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은 개인 SNS에 이 책에 대한 짧은 감상평을 남깁니다.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이며, 우리 외교가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다. 언론이 전하는 것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 세상사를 언론의 눈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눈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현재 혐오의 감정은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의 근원을 중국으로부터 찾는 데에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이 어디로 가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에게 중국은 어떤 의미일까요? 물론 '혐오'와 같은 선입견은 걷어내고 말이죠.
📃 한 장 읽기
냉전 시기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의 세계체제는 '동구'의 공산권을 배제하는 체제였습니다. 더불어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국가' 간의 통합이 촉진되었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를 비롯한 중국이 적대국가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70년대, '데탕트 국면'에서 미국의 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저가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어 냈습니다. 더 나아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미·중국 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경제교류가 시작되면서 분위기가 역전되었다는 거죠.
하지만 미국은 곧 대규모 인구를 앞세운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미국의 경제력을 위협하는 수준에 다다르자, 미국이 또다시 새로운 냉전 시기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전방위로 봉쇄하려고 하고 있다는 겁니다.
저자는 중국이 문제여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중국봉쇄 전략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문제는 미국의 전략이라는 겁니다.
이제 “유럽과 미국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탈유럽중심주의’와 ‘탈식민주의’ 시각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바라봐야 할 시점이라고 충고하고 있죠.
우리는 이제 “짱깨”라는 단어에 집중해 봐야 합니다. 더불어 이 용어의 역사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1894년 청일전쟁 전 중국인을 혐오하지 않던 조선인들이 중국의 청일전쟁 패배 이후 중국인에 대한 인식을 달리했다는 겁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중국인을 열등하고 미개한 국민”이라는 일종의 ‘프로파간다’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후 해방과 미군정의 통치, 그리고 한국전쟁에서의 ‘중공군 참전’, 마지막으로 반공주의 확산에 따라 중국에 대한 혐오감이 증폭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에 말미암아, 기저에 깔려 있던 중국에 대한 혐오 감정이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미중 충돌’의 가속화로 인해 더욱 커져만 간다는 말이죠. 이 혐오의 감정은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의 근원을 중국으로부터 찾는 데에까지 나아간다고 경고합니다.
'무조건 중국이 나쁘다'는 말로 이어지죠. "중국발 미세먼지", "우한 바이러스", "중화패권주의"등의 용어들이 대표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을 앞으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우선 선입견을 걷어내고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관계를 살펴 보면서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