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의 출발점, 고대 그리스 미술
그리스 미술은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경 로마에 정복되기까지 약 9세기에 걸쳐 번영했습니다. 그리스와 남부 이탈리아, 에게 해 등지가 주요 무대였죠. 초기에 그리스인들은 인접한 고대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이집트인들이 오랜 기간 자신들이 정한 양식과 규준을 유지하며 이상향을 추구한 것과는 달리, 그리스인들은 보다 실제에 가깝고 생생한 묘사를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스 미술은 양식 변화에 따라 그 시기를 크게 넷으로 나눕니다. 우선 첫 번째 단계는 기원전 1000년 말부터 700년경까지로 ‘기하학적 시기(Geometric period)’라고 불리죠. 기원전 620년부터 페르시아 전쟁이 종결된 이듬해인 480년까지는 ‘아르카익 시기(Archaic period)’라고 불리며, 미술은 물론 사회와 정치, 문화 전 분야에 걸쳐 최전성기를 이룬 기원전 480년부터 323년까지를 ‘고전기(Classical period)’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기원전 323년부터 146년까지의 시기, 즉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에 이어진 그리스 미술의 확대, 변화기를 ‘헬레니즘 시기(Hellenistic period)’라고 부르죠.
그리스 미술 초기에 해당하는 기하학적 시기는 이전 시기에 번성했던 미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초기에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문양과 패턴이 강조되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구체적이며 세밀한 묘사가 이뤄졌죠. 이 당시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도기에 그려진 그림, 즉 도기화입니다. 생활용 도기부터 장식용, 제사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기의 표면에 그림이 그려졌죠. 그려진 내용 역시 일상적인 풍경부터 신화와 영웅담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것이 그 특징입니다.
두 번째에 해당하는 아르카익 시기는 보다 다양한 기법이 개발되고, 발전한 시기였습니다. 형상에 유약을 발라 구워 검은색으로 표현한 ‘흑화식’ 기법과 형상 대신 배경을 검은색으로 표현한 적화식 기법이 대표적이죠. 이와 더불어 이 시기에는 아테네, 스파르타 같은 도시국가가 생겨났으며, 이집트에서 전수받은 기술로 만든 거대한 대리석 입상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리스 문화의 정수, 고전기를 향한 준비가 차근차근 이뤄졌던 거죠.
세 번째 고전기는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고전 서양 미술의 근간이 된 시기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과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 폴리클레이토스의 ‘창을 들고 가는 사람’ 등이 모두 이 시기의 작품이죠. 건물은 완벽한 비례와 이상적인 미를 갖추었으며, 조각상은 인체의 역동적이며 유기적인 움직임을 표현했죠.
이상적이고 조화로운 형태를 추구한 고전기와 달리, 헬레니즘 시기는 보다 자유롭고 대담한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전 이후, 동서양 사이에 활발한 상호 교류가 일어났기 때문에 생길 수 있었던 변화였죠. 기원전 150년경 멘데레스 강 유역 안티오키아의 한 조각가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밀로의 비너스’, 해전을 기념하기 위해 기원전 203년 로도스 사람들이 세운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대표적입니다.
이후 그리스 지역은 로마제국에 흡수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우리가 고대 그리스 문화를 만나볼 수 있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죠. 바로 로마 제국이 그리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의 많은 예술가들이 로마에서 활동했고, 대부분의 로마 수집가들은 그리스 거장의 작품이나 복제품을 사들였죠. 본래 청동으로 만들어진 그리스의 조각상을 대리석으로 복제하는 작업도 활발하게 이뤄졌습니다. (기존의 청동 조각상들은 후대인들이 녹여 전쟁무기로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말해, 로마인들이 그리스의 조각상을 복제하지 않았다면 우린 그리스의 예술 작품을 몇 점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거죠.) 결국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로마인들은 현대와 고대 그리스 미술을 연결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