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불평등 기원론 Part 2 | 세상의 비난을 향한 철학자의 뼈있는 대답

인간 불평등 기원론 Part 2  | 세상의 비난을 향한 철학자의 뼈있는 대답

루소의 시대는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이 정점에 달한 소위 ‘계몽’의 시기였습니다. 급격히 성장한 시민 계층은 귀족과 성직자의 권위를 흔들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계몽주의 사상을 활용하였죠. 특히 볼테르를 비롯한 프랑스와 영국의 개혁론자들은 지배계층의 검열과 억압에 맞서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루소의 주요 관심 분야 또한 정치철학이 될 수밖에 없었죠.


📃사회는 ‘계약’으로 만들어졌다

루소는 당시 유행하던 견해 중 하나인 사회계약설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사회계약설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학자인 홉스가 주창하고, 경험주의 철학자인 존 로크가 계승한 사상입니다.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구성되지 않은 자연 상태에서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은 계약을 맺어 국가를 구성하게 되는데요.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인다는 주장을, 로크는 자연 상태의 인간이 평등하며 무제한적인 자유를 누리지만 이보다 질서 잡힌 상태를 추구하고자 사회를 구성하게 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루소가 이성과 미래에 대한 이들의 낙관적인 믿음을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를 상당 부분 부정하고, 새로운 관점을 취하고자 했죠. 이러한 관점을 보여주는 첫 번째 저작이 1749년 디종 아카데미의 논문 현상공모 출품작이었던 ⟪학문예술론⟫입니다.

⟪학문예술론⟫은 학문과 예술이 우리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 설명한 작품입니다. 루소는 학문과 예술의 부흥으로 인해 사람들이 소위 정중함과 격식을 차리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진실을 가리고 자신의 타락을 그럴듯함으로 포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죠. 그렇다고 루소가 ‘학문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는 학문을 유익하게 만드는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만과 탐욕, 기만과 음모, 이기심과 비열함으로 학문을 대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참다운 교육이란 지식의 습득이 아닌 미덕의 고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학문의 발자취를 혼자 힘으로 따라가며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에 국한하여 학문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비난을 향한 루소의 대답, ⟪인간 불평등 기원론⟫

⟪학문예술론⟫을 읽은 지식인들은 루소를 거칠게 비판했습니다. 학문과 예술, 과학의 진전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은 이들에게 마치 원시 상태를 옹호하는 듯한 루소의 주장은 그저 헛소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죠. 계몽주의 지식인들을 이끈 철학자 겸 작가 볼테르는 루소의 책을 읽은 뒤 ‘네 발로 걷고 싶어졌다’며 비꼬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4년 뒤, 루소는 자신을 위선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에게 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디종 아카데미의 새로운 현상 논문에 응모하기로 한 것이죠.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이때 루소가 응모한 논문을 바탕으로 하는 저작입니다. 그는 1753년 디종 아카데미가 개최한 ‘인간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라는 주제의 현상공모에 응모했으나 낙선하였는데요. 2년 뒤인 1755년, 그 원고에 제네바 공화국에의 긴 헌사와 많은 주석을 더해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였습니다.

자, 그럼 이 책은 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걸까요? 우선 루소는 자신보다 약 100년 전 인간 본성이 ‘악하다’고 본 토머스 홉스의 입장에 반대합니다. 그에 따르면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선악 개념이나 미덕, 악덕의 개념 이전에 존재하는데요. 또한 쉽게 먹을거리를 찾을 수 있고, 넓은 공간에서 홀로 살 수 있기에 적과 다투거나 누군가에게 예속될 필요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 자연 상태의 인간에겐 악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러던 중 상황이 바뀌는 계기가 생깁니다. 장애를 얻거나 다른 동물들과 다툼이 생기거나, 인간의 점차적 증가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지는 등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거죠. 홀로 잘 살아가던 인간은 점차 한데 모여 살아가게 되고, 공동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타인에게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비춰지길 원하게 되었습니다. ‘불평등을 향한, 그리고 동시에 악덕을 향한 첫 걸음’이 시작된 거죠.

그 욕망의 끝에 ‘소유욕’이 있었습니다. 남의 몫을 빼앗아 두 배, 세 배의 자원을 가지는 것이 자신을 우월하게 보이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평등은 사라지고, 소유가 시작되었으며, 그 불평등을 지탱할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식량을 길러내고 자신의 거처를 세울 ‘땅’을 가지길 원했고, 자신의 배를 더욱 불려줄 ‘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 평등이 깨지자 끔찍한 수준의 무질서가 함께 찾아왔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죠.

“부유한 자의 횡령과 가난한 자의 약탈과 모든 이들의 방종한 정념이 자연적인 연민이나 아직은 약한 정의의 목소리를 잠재우면서 인간들을 인색하고 야비하고 악독하게 만들었다. 가장 강한 자의 권리와 최초의 점유자의 권리 사이에는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났으며, 그것은 투쟁과 살인에 의해 종식될 수밖에 없었다. 갓 태어난 사회는 더없이 끔찍한 전쟁 상태로 변해버렸다.”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주경복∙고봉만, 책세상, 2018년)

투쟁이 시작되자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보다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목숨과 재산이 모두 위태로워졌기 때문이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자들은 묘책을 떠올리게 됩니다. 바로 법률과 경찰력에 의해 유지되는 강력한 치안 질서를 만들기로 한 거죠. 물론 그 질서는 자신들과 자신들을 보호할 사람들에게 유리한 형태로 짜여졌습니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부자들의 재산을 공유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게 됩니다. 이후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 등 다양한 형태의 정부가 수립되지만, 불평등은 여전합니다. 결국에는 모두 부자의 지배력을 높이고 빈자의 의무를 강화 시키는 형태로 변화하기 때문이죠.


📃 불평등에 지친 당신, ‘자연’으로 돌아가라!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그렇다면 루소는 어떻게 해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을까요? 루소는 문명 이전의 상태, 다시 말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죽을 때까지 일하고, 늘 불안해하며, 더욱 힘든 일을 찾아 끊임없이 번민할 수밖에 없는 ‘문명인’이 아닌 순수하고 행복했던 ‘자연인’의 삶으로 말이죠. 그런데 과연 그런 선택이 가능할까요? 어쩌면 그건 수백년 뒤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결정해야 할 몫일지도 모릅니다.

루소의 대표작이 연달아 출간된 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판했습니다. 아니, 비난 혹은 핍박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겁니다. 시작은 ⟪사회계약론⟫과 ⟪에밀⟫이 출간된 1762년부터였습니다. 권력자들은 루소의 책과 논문에 반체제적 요소가 담겨 있다고 보았습니다. 국회에서는 책을 압수하여 불태울 것을 명령했고, 루소에 대한 구속영장도 발부했죠.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의 본거지를 떠나 8년간 유럽 곳곳을 떠돌며 생활하게 됩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 직후 루소의 저작과 이론이 재평가 받기 시작했습니다. 루소를 추켜세운 것은 프랑스 혁명 당시에 생긴 정파 중 하나인 자코뱅파의 인물들이었습니다. 자코뱅파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인 로베스피에르는 루소가 이야기한 ‘덕, 평등, 인민의 일반의지’ 등의 가치를 내세우면서, 그것에 반하는 ‘악, 특권, 일탈을 감시하고 말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로베스피에르는 이를 실행에도 옮겼습니다. 혁명재판소가 활동하기 시작한 1793년부터 로베스피에르가 실각당한 이듬해 7월까지 파리에서 총 1862명이 처형당한 거죠. 로베스피에르는 후대인들에게 공포정치의 상징이 되었지만, 루소의 사상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후대 사상가에게 미친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근대 계몽주의 사상을 정점에 올려놓은 것으로 평가 받는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루소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칸트는 루소의 철학이 자신의 사상에 미친 영향력을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나는 진보의 단계마다 만족을 느끼면서도 지식을 향한 매우 강렬한 열망과 지식의 진보를 이루지 않고서 배길 수 없는 간절한 갈망을 느낀다. 이 모든 것이 인류의 영광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무지한 하층민들을 경멸했다. 그런데 루소가 나를 바로잡아 주었다. 오만한 우월감이 사라졌다. 나는 인류를 존경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며, 만일 이 반성이 다른 모든 직업에 가치를 줄 수 있다고, 즉 인류의 권리를 재확립할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면 나는 나 자신을 평범한 일꾼보다 훨씬 쓸모 없는 자로 보아야 한다.”

(프랭크 틸리, ⟪틸리 서양철학사⟫, 김기찬, 현대지성, 2020년)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린 유럽의 대혁명, 그리고 서양 사상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는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친 철학자가 바로 그, 장 자크 루소였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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