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어떻게 지중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이탈리아 반도의 한 도시 국가로 시작했던 로마는 어떻게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 되었을까요? 먼저 지리적 이점을 이야기해 볼 수 있습니다. 트로이아 전쟁에서 패하고 도망친 아이네이스는 이탈리아의 라티움(로마 시 주변의 평야지대)에 정착합니다.
이탈리아 반도는 문명의 형성에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북쪽의 알프스 산맥과 지중해는 자연 방어막 역할을 해주었고 평야가 많아 밀을 생산하기에 수월했습니다. 선박과 거주시설을 건축하기 위한 산림자원과 구리나 철광석 같은 광물 자원도 풍부했죠. 또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중심에 위치했으며 7개의 언덕과 티베리스 강 덕분에 방어에도 유리했습니다. 자원이 풍부한 이탈리아 반도를 차지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던 거죠.
나아가 로마는 우수한 정치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 그리스 출신의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로마 공화정을 왕정, 귀족정, 민주정의 장점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정치 체제라고 극찬하기도 했죠. 사실 로마는 왕정으로 시작했어요. 기원전 753년경 아이네이스의 16대손으로 알려진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하면서 첫 번째 왕이 되었죠. 이때도 로마의 사회는 평민과 귀족으로 이루어졌으며 각각 민회와 원로원으로 대표되었습니다. 민회는 왕을 선출할 권한을, 원로원은 국정에 자문할 권한을 지녔습니다. 왕권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제도는 곧 유명무실해졌지만, 기원전 509년 로마인들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합니다.
공화정은 왕의 자리를 1년 임기의 콘술, 즉 정무관으로 대체했습니다. 평민들은 민회를 통해 정무관을 선출하고 입법, 사법, 주요 국사를 결정할 권한을 가졌습니다. 귀족들은 정무관 피선거권을 독점했고 원로원을 통해 국정운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기원전 367년부터는 평민도 정무관에 선출되어 귀족계층에 편입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시기부터 로마 공화정은 귀족과 평민의 갈등을 넘어 ‘원로원과 로마인민(S.P.Q.R=Senatus Populusque Romanus)’으로서 일체감을 형성하게 됩니다.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가져가는 데 결정적이었던 사건은 기원전 264년 발발한 포에니 전쟁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반도를 평정하고 다른 도시들을 동맹에 편입시키는 데 성공한 로마는 반도 남부에 있는 시칠리아 섬 진출을 노렸습니다. 하지만 이 섬은 튀니지 지역의 강대국인 페니키아인들의 나라 카르타고의 영향권에 있었죠. 시칠리아 섬 내부의 갈등이 로마에게 기회가 되었고 로마는 카르타고를 꺾고 이탈리아 반도 주변 섬들의 지배권을 확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로마와 카르타고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218년 스페인 지역에서 카르타고 군대를 통솔하던 한니발은 피레네와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본토로 진군했던 것이죠. 전투의 귀재였던 한니발에게 로마군은 연이어 패하지만, 이탈리아 내부 동맹국들의 굳건한 지지에 힘입어 전세를 역전시킵니다. 로마는 기원전 149년 카르타고를 침공해 완전히 파괴시킴으로써 마침내 지중해의 절대 강자 위치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