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시만드로스, 세상의 근본 요소 '아페이론'을 발견하다

“존재하는 사물들의 기원은 아페이론이다. 존재하는 사물들은 아페이론으로부터 생겨나지만, 이 사물들은 필연성/책임성에 의거해 다시 소멸하여 아페이론 속으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그들이 범한 불의에 대해 시간의 질서에 따라 서로 합당한 벌과 고행을 치르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서양 사상의 가장 오래된 격언’이라고 일컬은 이 문장은 서양 철학사에 남아 있는 최초의 글이자 이번 화의 주인공 아낙시만드로스의 글입니다. 서른 아홉 개의 단어로 구성된 이 문장은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논의되고, 설명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의견이 분분한 경우가 많았는데요. 하이데거와 함께 독일의 실존철학을 창시했다고 평가 받는 칼 야스퍼스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모든 해석들이 부딪히는 난점이 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생각 속에는 온갖 의미들이 잠재되어 있는데, 이 의미들이 지닌 가능성들은 개념적으로 규정된 해석으로 완전히 파악해 낼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이 때문에 이런 해석들은 항상 너무 많은 의미를 집어넣거나 너무 좁은 의미로 제한하게 된다.”

대체 그는 어떤 이론을 펼쳤기에 후대 철학자들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은 걸까요?

그의 철학을 알아보기 전, 우선 생애부터 잠시 살펴보죠. 그는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탈레스와 마찬가지로 밀레토스에 거주했다고 알려집니다. 일설에는 그가 탈레스의 제자였다고도 하는데요. 이 시기에는 이런 식으로 저명한 인물들을 스승과 제자 관계로 엮는 경우가 많아 그 진위 여부는 알기 힘든 게 사실이죠. 어찌됐든 그는 다양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유럽 최초의 철학책인 <자연에 관하여>를 저술했으며, 우주기원론에서 시작하여 인간으로 끝나는 우주론을 창시하기도 했죠. 이밖에도 그는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던 세계를 지도로 그리려고 한 덕분에 최초의 지도 제작자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는 탈레스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구성하는 근본 요소가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자신의 철학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근본 요소가 물이라는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았죠. ‘모든 존재에 타당되는 한 한 가지의 근거를 가지려고 한다면, 그 근거는 모든 것들에게 공통적인 것일 수 있기 위해, 가능한 한 규정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는 추론에 따른 결과였는데요. 그래서 그는 이 근본 요소를 아페이론이라고 명명합니다. 아페이론이란 규정되지 않은 것 또는 무한자라고 불리는데요. 이는 탈레스의 물처럼 관찰 가능한 것이 아니며, 성숙하거나 쇠퇴하지 않고, 공간적으로도 무한하며, 신선한 물질을 끊임 없이 낳아 우리가 지각하는 모든 것이 생겨나도록 합니다. 시간적, 공간적, 양적, 질적으로 모두 무한한 것이 바로 이것. 아페이론인 것이죠.

아페이론은 신적이기도 합니다. 네, 맞아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바로 그 신 말이에요. 탈레스 장에 이어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2500년도 더 된 아주 오래 전의 사상을 공부하는 중입니다. 철학사라고 하면서 왜 자꾸 신이 나오냐고 물으시다면 사실 할 말이 없어요. 그냥 이 시대의 사람들은 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타당한 일입니다. 아페이론이 신적인 이유는 앞서 우리가 살펴본 특성을 지니고 있어서입니다. 즉, 자기 자신의 기원은 가지지 않지만, 모든 것의 영원불멸하며 소멸되지 않는 기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럼 세계는 어떻게 시작되게 되었을까요? 그는 아페이론으로부터 기본적인 힘들의 대립쌍들이 분리되어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따뜻함과 차가움, 습함과 건조함, 밝음과 어두움이 대표적인 예이죠. 그는 이러한 대립물들이 고갈되지 않는 근본 바탕을 이루고 있고, 이들로부터 물, 불, 흙, 공기 같은 우주의 구성요소들이 생겨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참고로 아낙시만드로스는 물은 습함에서, 불은 따듯함에서, 흙은 건조함에서, 공기는 차가움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고 하네요. 아페이론으로부터 생겨난 대립물들은 끊임없이 상호 투쟁합니다. 대립물을 통해 생겨난 우주의 구성요소들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들은 이러한 투쟁으로 인해 끊임없이 생성, 소멸되며 이러한 과정으로부터 사물과 생물이 생겨나게 되죠.

이왕 말이 나왔으니 우주와 인간의 생성에 관한 아낙시만드로스의 해석도 알아보도록 하죠. 그에 따르면 아페이론으로부터 어느 때인가 따뜻함과 차가움이라는 대립쌍이 생겨 떨어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용돌이치는 안개 무리들로부터 다른 대립쌍들도 분리되어 나오게 되었는데요. 이 과정에서 마치 나무껍질이 나무를 둘러싸는 것처럼 공 모양의 불이 땅을 에워싸고 있는 공기를 뒤덮게 되었죠. 그리고 이 공이 깨지면서 여러 개의 원으로 뭉치게 되었고, 자연스레 태양과 달과 별이 생겨나게 되었죠. 그런데 지구의 주변을 검은 가스들이 주변을 가리게 되었고, 우리는 그 틈으로 태양과 달, 별의 부분만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달의 모습이 바뀌거나 일식 또는 월식이 일어나는 것은 그 틈을 검은 가스들이 메우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습기 속에서 태양이 제공해주는 햇빛과 온기를 받아서 태어납니다. 다만 인간은 여타 생물과는 다른 경로를 거쳐 생겨났을 거라고 아낙시만드로스는 추정하는데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번 그가 쓴 문장을 읽어보도록 할게요.

“다른 생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반면, 인간은 오랜 기간동안 어머니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만일 인간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를 지녔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습니다. “처음에 인간은 물고기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 후에 인간이 상어처럼 먹이를 먹으면서 자신을 지킬 능력을 획득하게 되자, 비로소 물을 떠나 육지로 올라오게 되었다.” 자, 그렇다고 이 생각이 현대의 진화론적 관점과 동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그의 주장에는 물고기가 세대를 거쳐 인간으로 변화한다는 생각이 빠져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아직 2500년 전의 사상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대립물의 생성과 소멸에 관한 이론은 윤리적 측면으로도 확장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불의와 처벌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죠. 그는 대립물간의 투쟁 속에서 무엇 하나가 다른 한쪽을 지배하는 것은 불의이며, 이는 결국 오만함을 낳게 된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지배하는 쪽은 죄를 짓게 되며, 지배당한 자에게 불의를 보상해주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죠. 물론 어느 한 쪽이 평생, 일방적으로 지배하거나 지배당하는 입장에 놓이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의와 처벌의 주체와 대상은 필연성에 의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이러한 대립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것을 우리는 정의라고 부르죠.

그는 시간과 공간에서의 대칭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지구가 그대로 멈춰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각자 나름의 이유를 댔는데요. 아낙시만드로스는 이에 대해 지구가 우주의 정 중앙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중앙에 있기 때문에 굳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타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었죠.

앞선 설명들을 토대로 아낙시만드로스는 어떤 힘이 개입되지 않아도 스스로 제어하고 조절하는 우주관을 제시합니다. 역동성 가운데 자리잡은 절묘한 균형과 인과관계가 존재하며, 그렇기에 제멋대로로 그려지는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의 행동이나 개입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20세기 철학자인 조너선 반스의 평가로 아낙시만드로스와 관련한 이번장을 마칠까 합니다. “한편에 대부분의 천문가 그룹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 홀로 아낙시만드로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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