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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리치와 동서양의 ‘정중한’ 만남
흔히들 르네상스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인물인 ‘마테오 리치’ 역시 다 빈치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르네상스 프리스트(priest, 사제)’로서 활약한 바 있다. 중국으로 건너가 개신교 선교 활동을 펼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신부 마테오 리치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리치만의 독특한 선교 방식이었던 ‘적응주의’가 무엇이며 이러한 적응주의가 선교 활동에서는 어떻게 발현됐는지도 함께 알아보자. 다방면의 지식에 능통했던 언어 천재, 마테오 리치 도입부에서 언급했듯이 마테오 리치 신부는 명·청 시기 중국 천주교사에서 가장 걸출한 인물로 손꼽힌다. 우선 리치는 언어 천재였다고 한다. 서양의 선교사들이 중국에 왔을 때 초기엔 사실 중국어 익히는 일이 커다란 숙제였다. 그러나 리치는 서양인으로서는 특히나 어려웠을 중국어를 단시간에 잘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어려운 고전 유가 경전을 읽고 번역까지 할 정도로 언어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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