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자리에 그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역사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어요. 하나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는 뜻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과거의 사건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도 있지요. 여기에서는 두 가지를 같이 이야기하게 될 거예요.

역사학은 지금이 아닌, 과거의 시간과 공간에서 있었던 일을 들여다보는 분야입니다. 지나간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 주로 무슨 일을 했는지,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해결했는지, 그렇게 해결한 이유는 무엇인지, 결과는 어떠했는지에 대해 들여다보는 것이죠. 한마디로 과거 행위의 총체라고 할 수 있어요. 여기에 시간, 공간, 인간이 작용하고 있고 이 3가지 요건을 인과적으로 해명하면서 역사가 연구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들여다볼까요. 지나간 일을 직접 들여다보는 것이 불가능하니 옛날 사람들이 만들었던 건축물이나 도구들을 통해서 엿볼 수 있겠네요. 또 옛날이야기로 전해들을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이 이야기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불완전한 기억 때문에 내용이 바뀌기도 하고, 재미를 위해서 과장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게 되면 그냥 없어져버리지요. 이런 식이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정확한 사실정보를 얻기는 어렵지요. 그래서 역사가들은 ‘기록’에 주목합니다. 기록만 잘 된다면 글쓴이가 죽어도 내용은 후대까지 전달될 테니까요. 역사가는 이 기록을 도구삼아 과거를 들여다보는 사람입니다.

역사학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동양의 역사학은 중국에서 시작해서 사(史)라고 불렀고, 서양의 역사학은 그리스에서 시작해서 히스토리아(historia)라고 불렀습니다. 그 뒤 히스토리아는 히스토리로 바뀌었습니다. 근대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히스토리’를 일본에서 ‘역사(歷史)’로 번역했고, 이 ‘역사’라는 단어를 한국과 중국에서 따라 사용하면서 일반화됩니다.

동양의 역사학은 중국에서 먼저 시작했어요. 중국 최초의 국가라고 일컬어지는 하(夏)와 은(殷)의 시기부터 사(史)라는 관리가 있었는데 바로 ‘기록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주(周)나라 이후부터는 통치자의 말과 행동, 천재지변을 폭넓게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이런 ‘기록자’의 의미를 가진 사(史)가 춘추시대의 공자(孔子)를 거쳐, 한(漢)의 사마천(司馬遷)에 이르러 ‘과거의 사건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학문’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공자는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春秋)』를 짓고 이를 통해 ‘난신적자(亂臣賊子)를 떨게 하겠다’라고 했습니다. 기록을 통해 후대 사람들을 도덕·규범적으로 구속하는 역사편찬의 원형적 의미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나쁜 짓을 하면 신에게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죽어 없어지지 않는 ‘기록’을 통해 나의 행위가 지속적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평가되는 것이지요. 공자 이후 중국(넓게는 동아시아)은 도덕·규범의 준칙이 역사가 된 것입니다. 역사에 남는 것은 불멸의 생명을 얻는 것이지요. 이후 태사령 사마천에 이르러 역사학이 하나의 독립된 영역을 가지게 됩니다. 바로 『사기(史記)』 가 그 표지석과 같은 존재이지요.

공자의 사례와 같이, 신의 섭리로부터 벗어나 인간을 주체로 세워 역사서술을 시작한 것은 서양에서는 동양보다 약간 늦은 시기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기록하여 『히스토리아』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헤로도토스는 이 책을 지으면서 전쟁의 원인을 규명하여 비슷한 과오를 남기지 않기를 소망했어요. 이후 투키디데스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한 글을 쓰면서 같은 제목을 붙여 책을 냈는데, 여기에서는 단순히 전쟁의 경과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지중해 연안을 널리 여행하면서 여러 민족의 자연환경, 전통, 풍습, 법률과 종교 등에 대해 널리 수집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합니다.

여기에서 역사를 뜻하는 히스토리가 만들어졌는데요. 이는 바로 ‘연구’를 뜻하는 그리스어 이스토리아(istoria)에서 유래한 것으로 ‘과거에 관한 탐구와 그 서술’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사건나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해석, 비판, 교훈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동서양의 역사학 모두 과거 사실을 기록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를 비판하여 교훈으로 남기는데 목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양이 ‘탐구성’, ‘지식성’에 더욱 중점을 두었다면 동양은 ‘비판성’과 ‘교훈성’에 더 치중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런 특징은 향후 전개될 내용에서도 꾸준히 드러나게 되고, ‘근대’ 이후, 서양 역사학의 영향을 받으며 동서양 역사학은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됩니다. 자세한 것은 다음 장에서 알아보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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