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시메네스, 우주의 새로운 기원을 찾다
촘촘한 철학사의 네 번째 인물 아낙시메네스는 우리가 앞 시간에 만난 아낙시만드로스, 그리고 탈레스와 같은 밀레토스 출신의 철학자입니다. 그의 생애는 알려진 것이 그리 많지 않은데요. 아낙시만드로스의 동료이자 제자였던 것으로 전해지며, 이오니아 방언으로 쓰여진 한 권의 책을 남겼다고 하죠. 하지만 아쉽게도 이 책은 우리에게까지 전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만물의 기원 또는 원리가 무한정한 것이라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사상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아페이론, 즉 무한정한 것을 특수한 하나의 실체로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스승 또는 동료였던 아낙시만드로스의 대답이 너무나 모호하고 서툴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그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우주기원론을 착안했습니다. 우선 그는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기 위한 두 가지 기본 전제를 제시합니다. 우선 첫 번째 전제는 만물의 기원이 무한함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아페이론, 즉 무한자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이 물질적인 실존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는데요. 그 대상으로 ‘공기’를 지목했습니다. 다시 말해, 형성되고 있는, 형성된, 그리고 앞으로 존재하게 될 모든 것들이 공기라는 원소로부터 생겨났다고 주장한 것이죠.
그가 공기를 만물의 기원으로 지목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공기는 어느 곳에나 존재합니다. 뛰어난 운동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공간이든 그 모양과 크기에 관계 없이 두루 확산되며, 또한 쉽게 변화하죠. 이러한 능력, 특히 높은 운동성은 이오니아의 초기 철학자들이 생각한 근원 물질의 기본 조건이었습니다.
두 번째 전제는 첫 번째 명제의 보충 또는 추가 설명에 해당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공기로부터 생겨났다면, 대체 그 사물들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걸까요? 그는 공기의 농도 변화로 이를 설명합니다. 공기가 희박해지면 불이 되고, 보다 농밀해지면 바람이 되었다가 다시 구름이 되며, 더욱 더 농밀해지면 물이 되었다가 이윽고 땅이되며, 그 다음에는 돌과 이 돌에서 생겨나는 다른 모든 것들이 된다는 것이죠. 그는 이러한 변화는 운동에서 발생하며, 그 운동은 영원히 지속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차가움과 뜨거움, 습함과 건조함 같은 대립항 또한 공기의 농도 변화에 따른 결과물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건조함과 뜨거움은 공기가 희박해진 것이며, 습함과 차가움은 공기가 농밀해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살펴볼게요. 우선 입을 크게 벌린 채로 앞에 손을 대어 입김을 불어넣어 보죠. 어떤가요? 따뜻하죠. 아낙시메네스에 따르면 이는 공기가 희박해지고 확산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반면 입은 작게 모아 입김을 불면 어떤가요? 차가울 겁니다. 물론 아낙시메네스는 이것이 공기가 압착되어 농밀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오늘날에 우리는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개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2500년 전, 온도와 공기의 압축, 팽창을 결부시켜 설명했다는 점에서 그가 가진 사고능력의 탁월함을 엿볼 수 있죠.
그는 공기가 우주에 생명을 불어넣는 숨결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공기로 이뤄진 영혼이 우리를 지배하고 지탱해주는 것처럼, 숨결과 공기가 온 세계를 둘러싸고 있다.” 아낙시메네스의 유일하게 남겨진 이 문장처럼 그가 생각하는 공기란 물질로서의 공기이자, 숨결 혹은 영혼으로서의 공기이기도 했던 겁니다.
아울러 공기는 무한하며, 끊임 없이 운동하고, 생명을 부여해 주는 것이기에 신적입니다. 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저희는 지금 2500년 전의 사상을 이야기하는 중이에요. 철학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신이 나온다거나, 과학의 영역이 신학으로 설명되는 것이 결코 놀라운 것이 아니에요. 우린 이런 철학자들의 사고방식을 앞으로 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만나게 될 겁니다.
지구의 형태와 위치에 대한 설명도 스승 아낙시만드로스와는 달랐습니다. 지난 시간에 얼렁뚱땅 넘어간 것 같아서 말씀 드리자면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가 원통형으로 생겼으며 허공에 떠있다고 믿었다고 하는데요. 아낙시메네스는 이와 달리 지구는 평평하며, 공기 위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죠. 참고로 그는 태양이 종잇장처럼 평평하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반대로 이는 그가 자신의 이론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 얼마나 경험과 관찰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탈레스에서 시작하여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로 이어지는 밀레토스 철학의 전통은 기원전 494년 막을 내리고 맙니다. 페르시아 군대의 공격을 받아 도시 전체가 화엽에 휩싸여 사라지고 만 것이죠. 하지만 이전의 신학적 사유를 넘어 과학적 혹은 자연철학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하고자 한 이들의 철학은 세계의 지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제 드디어 서양철학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