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시대 가장 앞에 자리 잡은, 고대 이집트 미술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은 뒤에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당시 이집트의 왕은 백성을 지배하기 위해 잠시 지상으로 내려온 신적 존재로 간주되었는데요. 그의 영혼이 신에게로 되돌아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육체가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죽은 자의 무덤인 거대한 피라미드가 세워진 이유도, 지배자들의 시체를 공들여 미라로 만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또한 이들은 죽은 자가 불완전한 상태로 살아가지 않도록 독특한 미술 기법을 발전시켰습니다. 머리는 측면으로 그려졌으며, 눈은 정면에서 본 형태로 그려졌죠. 신체의 상반신, 즉 어깨와 가슴도 정면에서 그려졌으며, 팔과 다리는 다시 측면으로 그려졌습니다. 두 다리는 안쪽에서 본 모습으로 그려져 마치 두 개의 왼쪽 다리를 가진 것처럼 그려졌죠. 우리는 이러한 기법을 ‘정면성(frontality)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망자의 젊은 시절을 주로 그린 것 또한 이런 사고방식의 일환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누군가를 늙은 모습으로 그리게 되면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평생 늙은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풍성한 식탁과 사랑하는 가족, 높은 지위, 평화로운 일상 등 생전에 자신들이 누린 행복과 염원을 무덤 벽화에 담은 것 역시 이와 같은 이유였습니다.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시 그려진 벽화 중 하나인 ‘늪지에서 사냥하는 네바문’을 살펴보죠. 무덤의 주인공인 네바문은 곡물 저장소를 관리하는 이집트의 고위 관료였다고 합니다. 한 해 농사의 수확량을 확인하고, 세금을 매기는 것이 그의 일이었죠. 가운데 선 남자는 그림의 주인공인 네바문이며, 그의 옆과 아래에 그려진 인물은 아내와 딸입니다. 사회적 위계에 따라 인물의 크기를 달리해서 그린 것이죠. 아울러 그림 속에는 가금류와 어류 등 각양각색의 사냥감이 가득합니다. 아마 그는 죽은 뒤에도 사냥을 취미활동으로 즐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네요. 이와 더불어 태양신을 상징하는 연꽃과 신성한 동물인 고양이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그림에는 자신들의 현실적 소망과 내세에의 기원이 한데 담겨 있었던 것이죠.
전통을 중시한 것도 고대 이집트 미술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 문명은 약 3000년간 지속되었는데요. 이 기간동안 이집트인들은 양식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기존의 미술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애썼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었습니다. 기원전 1300년 경 이집트를 통치한 파라오 아크나톤의 시기가 대표적이죠. 그는 신왕국 제18왕조 시대의 왕으로 아멘호테프 4세라 불리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여러모로 이단아에 가까운 인물이었는데요. 오랜기간 숭상되어 온 여러 관습을 타파함은 물론, 전통적인 다신교 사상을 거부하고 태양 숭배에 바탕을 둔 일신교를 택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인 아크나톤 역시 이 신의 이름인 아톤(Aton)을 따서 지은 것이었죠.
미술 양식 역시 크게 바뀌었습니다. 초기 파라오의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엄숙하고 딱딱한 모습은 사라졌고, 그 자리를 이상화 경향을 벗어난 자연주의 형식의 미술이 대신했죠. 그의 초상은 다른 것들에 비해 실제에 가깝게 만들어졌으며, 아톤의 축복을 받으며 아내와 함께 자녀들을 사랑스럽게 껴안고 있는 인간적인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짧은 통치 이후 아들인 투탕카멘은 다신교 사상으로 회귀했으며, 미술양식 역시 이전의 것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