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이 콩밭이라 죽어버린 철학자? 피타고라스!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많은 분들이 이걸 떠올리셨을 것 같아요. 바로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줄기차게 배웠던 공식, 바로 피타고라스의 정리 말이죠. 학교를 오래전에 졸업한 분이라도 이 공식은 분명 기억나실 거예요. 왜냐고요? 초∙중∙고 매 학년을 넘어갈 때마다 배웠거나 되새겼던 공식이거든요. 즉,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수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공식이라는 얘깁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하는 방법은 10가지도 넘는데요. 뭐, 지금은 철학사를 소개하는 시간이지 수학을 배우는 시간은 아니니까, 이건 궁금하면 각자 찾아보는 걸로 합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익숙한 것과는 별개로, 피타고라스는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기원전 580년에서 570년 사이 즈음에 태어나 기원전 500년에서 490년 즈음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사모스 섬이었는데요. 이곳은 헤로도토스가 최초의 도시 중 하나라고 설명한 곳으로, 철학자 에피쿠로스나 수학자 아리스타르코스 등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돌아다니기를 좋아해서 밀레토스는 물론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심지어 인도까지 여행했다고 하는데요. 이중 밀레토스를 방문했다는 사실 외에는 그 내용을 완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어쨌든 기원전 530년 즈음이 되자(정말 확실한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죠?), 피타고라스는 남부 이탈리아에 위치한 크로톤으로 이동하여 종교적인 학파를 세웁니다. 당시 그곳의 사람들은 로크리인들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뒤 크게 낙심한 상태였습니다. 공공의 사안에는 무관심했고, 대부분이 쾌락과 비도덕적 생활에 젖어 있었죠. 피타고라스는 이들을 특유의 카리스마와 언변으로 설득합니다. 그리고 곧 수많은 민중을 검소한 삶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알려지죠.
문제는 피타고라스와 이들 공동체의 주된 규칙 중 하나가 ‘침묵’이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규칙을 너무나도 잘 지키는 사람들이었던 탓에 그들의 학설 중 피타고라스 본인이 가르친 것은 무엇인지, 이후에 제자들이 알아낸 것은 어디까지인지 등도 모두 추측에 근거할 뿐입니다. 게다가 많은 종교단체들이 그러하듯, 피타고라스의 제자 혹은 추종자들 또한 그에 대한 높은 충성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체의 이론과 발견은 피타고라스의 공으로 돌아갔으며, 그에 관한 수많은 전설과 신화가 남겨졌죠.
이야기가 나온 김에 피타고라스 학파의 규칙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죠.
- 콩을 멀리할 것 : 생식기의 모양과 닮았기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지죠. 사실 이런 식이면 뭘 먹어야 할지, 먹을 게 있긴 한지 모르겠네요.
- 떨어진 것을 줍지 말 것 : 이건 얼마 전 3초 안에 주우면 된다는 사실이 얼마 전에 밝혀졌죠.
흰 수탉을 만지지 말 것 : 치킨이 먹고 싶을까봐 그런 게 아닌가 싶네요. - 빵을 쪼개어 나누지 말 것 : 이건 정확히 말하면 조각내어 부스러뜨린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빵을 가운데 두고 친구들이 모였는데요. 빵을 조각내는 것을 친구들을 갈라놓는다거나 전쟁에서 비겁한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빗장을 넘지 말 것
- 철로 불을 젓지 말 것
- 한 덩어리 빵을 전부 다 먹지 말 것 : 자르지도 말고, 다 먹지도 말라니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 화환의 꽃을 뜯지 말 것
- 말 위에 앉지 말 것
- 심장을 먹지 말 것
- 큰 길로 다니지 말 것
- 제비가 지붕을 나눠쓰게 하지 말 것
- 냄비를 불에서 꺼냈을 때, 재 속에 냄비 자리를 남겨 두지 말고 그 자리를 저어서 없앨 것
- 불빛 곁에서 거울을 보지 말 것
- 침상에서 일어날 때는 침구를 말고, 주름을 펴 잠자리의 흔적을 남기지 말 것
어떤가요? 우리가 그동안 상상한 수학적이고 이성적인 피타고라스에 관한 상상이 한 번에 깨어지는 규칙들이죠? 아무튼 피타고라스 교단은 오랜 기간 크로톤과 인근 지역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어찌나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는지, 그 교단으로 하여금 크로톤이 주변 지역을 지배할 수 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기원전 510년경, 퀼론과 니논을 중심으로 반대파가 결집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곧 선동을 통해 피타고라스와 그의 학파를 추방합니다. 결국 피타고라스는 남부 이탈리아의 또다른 지역인 메타폰티온으로 대피한 뒤 몇 년이 지나 사망하게 됩니다.
이 사망과 관련해서도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요. 콩과 관련되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피타고라스가 활동하던 당시, 그리스는 귀족파와 민주파가 대치하고 있었는데요. 피타고라스는 이중 귀족파에 속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타고라스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어느 귀족의 집에 교류 차원에서 모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알게 된 민주파 세력이 그 집에 불을 질러버렸는데요. 모두 불타는 집에서 빠져나왔지만 단 한 명, 피타고라스만 나오기를 거부하고 불타 죽기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 집 주변이 전부 콩밭이어서 도저히 가로질러 도망갈 수 없이 때문이었다고 하고요. 잘 나가던 교주의 죽음치고는 조금 싱거운 게 사실이긴 하죠.
그의 사후 피타고라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습니다. 동시대 철학자인 엠페도클레스는 그가 죽고 몇 년 뒤 ‘피타고라스는 탁월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실로 방대한 사상을 섭렵했으며, 온갖 지혜로운 작품들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인물’이라고 평가했으며, 헤라클레이토스는 반대로 그를 ‘사기꾼의 원조’ 또는 ‘여기저기서 골라낸 책에서 조합한 것들을 자신이 발견한 진리처럼 떠벌린 현학적이며 기만적인 인물’이라고 비난했죠. 그가 철학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철학과는 거리가 먼 그저 샤먼에 불과했다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가 분명 수학사와 철학사에 굵직한 이정표를 남긴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의 이론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시간 관계상 다음 시간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