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불평등 기원론 Part 1 | 흙수저 철학자 ‘루소’의 탄생

인간 불평등 기원론 Part 1  | 흙수저 철학자 ‘루소’의 탄생

저는 직업으로서의 철학자가 되려면 크게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죠.

  1. 💰부모가 돈이 많아야 한다 : 가진 돈이 없으면 대체로 직업 철학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철학은 돈이 안 되는 일이고, 돈 안 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밥을 안 먹거나 집 없이 노숙하며 살아도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죠.
  2. 👨‍👩‍👧(그 돈 많은) 부모 말을 안 들어야 한다 : 1의 조건으로 인해 대부분, 아니 모든 부모는 자식이 철학자가 되는 걸 반대할 겁니다. 그럼에도 철학자가 되고 싶다면? 부모 돈은 받되, 말은 안 듣는 대담함과 소신을 갖춰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 하지만 돈 안 되는 일에 매진한다고 밥을 안 먹거나 집 없이 노숙하며 살아도 되는 건 아니니까요.

이게 무슨 소리냐 싶은 분도 있겠지만, 이건 사실에 근거한 제 나름의 결론입니다. 서양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플라톤은 왕족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데카르트와 포퍼는 변호사의 아들이었고, 러셀은 정치인의, 비트겐슈타인은 그 당시 가장 잘 나가는 기업인의 자제였어요.


📃흙수저 철학자 ‘루소’의 탄생

아, 물론 그렇다고 예외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바로 이번 주와 다음 주에 살펴볼 책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저자 ‘장 자크 루소’가 그 주인공이죠.

루소의 어린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고통 받은 쪽에 더 가까웠죠. 그의 어머니는 루소를 낳은 뒤 열흘도 안 돼 출산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루소는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죄의식을 가지며 유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아버지와도 생이별했습니다. 그가 10살이 되던 해,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루소의 아버지가 홀로 도주를 선택했기 때문이죠. 루소는 어쩔 수 없이 외삼촌에게 맡겨졌고, 얼마 뒤 시골의 어느 목사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다행히 루소는 이곳 생활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이 시절을 이렇게 회상하죠.

“나는 시골이 좋아졌고, 그 애정은 결코 식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시골에서 보낸 시절을 회상하면, 그곳의 생활과 즐거움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움은 내가 시골로 다시 돌아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16살이 되던 해, 루소는 외삼촌의 주선으로 지역의 유명 동판조각사 밑에서 일하게 됩니다. 루소의 표현에 따르면 일 자체는 마음에 들었지만, 상스럽고 거친 주인이 싫어 그곳을 곧 떠나게 되었죠. 아, 물론 루소가 업무 시간 내내 책을 읽거나 외근 나가 한참동안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안) 비밀이지만요.

이렇게 루소의 방랑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루소는 친분이 있는 농부들의 집에 찾아가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하기도 하고, 걸식을 하기도 하며 방랑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운명을 바꿀 연인을 만나다

그러다 우연히 ‘안시’라는 곳으로 가게 되고,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꿔놓을 인물을 만납니다. 바로 ‘바랑 부인’이었죠. 루소는 그녀에게 한 눈에 반했습니다. 첫 번째 만남은 짧았지만, 몇 년 뒤 다시 바랑 부인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는 두 사람 사이에 더없이 다정한 친교가 이루어집니다. 루소는 부인을 ‘마망’, 다시 말해 ‘엄마’라고 불렀는데요. 이는 아마도 어머니 없이 자란 소년이 가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표시였던 것으로 보이죠.

바랑 부인은 연이은 사업 실패로 도시의 삶에 싫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뒤, 두 사람은 샤르메트 계곡으로 떠나게 되었죠. 루소는 그곳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높은 구릉 사이 남북으로 이어진 계곡이 있고, 바닥에는 조약돌과 나무 사이로 시냇물이 흘렀다. 작은 골짜기를 따라서 언덕 중간에 집 몇 채가 드문드문 있었는데, 야생적이고 외진 안식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만족할만한 장소였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계곡에서 보낸 5년 여의 시간동안, 루소는 더 없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바랑 부인은 루소가 독서에 열중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보살폈고, 그의 사상 형성에 필요한 충분한 수준의 자양분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1750년, 드디어 철학자 루소가 탄생합니다. 디종 아카데미의 논문 현상공모에서 수상한 것이죠. 그리고 3년 뒤, 루소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라는 주제의 공모에 참여하고 이를 다듬어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합니다.


📃탄압 받은 철학자

다음 화에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책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사유재산이 인간 사이의 불평등을 만들었고, 기존의 법과 정치제도는 모두 사유재산을 보호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므로 변혁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의 사상에 호의적인 사람은 더더욱 적었습니다. 심지어 동시대에 활동한 저명한 사상가 볼테르는, 루소의 작품에 대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는데요. 루소가 보낸 책을 읽은 뒤 ‘인류에 반하는 당신의 신간을 고맙게 잘 받았습니다’거나 ‘네 발로 걸으란 얘기냐’며 노골적인 비판을 서슴치 않았죠.

게다가 볼테르의 비판은 그가 겪게 될 탄압의 전조에 불과했습니다. 루소가 본격적으로 탄압을 받기 시작한 건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사회계약론⟫과 ⟪에밀⟫이 출간된 1762년 경부터입니다. 이 두 권의 책은 사회적, 종교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우선 루소는 ⟪사회계약론⟫을 통해 생존을 위해서는 국가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며, 법률의 원천이 되는 기준을 강조했는데요. 루소는 이를 ‘일반의지’라 불렀습니다. 루소는 국가가 항상 올바르고 공익을 목표로 하는 ‘일반의지’에 따라야 하며, 각각의 이해에 입각한 개인의 의지 또는 그것의 총합에 불과한 전체의지에 따르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죠.

더불어 루소는 권력자들이 가진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사람들이 대등한 처지에서 형성한 새로운 국가를 ’일반의지‘의 지도하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물론,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왕과 귀족이 있지는 않았지만요.

루소 스스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저작인 ⟪에밀⟫도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이 책은 에밀이라는 고아가 이상적인 가정교사에게 이상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소설 형식으로 쓴 작품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 내용은 제4부에 담긴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루소는 이 장에서 자신은 신은 인정하지만 ‘만물의 창조자’이자 ‘주권자’인 신은 인정하지 않으며, 인간 생활에 직접 관계하는 기적과 계시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신론’ 개념을 다뤘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들은 기독교인들은 크게 분노했죠. 국회에서는 책을 압수하여 불태울 것을 명령했고, 심지어 루소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발부했습니다. 결국 루소는 8년 여에 걸친 긴 피신생활을 이어가게 되죠. 루소는 1770년이 되어서야 파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술 중이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결국 완성시키지 못한 채 1778년 생을 마감하게 되죠.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오늘은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기 전, 일종의 기초 체력을 기르는 시간이었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본격적인 책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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