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소설 <삼국지>로 유명한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 이야기는 사실 실제 역사였습니다. 위·촉·오 세 나라 간의 경쟁에서 열세에 몰린 오나라의 손권은 주변국과의 연대를 모색하던 중 고구려와 접촉하게 되었죠. 그렇게 기분 좋은 만남을 시작한 두 나라였지만, 오해와 갈등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어 버립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아래 정리된 내용을 보시면 더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
✍️세 줄 요약
- 삼국간 경쟁에서 열세에 몰린 오나라 손권은 주변국과의 연대를 모색하던 중 고구려와 접촉하게 됩니다.
- 기분 좋은 만남을 시작한 두 나라, 하지만 오해와 갈등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죠.
- 두 나라의 연대와 갈등을 보며 우리는 급박했던 당시의 시대 상황은 물론, 현대 외교전에도 적용 가능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 한 장 읽기
- 중국 삼국시대는 위·촉·오 세 나라가 경쟁하는 시기였지만, 균등한 삼분구도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시기 중국의 중심부는 황하 중·하류를 중심으로 한 화북 지역이었고, 이는 전부 위나라의 차지였기 때문이죠. 열세에 처한 오나라의 손권은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타개책 마련에 고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주변국과의 연대 및 동맹을 모색하게 되었죠.
- 손권의 첫 번째 타깃은 공손씨 세력이었습니다. 공손씨 세력은 후한 말 태수로 임명된 공손탁이 조정의 혼란을 틈타 요동 지역에 구축한 세력인데요. 후한 멸망(220년) 후 위나라의 주변국 정리 작업으로 인해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손권은 이를 간파하고 공손씨 세력에 위나라를 배후에서 함께 공략하자는 군사협력을 제안하게 됩니다.
-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공손씨 세력이 ‘오나라는 미약하여 위나라에 대적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오히려 손권이 보낸 대규모 사절단을 공격했던 거죠. 손권이 보낸 400여 명의 사신 일행은 대부분 참수되거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함께 따라간 1만 여 명의 호위군도 기습 공격을 받아 급히 요동반도를 떠나게 됩니다.
- 불행 중 다행으로 붙잡힌 사절단 중 일부가 관리 소홀을 틈타 탈출에 성공합니다. 낯선 지역을 헤매던 이들은 인근 국가인 고구려에 도착합니다. 당시 고구려는 아직 세력이 약했습니다. 때문에 강대국이라 할 수 있는 오나라와의 관계 형성에 큰 기대를 걸었죠. 고구려 동천왕은 이들 사신 일행을 극진히 대접하고 오나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 크게 기뻐한 손권! 이번에는 고구려로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일이 꼬이는데요. 고구려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위나라의 유주자사가 오나라 사신을 죽여 공을 세우라고 했다는 첩보를 듣게 된 것이죠. 놀란 사절단은 동천왕이 보낸 관리 수십 명을 밧줄로 묶고 고구려와 대치하게 됩니다. 동천왕이 이들을 달래봤지만 별 소용 없었고요.
- 협공의 꿈을 버리지 못한 손권은 2년 뒤 또다시 고구려에 사절단을 보냅니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이들은 관리가 아닌 군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결국 목이 베어져 위나라로 향하는 선물이 되고 말았죠.
- 고구려는 왜 2년만에 이처럼 180도 돌변하게 되었을까요? 고구려가 2년 전 외교적 결례에 대한 복수를 했을 수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당시 급변한 동아시아 정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34년 촉의 승상 제갈량이 사망했고, 남쪽의 위협에 한숨 돌린 위나라가 서서히 요동 지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이런 정세 속에서 고구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위나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 뿐이었습니다.
- 공손찬 세력과 고구려에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위나라의 황제에 오른 명제가 사마의에게 요동 출정을 명령한 거죠. 사마의와 4만 여 명의 정예부대는 요동 정벌에서 대승을 거두고, 공손씨 세력 역시 공손탁이 기반을 닦은지 50여 년 만에 무너지게 됩니다. 고구려도 유주자사 관구검의 침공으로 위기에 빠집니다. 동천왕은 두만강 이북 지역까지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수도 국내성은 함랑과 동시에 수많은 백성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는 대참사를 겪게 된 것이죠.
-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조금 과장하자면 오나라의 적극적인 연대 시도가 위나라로 하여금 요동의 존재를 되새기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두 세력이 침공 받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 과장이나 결과가 어찌되었든 여기에 억지 선악 구도나 인과응보를 그리기는 건 큰 의미가 없어보입니다. 오히려 냉정한 시각으로 그 과정을 살펴보고, 현재 동아시아 각국의 치열한 이해타산과 숨겨진 욕망을 이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게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일테니까요.
이 에피소드 만으로도 재미있는데 다음 회에 준비된 글은 더 더 재미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반전의 한국사》 안정준 저자님과 직접 나눈 이야기들이 준비되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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