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사용설명서 Part 1 | 인간이 ‘한정판’에 목숨을 거는 이유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이 이렇게 묻곤 합니다. “아빠, 포켓몬빵 사오셨어요?” 그러면 저는 최대한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합니다. “어쩌지.. 보이는 가게마다 들렀는데 없더라고.” 하,, 힘듭니다. 대한민국의 아빠들 파이팅.
한창일 때보다는 그 열기가 조금 식은 듯하지만, 그래도 여전한 것 같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포켓몬빵”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15만 건 이상 존재하니 말이죠. 사실 이 제품은 무려 20여 년 전에 이미 출시되었습니다. 그랬다가 이번에 재출시된 건데요. 왜 우리는 포켓몬빵에 이렇게까지 열광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 보면 NFT라는 것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자, 지갑 열 준비됐다
1999년 11월 20일자 뉴스에서는 당시 큰 인기였던 포켓몬빵의 주 소비층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제품에 들어 있는 스티커, 띠부띠부씰만 갖고 빵은 버리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뉴스에서 기자는 이렇게 리포트를 합니다. “쓰레기 봉투에서 먹다만 빵이 쏟아져 나옵니다. 멀쩡한 빵을 한 입도 채 먹지 않고 버린 사람은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입니다. 돈을 주고 산 빵을 아예 슈퍼마켓에 두고 가기도 합니다.” 당시는 대한민국을 강타한 IMF 구제금융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던 시기였던 만큼 먹거리를 버린다는 건 어른들이 보기에 혀를 찰 일이었겠죠.
당시의 유행은 20년도 더 지난 지금, 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당시에는 발품을 팔아 가게를 순회하며 빵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스마트폰의 앱을 활용해 각 매장의 재고를 확인한 후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용돈을 아끼고 아껴 빵을.. 아니, 스티커를 사모았던 어린이들은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되어 그 옛날 성취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포켓몬빵 정도는 얼마든지 박스 단위로 사주겠노라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포켓몬빵 열풍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기록을 찾아보니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는 1999년 여름부터 SBS에서 방영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보편화된 때도 아니었던 터라 불법으로라도 캐릭터의 이미지를 다운받아 저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 영상을 찾아볼 수도 없었죠. 그렇다 보니 최정상 인기 애니메이션과 관련한 ‘거의 유일한 굿즈’로서 어린이 팬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했던 게 아니었을까요.
희귀 운동화를 거래하는 등 요즘 리셀(Resell) 시장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죠. 그런 것을 보면 인간의 수집 욕구는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역사 속 수많은 전쟁을 보면 승리한 쪽은 패배한 쪽으로부터 ‘전리품’을 챙기곤 했습니다. 패배한 쪽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물건을 빼앗는다는 의미 외에도 이것 또한 일종의 수집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사람들은 다양한 유형의 물건을 끊임없이 갈망하며 수집해왔습니다.
《NFT 사용설명서》에는 수집과 관련해 재미있는 사례가 하나 등장합니다. 비니 베이비스(Beanie Babies)라는 봉제 인형에 대한 건데요. 이 인형의 제조사인 타이(Ty Inc.)는 1993년에 첫 출시를 하면서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희소성’이라는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대량 판매 방식의 일반적인 유통 경로가 아닌, 소규모 소매점에 조금씩만 공급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죠. 그렇다 보니 원한다고 해서, 돈이 있다고 해서 가질 수 없는 상품으로 포지셔닝되었습니다. 포켓몬빵 제조사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포켓몬빵을 구하기 힘든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타이는 비니 베이비스의 유통량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일부러 잘 팔리는 인형의 생산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불량 인형을 몰래 유통해 수집가들을 자극합니다. 당시는 온라인 거래 채널인 이베이(eBay)가 급부상하던 때이다 보니 이 현상을 부채질했고, 단돈 5달러에 불과한 인형의 재판매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게 되었죠. 일례로 상품명이 잘못 인쇄된 인형은 무려 1만 달러에 판매되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NFT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포켓몬빵이나 비니 베이비스의 사례를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집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요소에는 투자, 투기, 정서적 애착, 나만 뒤쳐지는 것 같은 강박감(FOMO, Fear of Missing Out)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핵심은 희소성입니다. 무엇을 수집하든 구하기 힘든, 수량이 한정된, 희귀한 것이어야 그 가치가 높아지고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나 이거 갖고 있는데. 넌, 없어?”라고 자랑하며 상대방의 속을 긁을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수집품의 가치는 수요에 따라 결정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주고 갖기를 원할수록 가격은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은 시장이 결정합니다.
📃가가, 가가?
그런데 말입니다. 수집의 대상이 디지털 형태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우리가 흔히 NFT라고 하면 디지털 형태의 예술 작품을 떠올리게 됩니다. 거액으로 거래되어 언론이 떠들석하게 다뤘던 NFT가 대부분 예술 작품이었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그런 디지털 형태의 이미지나 동영상을 왜 굳이 거액을 지불하면서까지 소유하려는 것일까요? 손가락 두 개를 이용해 컨트롤 + C, 컨트롤 + V 두 동작을 하는 것만으로도 파일을 똑같이 복사할 수 있는데 말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NFT에 가치를 부여하는 기술적 요소가 등장합니다.
전통적인 미술계와 수집가들을 괴롭혀온 가장 큰 이슈는 바로 작품의 ‘진위’ 여부였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작가를 소환해 “이거, 진짜 당신이 만든 거 맞아요?”라고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 때문에 감정사 같은 전문가를 통해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 유명 패션 플랫폼인 무신사와 명품 중고 거래 플랫폼인 크림 사이에 벌어진, 이른바 ‘멸망전’으로 이 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았습니다. 무신사에서 판매한 고가의 티셔츠가 크림에서 가품 판정을 받자 둘 사이에서는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죠. 명품 거래에서는 진위 여부가 중요하기에 양측은 사활을 걸며 대응했고, 결과적으로 제조사에서 크림의 손을 들어주며 무신사로서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불가능 토큰’으로 번역되는 NFT(Non Fungible Token)는 무슨 이유로 대체 불가능할 수 있는 것일까요? 다이아몬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이아몬드는 크기, 색상, 투명도, 컷이 모두 다릅니다. 그렇기에 만약 여러분이 어떤 다이아몬드를 구매했다면 그것은 다른 다이아몬드와 교환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NFT는 디지털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최대 공급량을 1로 설정했기에 고유하고 대체 불가능한 속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이 전제는 어느 누구, 또는 어떤 기관이 관할 권한을 가지지 않고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동일한 정보를 공유해 조작할 수 없는 시스템을 통해 담보됩니다.
(물론 최대 공급량이 1을 초과하는 NFT도 존재합니다. 이를 ‘멀티토큰 NFT’라고 하는데요. 《NFT 사용설명서》에서 말하는 NFT는 이러한 형태를 포함하지 않으므로 논외로 하겠습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상화폐에 사용되는 기술인 블록체인, 코인과 토큰의 차이, NFT를 발행하는 민팅 등의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점점 많은 사람들이 NFT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다양한 방향으로 쓰임새가 나타날 수 있으며, 투자 수단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음과 동시에 새롭게 떠오르는 개념이기에 리스크 또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정도만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한창 이 글을 정리하던 중 “코인계 리먼브러더스 사태”라고 할 만한 초대형 뉴스가 터졌습니다. 바로 ‘테라’와 ‘루나’라는 한국산 가상화폐의 가치가 폭락한 것이죠. (관련 뉴스 : 전 세계 주요 코인거래소, 루나·테라 거래중단·상장폐지) 일주일 새 증발한 두 가상화폐의 시가총액이 무려 58조 원에 달합니다.
콜린스 영어 사전으로 유명한 영국의 대형 출판사 하퍼콜린스는 2021년 올해의 단어로 NFT를 뽑을 만큼 시장의 기대치가 높아져 있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2022년이 되면서 NFT 시장은 위기라는 말이 나올 만큼 침체되어 있긴 했습니다. 그럼에도 미래 가능성을 중심으로 장밋빛 원고를 작성하고 있던 저에게는 전반적인 방향 수정이 불가피한 사건이었죠.
이번 시간에는 인간의 수집 욕구를 바탕으로 NFT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았다면 다음 시간에는 조금은 냉정하게 NFT의 현주소를 바라보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ditor. 🌇노을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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