관과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내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문맹이었던 대부분의 신자들을 위해 교회 곳곳에는 종교적 교리가 새겨진 조각이 설치되었습니다. 특히 입구 상단의 반원형 공간에 위치한 팀파늄(Tympanum)의 조각이 대표적인데요. 12세기경 조각가인 기슬레베르투스가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고 하죠. 그는 프랑스 오툉 지역의 생 라자르 대성당 출입문 상단의 ‘최후의 심판’을 조각했는데요. 이 조각에는 후광에 둘러싸인 채 하늘로 올라가는 그리스도의 모습과 천사들과 악마들이 벌거벗은 영혼들의 무게를 재는 장면, 악마들이 죄인의 영혼을 집어삼키고 죄인의 육신을 꼬챙이로 꿰고 있는 최후의 심판 장면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또한 하단에는 ‘지상의 잘못에 얽매인 자들은 이를 보고 두려움에 떨지니, 그들이 장차 이 같은 공포를 맞게 될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죠. 즉, 이 시대의 조각은 단순한 아름다움의 추구를 넘어 종교적이고 교훈적인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던 겁니다.
송아지 가죽인 우피지 또는 양가죽인 양피지에 새겨진 복음서 수사본도 중세 유럽 문화의 종교적 특성을 잘 보여줍니다. 아직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기에, 수사본을 만드는 것은 높은 비용과 정교한 노동이 요구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 전체보다는 복음서 일부분이 복사되었으며, 후원자의 지원을 받아 수도사 또는 수녀의 손에서 작업이 이루어졌죠. 수사본은 신의 말씀이 새겨진 것으로 간주되었기에 사람들은 아름다운 장식을 곁들여 그 내용을 부각시키고자 했습니다. 표지에는 금박이 입혀졌고, 값진 보석으로 장식된 경우도 있었죠. 이러한 이유로 수사본은 좁은 의미로는 삽화 예술을, 넓은 의미로는 서구 문명 전반의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