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를 더욱 빛나게 해줄 이야기

오늘도 어제처럼, “짠”하고 술잔을 부딪치며 이내 목구멍에 알코올을 흘려보냈다. 내 몸속으로 들어와 피와 섞여 돌고 있는 이 알코올이 화학품 덩어리인지 곡물이 증류되어 만들어진 순수한 음료인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무슨 알코올이면 어떤가. 지금 내 지금을 좋게 만들어주면 그뿐이지 않은가. 그렇게 내일도, 모레도 그저 목구멍으로 넘기면 그만이지 않나.

그런데 잠깐, 매일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술, 그리고 비슷한 안주로 돌려막으며 술을 피에 섞은 지가 몇 년째란 말인가. 그래 이제 질릴 때도 됐지. 어차피 소주 아니면 맥주, 그것도 아니면 섞어 마실 텐데 또 만나서, 또 마시면 무엇하리.

술자리, 혹은 술 마신 다음 날 취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잠깐만 여기 주목해보자. 술을 끊기는 싫고, 어차피 내 인생에서 만나야 할 인간들도 거기서 거기라면 술자리가 조금은 재밌고, 특별해지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말이다.

술자리를 빛나게 해줄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술에 대한 ‘지식’이다. 실망스럽나? 아니다. 음식도 알고 먹으면 더 맛있듯, 술도 알고 마시면 더 즐겁다. 분명하다. 술자리 안주로도 안성맞춤이지 않겠나? 어차피 술자리에서는 떠들 주제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언제부터 인류는 알코올을 목구멍에 들이부었을까?

인류가 언제 처음 술을 마셨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유물로 가장 오래된 술은 포도주, 즉 ‘와인’이라는 것 외에는 대체 왜 인류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어떻게 만들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대체 왜 인류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지 말이다. 그렇다. 마시면 즐겁기 때문이다. 술 때문에 문제도 많지만, 술 덕분에 행복하기도 하다는 건 지금의 우리도, 예전의 우리도 모두 아는 사실이다.

술은 아주 원시적인 형태에서 시작했을 테다. 추측하기로는 태초의 술은 과실주였을 거다. 만들기 가장 쉽고, 더군다나 우연히 만들어질 가능성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아 있는 가장 오랜 기록도 포도주이지 않을까 싶다. 무려 기원전 4,000~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기록에는 이미 포도주가 교역품으로 등장한다. 마시고 즐길 뿐 아니라, 그 즐거움을 판매까지 했다는 말이다. 오죽했으면 성경에도 포도주가 나오겠나. 심지어 예수님은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대의 술은 지금의 술과는 느낌이 꽤 달랐을 거다. 주조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맥주의 경우는 지금과는 모양도, 마시는 방식도 달랐다. 밀이나 보리 찌꺼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발효된 죽에다가 빨대(속이 빈 식물 줄기)를 꽂아 즙만 빨아 마시는 방식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술을 먹어야 하나?’ 싶지만, 술이 없는 일주일만 상상해보자. 아마 우리는 더 한 방법으로 술을 만들어 먹을 거다.

인류가 제대로 술을 즐기기 시작한 건, 아마도 증류주가 발전하면서부터였을 테다. 여기서 잠깐 술을 담그는 원리를 설명하자면, 술을 담그는 과정에서 첨가된 효모(미생물, 곰팡이나 버섯의 종류)가 당분을 에탄올로 바꾸는 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맥주나 와인, 동아시아에서라면 막걸리와 청주 정도가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발효주는 도수가 높은 술이 아니다. 발효를 통해서 도수를 높이려다가는 효모가 사멸해서 술이 될 수 없다. 더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들기 위해서는 ‘증류’라는 고차원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게까지 해서 술을 먹어야 하나?’ 싶지만, 삼겹살을 맥주랑‘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우린 어떤 수단을 이용해서라도 고도수의 알코올을 만들어냈을 거다.

아무튼, 이 기술을 처음 만들어 낸 곳은 이슬람 문화권이었다. 술도 마시지 않는 문화권에서 굳이 왜? 그렇다. 원래 증류 기술은 술을 만들기 위한 기술이 아니었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증류를 했던 이유는 ‘연금술’ 덕분이었다. 아마도 연금술에 사용하는 물질로서 고도수의 알코올이 필요했던 거다. 그러니까 태초의 증류주는 화학실험을 위한 시료였던 거다.

이 기술은 곧 유럽으로 전파된다. 물론 중세의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기술은 연금술을 위해 발전된다. 하지만 증류된 알코올을 목구멍에 적신 유럽인들은 이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켜 새로운 술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와인은 증류되어 ‘브랜디’가 되었고, 보리 만든 맥주는 ‘위스키’가 되었다.

그 뿐 아니었다. 이제는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다양한 곡물이 증류기에 들어가 고도수의 술이 되었다. 사탕수수는 증류되어 ‘럼’이 되었고, 용설란이라는 옷감을 만들던 식물은 데킬라가 되었다.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에서 증류 기술을 배워간 몽골인들은 소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아시아 전역에 증류주를 전파했다.

🍺술을 너무도 사랑해 간을 잃어야 했던 한반도의 역사

아주 슬프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고리짝 시절, 그러니까 고대 한반도 땅의 일반 백성들은 식량이 부족해 술을 빚어 자유롭게 마실 수 없다. 먹을 밥도 없는 마당에, 술을 빚어 먹을 수 없었던 노릇이었다. 그나마 마을 행사나 종교 행사가 끝나면 목이나 적시는 정도였다.

생각해보자. 술맛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술이 주는 즐거움을 알면서도 술을 마시지 못하는 고대 한반도 사람들의 고통은 어땠을까? 그들은 매일같이 ‘제천행사’만을 기다렸을지 모른다. 우리가 교과서나 봤던 그 영고니, 동맹이니, 무천이니, 그저 외우기 바빴던 그 행사 말이다. 그날만을 기다렸던 한반도의 백성들은 마을 단위로 술을 빚어 음주와 가무를 즐겼을 거다.

한반도에서 술을 제대로 마시게 된 건 아마도 고려시대 무렵이었을 거다. 나라가 바뀌었다고 술을 더 마셨던 건 아니고, 이 시기가 되면 농사법이 어느 정도 발전을 거듭하여 술을 빚을 수 있는 곡물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돈 많은 높으신 양반들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높은 분들은 몽골로부터 소주 만드는 법도 배웠고, 이제 어느덧 증류주까지 즐길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다가 조선시대가 되면 본격적으로 술 문화가 조금씩 발달하기 시작한다. 세종 이후 『농사직설』의 보급으로 쌀 생산량이 증가한 덕분이었다. 1490년 성종 무렵의 기록을 보면 “요즈음은 보통의 연회 때에도 일반 민가에서 소주를 만들어 음용하는 것은 극히 사치스러운 일이므로 소주 제조를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되어 있다.

이 기록만 놓고 보면 소주를 먹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이 시기가 되면 일반 백성들도 사치스럽게도(?) 소주를 만들어 마셨다는 말이 된다. 이 얼마 만에 경사란 말인가. 고려 때 처음 들어온 소주가 이제야 민가에 풀리다니 말이다. 하지만 결코 오해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이 시기까지 소주는 대단히 고급스러운 술이었다. 어디까지나 제대로 소주를 즐길 수 있는 이들은 소수의 양반이었다.

심지어는 나라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게 금주령을 내리기도 했다. 왕의 명령으로 금주령이 떨어지면 일반 백성들뿐 아니라 양반들도, 심지어는 왕 스스로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만큼 술은 국가의 농업생산량과 직결된 문제였고, 쌀 생산이 인구수를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면 나라에서 술 제조를 금지했을 만큼 아직은 음주의 자유가 제한적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조선 후기 즈음 이르면 농업 생산성이 조선 전기에 비하면 급격히 높아지게 된다. 특히 벼농사에 있어 이앙법의 확산, 그리고 관개시설과 비료 기술의 발전은 농업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렇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나 안 외워지던 이 단어들이 사실은 지금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술을 자유롭게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그야말로 술의 대중화가 시작된 거다.

술의 대중화는 이 땅에 다양한 종류의 술을 선물했다. 집집마다, 그리고 지역마다 다양한 종류의 청주가 만들어졌고, 계절에 따라서 술도 다양하게 마실 수 있을 정도였다. 남아 있는 기록으로만 ‘수백 가지 술’이 남아 있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발전하던 조선의 술 문화는 식민지시기 주세령이 시행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강제병합 이후 조선총독부는 1916년부터 양조금지령을 내리고 일반인들이 사적으로 술을 만드는 행위를 단속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과 가문별로 내려오던 전통 가양주가 말살되었고, 한반도에서 마실 수 있는 술은 막걸리와 소주로 획일화되어 버린다. 게다가 조선의 술 문화 발전에서 핵심적이었던 ‘제사’ 행위 자체가 위축되면서 음주문화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해방 후 다시 전통적인 술 문화가 발전할 것만 같았지만, 다시 발목을 잡은 건 농업생산량이었다. 전쟁까지 겹치면서 늘어나는 사람에 비해 먹을 쌀은 부족했다. 1960년대가 되면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술의 소비도 다시 증가하는 듯 했지만, 쌀은 여전히 부족했다.

그렇게 1965년 박정희 정권은 특단의 조치로 ‘양곡 정책’을 실시했고, 쌀이나 보리 등의 곡물을 술의 원료로 쓸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지금 우리가 흔히 마시는 희석식 소주가 대량 공급되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마시는 녹색병의 소주는 한반도 땅의 조상들이 마시던 우리 쌀로 만든 전통의 소주가 아니라, 화학 알코올 성분을 첨가한 희석식 알코올이라는 거다.

대체 왜 향도 없고, 딱히 즐길만한 맛도 없는 이 화학 혼합물에 우리의 피를 희석시켜야 했던 걸까? 명확한 답이야 없겠지만, ‘통행 금지’라는 6~70년대 특유의 문화가 한몫 했을 테다. 안 그래도 평균 노동 시간이 길었는데, 거기에 야근까지 일상이었던 우리네 어버이들은 빠른 술자리를 위해 목구멍에 독한 술을 잔뜩 때려 붓고 취해야 했다.

이런 왜곡된 술 문화는 ‘한국식 회식 문화’라는 이름으로 당연시되었고, 이에 가장 적합한 술이 소주와 맥주의 적절한 배합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 주류 시장에서 소주와 맥주가 차지하는 적절한 비율(각각 41% 남짓)이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렇게 한국인들은 자신의 간을 희생해가면서 술을 마셔댔다.

🍺이제는 우리는 어떤 술자리를 만들어야 할까?

그간 한국은 참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쌀 생산량은 가난한 이웃나라들을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해졌고, 당연히 통행 시간에 제한도 없다. 시민의식이 성장하면서 강요되는 ‘회식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고, 이에 따라 술 문화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아저씨들이나 마시던 술로 인식되던 위스키를 비롯한 증류주는 MZ 세대의 혼술 열풍과 함께 ‘젊은 술’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코로나 시대를 맞아 하야 이러한 ‘혼술 문화’는 더욱 가파르게 확산될 수 있었다. 혼자 마시는 술 문화는 떼로 마시는 술 문화보다 ‘나름’ 건강하다. 회식 때 입으로만 떠들던 “가볍게 딱 한 잔!”이 진정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 문화’는 이전의 희석식 소주와 맥주 중심의 끝을 모르고 때려 붓는 술 문화를 뒤집고 ‘맛있는 술을 즐겁게 마시자!’에 대한 욕구로 이어졌다. 이건 비단 MZ 세대에 국한된 유행은 아니다. 그러니까 아재들도 맛있는 술로 갈아타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처럼 소맥이나 말아먹던 아재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딱 하나다. 아직도 같이 먹을 땐 ‘소맥’으로 무작정 달리는 분위기가 대부분이란 거다. 그러니까 혼자 마실 때나 집에서 마실 때 한해서는 다양한 술 문화가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옹기종기 모여 회식 따위를 할 땐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이건 아직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당연하다. 해방 이후 한국에 ‘건강한’, 혹은 진정으로 ‘즐거운’ 술 문화가 만들어질 환경을 만나지 못했다. 어쩌면 그 적당한 때가 지금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적어도 혼자서 먹을 때 알아버린 ‘즐거운 술맛’을 같이 있을 때라고 즐기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말이다.

글. 🍜브로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한 것으로도 모자라, 대학원에서까지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공부한 내용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또래 연구자들과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역사공작단>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중 역사로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인문학 콘텐츠를 생산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여러 대학을 전전하며 시간강사로 돈도 벌고, 제 이름의 유튜브 채널 <역발놈 김재원>을 운영하며 ‘지식중개사’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중입니다. 저서로는 《4.19혁명을 묻는 십대에서》가 있으며, 공저로 《한뼘한국사》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쉽게 읽는 서울사 : 현대편》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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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술’에 관해 이야기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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