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첫 장, 고조선은 어떤 나라인가?
고조선(古朝鮮)은 한국사의 시작을 연 국가입니다. 그 만큼 관심도 많고 논란도 많지요. “단군신화가 사실인가?”라는 질문이 대표적이지요. 여기에서는 고조선 역사를 이해하는 체계적인 단계를 안내해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나라 이름부터 알고 갑시다. 고조선은 옛(古) 조선(朝鮮)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잠깐! 흔히 ‘옛 조선’이라고 하면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옛 조선’이라고 했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나 이 표현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인 고려시대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1281)에 이미 등장한답니다. 위만조선과 그 이전의 조선을 구분하기 위해 옛 조선(고조선)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지요.
그럼 시간순서대로 고조선의 역사를 한 번 살펴보도록 할게요. 고조선 건국신화인 『삼국유사』의 구절을 보면서 시작해보지요.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있었는데,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매우 부러워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아차려 삼위 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하였다(弘益人間).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서 이 곳을 신시(神市)라 불렀다. 그는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곡식·수명·형벌·선악 등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리고 교화시켰다(在世理化). 이 때 곰과 호랑이가 같은 굴에 살았는데, 환웅에게 찾아와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환웅이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은 약속한 지 3·7일 만에 여자가 되었으나, 호랑이는 이를 지키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당의 요임금이 즉위한지 50년인 해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고 하였다.…이후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이 즉위한 때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이 되었으니 그 나이가 1,908세이다.
『삼국유사』
고조선을 개국한 시조 ‘단군’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단군왕검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환웅과, 곰이 여인으로 변한 뒤 혼인을 하여 낳은 인물이죠. 그리고 그가 조선을 개국합니다. 이후 통치를 하다가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해주었고 단군은 자리를 옮겨 지내다가 산신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일연은 단군과 기자의 조선을 합해서 고조선으로, 그 이후의 조선을 위만조선으로 구분했던 겁니다.
한편 『삼국유사』와 비슷한 시기에 저술된 이승휴의 『제왕운기』(1287)에는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이라 해서 고조선을 3개로 구분하여 삼조선(三朝鮮)으로 구분했어요. 이것이 우리가 고조선을 세 개로 구분해서 이해하게 되는 지식의 기초가 됩니다.
고조선 역사의 내용은?
단군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된 국가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청동기는 ‘금속’을 주조하고 합금해 낼 수 있는 기술을 익힌 인류가 이를 기반으로 삶을 영위한 시대에요. 그래서 단군조선의 시기가 대체로 ‘청동기시기’와 때를 같이 한다고 이해합니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또 『삼국유사』의 기록에도 나타납니다.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고조선 건국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추출 해 볼 수 있는 내용들은 ①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사상 ②홍익인간의 가치(인본주의) ③지배, 피지배계급의 존재 ④바람과 비, 구름의 존재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농경사회의 존재 ⑤곰과 호랑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토테미즘의 존재 ⑥단군왕검의 명칭을 통해 알 수 있는 제정일치사회 ⑦북방 유이민의 남하와 토착민의 결합 등입니다.
위와 같은 요소들을 통해 단군신화의 내용은 그 자체로서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대체로 청동기시대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고조선의 성립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어요. 그렇다면 단군신화의 내용은 사실일까요?
‘신화’를 가지고 ‘실존여부’를 따지는 것은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화는 비유와 상징의 맥을 따라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실인가 거짓인가를 따지는 접근방식은 잘못된 것이죠. 다만 우리는 앞서와 같이 그 신화 속에서 얼마나 역사적으로 근접한 사실을 추출해 낼 수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다음은 기자조선을 한 번 볼까요. 기자라는 인물은 중국 은(상)나라 시기에 유명한 현자(賢者)였습니다. 기자는 은(상)나라의 폭군 주왕을 피해 미친 척 하다가 옥에 갇혔던 적이 있습니다. 이후 주나라 무왕이 은(상)나라 주왕을 정벌 한 뒤에 기자를 풀어주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이 기자가 조선에 봉해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기자동래설’의 근거입니다. 그런데 기자는 정말 동쪽으로 온 것일까요? 이 기자동래설의 원천은 중국 고대 서적인 『상서대전』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과연 믿을 만 한 책일까요?
역사학적 방법론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관련 사료가 ‘해당 시대를 오롯이 반영하고 있는가’입니다. 그런데 『상서대전』에 기록된 해당 내용은 『상서대전』의 원전이 되는 『상서』라는 책에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상서』 이후 한나라 시대를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가필되고 윤색되면서 만들어진 내용이 바로 ‘기자동래설’입니다. 현재는 기자의 존재를 긍정하는 입장은 거의 없습니다. 문헌자료로서의 기자조선에 대한 기록은 대체로 한나라 이래 후대에 만들어진 허구로 인식되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위만조선을 볼게요. 위만은 중국의 유명한 역사가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 “조선의 왕 만(위만의 이름)은 옛 연나라 사람이다.”라고 되어있어요. 위만이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B.C,194)고 기록되어 있지요. 당시 중국은 혼란기였고 이 틈을 타 많은 사람들이 조선지역으로 망명해왔어요. 위만도 그 중 한명입니다.
앞서 단군조선이 청동기를 기반으로 했다면 이 시기는 철기시대로 진입했죠. 선진 철기문물을 가진 위만이 조선으로 망명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준왕은 위만을 깊이 신임해서 조선지역의 일부를 주면서, 조선을 지켜주길 바랬죠. 그런데 그것도 잠시 준왕은 위만에게 배신당하고 이내 왕위를 빼앗기게 됩니다.
위만은 ‘옛 연나라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왕위를 빼앗은 이후에도 ‘조선’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했고 자신이 데려온 사람들이 아닌 조선지역 사람들을 관리로 선발해서 등용했어요. 그리고 강력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주변 세력을 복속시키면서 세력을 확장해나갔습니다. 또한 위만조선 남방의 정치세력인 진(辰)과, 중국의 한나라와 중계무역을 전개하며 국세를 불려나갔죠.
위만조선시기에는 왕(王), 태자(太子), 비왕(裨王), 상(相), 대신(大臣), 경(卿), 장군(將軍) 등의 명칭이 나타나고 있어, 왕을 정점으로 하여 태자 등을 포함한 왕실이 있고, 부왕적(副王的) 존재인 비왕(裨王)이 존재했습니다. 대신(大臣)으로 지칭되는 상·장군 등이 중앙 통치의 주요 직능을 분담하였던 것도 알 수 있지요. 또한 상(相), 경(卿)의 존재를 통해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왕의 통치에 포섭되어 있었던 지방의 유력자를 상정할 수 있었어요. 장군(將軍), 패수상군(浿水上軍)과 패수서군(浿水西軍)등의 명칭을 통해 군대 및 조직화된 군사체계가 있었음을 알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이와 같이 고조선을 세 개 단계로 이해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네요. 아까 기자조선 단계가 허구라고 해놓고 계속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것 때문에 학계에서도 많은 논쟁이 있었고, 그 결과 지금은 대체로 『삼국유사』의 인식처럼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으로 구분하거나, 아예 이 세 조선을 다 합쳐서 고조선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