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리스좌’가 탄생하기까지

“내 앞에 있는 안내근무자의 안내를 받아 한 자리에 두 분씩 한 보트에 열 분이서, 머리? 젖습니다. 옷도? 젖습니다. 신발에도 젖습니다. 양발까지 젖습니다. 옷, 머리, 신발, 양발, 다 다 젖습니다. 물에 젖고 물만 맞는 여기는 아마존”

올해 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화제의 주인공이 있다. 에버랜드에 있는 놀이기구 <아마존 익스프레스>에서 근무하는 일명 ‘소울리스좌’다 김한나다. 시작은 별 것 없었다. 평소처럼 놀이기구 앞에서 하는 안내근무자의 안내 멘트를 읊었을 뿐이었다. 문제는 그의 ‘영혼 없는’ 태도였다. 그런데 그 ‘영혼 빠진’ 태도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왜 그랬을까? 그가 일하는 놀이공원이라는 공간적 특수성 때문이었다. 놀이공원은 카페나 음식점과는 다른 공간적 특징을 지닌다. 단순히 ‘물성’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그 공간을 꾸미고 있는 ‘특정한 주제’를 팔기 때문이다. 이곳은 모든 것은 연출이며, 그것이 곧 돈이 되는 공간이 놀이공원이다. 바로 이 ‘가상의 세계’를 과감히 무너뜨리고, “난 그저 돈을 버는 알바생에 불과합니다”를 외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인물이 ‘소울리스좌’인 것이다.

무릇(?) 놀이공원이라 하면 평소 이룰 수 없는 ‘판타지’를 대리만족하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찾아가는 곳이 아니던가. 디즈니랜드에서는 ‘공주’와 ‘왕자’가 되기도 하고,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에버랜드와 롯데월드라고 다르겠는가. 우리가 놀이공원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스릴을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씁쓸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꾸는 모든 ‘환상’이 사실 모두 덧없음을 놀이공원에서까지 깨닫고, 그 깨달음을 유희로 다시 뒤덮어야 하는 현실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한편으론 유쾌하다. 놀이공원의 ‘판타지’를 스스롤 전복시키고, 색다르게 즐기고 있는 모습이라니 말이다.

그래도 잠깐 궁금하지 않은가. 우리의 ‘환상’이 ‘현실’이 되는, 아니 현실이 된다고 믿었던 놀이공원의 순수했던 그 모습 말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스스로의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 눈앞에서 즐기고 싶었던 걸까? 왜 우리는 ‘가상의 세계’가 거짓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진짜라고 믿으며 유희로 즐기려는 걸까?

🎈소비문화의 끝판왕, 놀이공원의 탄생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놀이공원’이라는 공간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의 도전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인간의 ‘환상’을 눈앞에서 현실화시키기까지는 과학의 발전이라는 필수적인 부분이 존재해야 했지만, 그보다 먼저 ‘놀이’와 ‘공원’이라는 측면에 주목한다면 그 역사는 조금 더 앞당겨질 수 있겠다.

가장 먼저는 ‘고리짝’ 중세시절 때부터 즐겨왔던 축제 문화가 있겠다. 동서를 막론하고 각 지역에서는 특정한 날짜에 맞게 당시의 신분질서를 일시적으로 ‘해체’하는 일탈적 문화가 존재했다. 한국에서는 그 ‘일탈’이 마당극에 투영되어, 축제 날이면 ‘환상’을 현실화했다.

여기에서 또 하나, 두 번째로 유원지의 발명이다. 근대 이후 유럽에서는 대중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오락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특별한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것이 곧 유원지로 발전하게 된다. 국가 입장에서 유원지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관리가 쉽고, 소비를 원활히 해준다. 쉽게 말해 ‘내가 보는 곳에서 돈쓰며 놀아’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놀이공원의 핵심적인 기능인 과학의 발전을 홍보하고, 각 국가의 경제적 가시효과를 선전하기 위한 ‘박람회’의 시작을 들 수 있다. 박람회는 각국이 자신들이 이룩한 산업화과정의 성과들을 전시하고, 이와 동시에 방문객들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하면서 출발한 일종의 ‘대형 선전장’이었다. 특히 1893년에 시카고에서 열렸던 세계 박람회(Chicago World’s Fair)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관람차’의 등장은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이후 ‘박람회’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된다.

그렇게 놀라운 과학의 발전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을 경험한 인류는 20세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인류는 자신들이 이룩한 발전을 토대로 본격적인 ‘환상’의 ‘현실화’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놀이공원’의 탄생이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이 바로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코니아일랜드(Coney Island)다.

1895년에 이미 조성된 공간이었지만, 1920년대부터 새롭게 리뉴얼한 코니 아일랜드는 세계에서 최초로 ‘놀이기구’를 타기 위한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어 낸다. 오로지 ‘환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입장하는 ‘놀이공원’이었다는 말이다. 놀이공원 내부엔 ‘루나파크’, ‘드림랜드’라는 가상의 세계를 창조했던 거다.

특히 코니 아일랜드가 특별했던 건 ‘담장’으로 둘러싸여 진짜 현실과는 단절되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는 점이었다. 이건 이전의 유원지, 박람회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공간이었다.

더불어 코니 아일랜드는 20세기에 미국 사회에 나타난 여러 가지 변화들, 예컨대 막대한 경제적 호황과 이에 따른 소비중심의 여가와 오락문화의 탄생, 그리고 고급문화에서 배제되었던 대중들이 새롭게 만들어 낸 이른바 ‘대중문화’ 형성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공간이었다.

이후 이러한 변화는 미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되었고, 1955년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디즈니랜드의 탄생은 그 화려한 전성기를 알리는 시작이었다. 이후 유니버설스튜디오까지 합세하면서 대형 놀이공원의 전성시대, 흔히 말하는 테마파크의 시대가 열렸다. 물론 이 전성기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삐뚤어진 한국의 ‘환상 쫓기’의 시작

그렇다면 한국은 언제부터 ‘환상’을 직접 손에 잡고 싶어 했을까? 잠실의 롯데월드가 만들어진 시점? 아니면 이름에서부터 고즈넉함이 잔뜩 흩뿌려진 자연농원(現 에버랜드)일까? 생각보다 한국인들의 ‘환상 쫓기’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창경원이다.

원래 창경원은 창경궁 자리에 1909년 11월 1일 개원한 유원지다. 폐쇄되기 직전까지도 서울에서 가장 큰 유원지였고, 주말마다 나들이온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물론 이 창경원의 역사는 식민지기의 아픔이 서린 곳이기에 가슴이 저리기도 한다. 1909년, 일본인들이 망국의 우울함에 빠진 순종의 마음을 위로한다며 궁궐에 동물을 들여오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후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일본은 궁궐 안 전각 철거하고 일본식 정원을 세우고, 창경궁을 창경원(昌慶苑)으로 개칭했던 거다.

한국 최초의 놀이공원은 안타깝게도 조선인들의 ‘환상’을 현실화하는 곳이 아닌, 암울한 진짜 현실을 잊고, 가짜 ‘환상’에 빠져들게 하기 위한 공간에서 출발한 거다. 한국이 맞이한 왜곡된 근대화의 시작처럼, 놀이공원의 역사 또한, ‘환상’을 쫓아온 역사 또한 왜곡된 상태로 시작된 거다. 조선인들이 바라마지 않던 진정한 ‘꿈’이자 ‘환상’인 독립 국가로의 ‘판타지’는 거세되고, 식민지 백성으로서 즐길 수 있는 ‘유희’만이 남게 된 거다. 무엇이 진짜 조선인들이 꿈꾸던 ‘판타지’였을지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조선 왕조의 상징 중 하나였던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개원되면서 일반인들에게까지 개방된다. 한쪽에는 박물관, 또 다른 한쪽에는 식물원과 동물원, 그리고 ‘아동 운동장’과 같은 놀이 공간이 조성되었다. 물론 다른 놀이공원에서 나타나는 특징도 이곳 창경원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창경원은 ‘일상’에서의 탈출을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했고, ‘도시에서 자연을 간직한 낙원’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갔다.

창경원이 놀이공원으로서 역할을 했던 건 해방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전쟁 때 잠시 큰 고초를 겪었지만, 정부와 몇몇 기업, 그리고 독지가들로부터 40만 달러가 넘는 재건 기금을 모아 새롭게 리뉴얼한 시점이 1954년 7월 15일이었다. 이후 그럴싸한 놀이기구와 케이블카 까지 마련되면서 서울을 대표하는 놀이동산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던 1973년 서울에 ‘어린이대공원’이, 그리고 1976년에 용인에 자연농원이 차례로 개장하면서 한국에도 ‘놀이공원’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에서 ‘환상’이 제대로 현실화되는 시점은 80년대 ‘3저 호황’ 시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유는 당연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화려한 ‘판타지’를 쫓기 위한 기본적인 배경은 결국 돈이다. 한국에 소비시장이 제대로 꽃피우기 시작했던 때가 바로 그때였다.

그 출발을 알린 곳이 바로 ‘롯데월드’다. 1989년 정식 개장한 롯데월드는 1년 뒤 야외 테마파크 매직 아일랜드까지 개장하면서 현재의 롯데월드의 모습을 갖춘다. 원래 이곳은 석촌호수 옆에 있던 작은 호수로 서울 시민들이 드문드문 놀러와 물놀이를 하거나 낚시를 즐기던 곳이었고, 주변으로는 포장마차촌이 형성된 곳이었다.

그러던 중 1980년대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롯데가 서울시로부터 땅을 구입하면서 천지개벽이 시작된다. 롯데는 3저 호황으로 국민의 여가문화가 발전하고 있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국제적인 규모의 놀이공원을 만들 것을 계획하게 된다. 롯데월드는 기존 한국의 놀이동산들이 전시관이나 동물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던 것과는 다르게 철저히 놀이기구 중심의 테마파크로 만들어졌다. 단지 무엇인가를 구경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소비하는 공간으로 확장된 거다.

게다가 롯데월드는 강남이라는 한국 소비문화의 ‘끝판왕’이자 ‘절대자’격인 공간에 만들어진 놀이공원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그러니까 롯데월드는 한국인의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꿈’과 ‘환상’의 낙원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잠실에 위치한 롯데월드가 가지는 공간성이야말로 한국인들의 ‘판타지’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놀이공원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가격으로 입장권 4,500원, 자유이용권 13,000원이었으니 고가의 비용으로 살 수 있는 ‘판타지’였다.

🎈지금 우린 어떤 ‘환상’을 원하나?

롯데월드의 엄청난 성공에 힘입어 삼성에서도 1976년 ‘용인자연농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했던 유원지를 1996년 “에버랜드”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놀이공원으로 리뉴얼한다. 이후 에버랜드는 롯데월드와 쌍벽을 이루는 굴지의 놀이공원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렇게 한국에도 놀이공원 전성시대가 열리게 된 거다.

그럼 한국의 놀이공원에 담긴 ‘꿈’과 ‘환상’, 그러니까 ‘판타지’는 어떤 것일까? 한국의 놀이공원은 다른 나라의 여느 놀이공원처럼 “환상의 나라”, 혹은 “신비의 나라”와 같은 테마를 주로 다룬다. 하지만 그 테마 속에 내포한 ‘환상’의 실체가 무엇이냐 하면, 오리무중이다. 롯데월드만 봐도 그렇다. 마치 ‘중세유럽’을 컨셉으로 ‘환상’을 덕지덕지 발라놨지만, 롯데월드만의 무엇이 있느냐 하면 그런 건 딱히 찾기 힘들다.

유원지가 바탕이 된 에버랜드는 애초에 자연과 함께 하는 놀이공원이라는 커다란 테마가 있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이곳도 롯데월드와 크게 상황이 다르지 않다. 놀이공원 안에서는 하루종일 “모험 가득한 나라 마법의 나라, 환상의 나라”와 같은 노랫소리가 울려대지만, 대체 그 환상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다시 말해 한국의 놀이공원에서는 ‘꿈’의 실체도, ‘환상’의 구체성도 없다. 그곳에 간다고 만화 속 공주나 왕자가 되지도 못하고, 영화 속 주인공이 되지도 못한다. 입구로 들어가는 순간 ‘가상의 공간’ 속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놀이동산에서 ‘내가 누군지’ 깨닫지도 못한 채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2시간씩 줄만 기다려야 하는 암울한 ‘현실’만을 마주하게 되는 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애초에 왜곡된 형태로 놀이공원이 만들어졌던 그 옛날의 창경원 시절이었을까? 아니면 잃어버린 방향성 속에서 성장만을 달려가던 3저 호황 시절 소비중심의 여가문화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이런 방식의 놀이문화가 곧 한국인들이 ‘환상’을 쫓는 특유의 문화인 것일까?

지금 한국은 어떤 ‘환상’을 쫓고 있을까? ‘환상의 공간’에서도 알바생의 ‘초현실적’인 안내 멘트에 열광하는 한국인들의 ‘종특’을 바라보고 있다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사실 한국인들은 일상과 단절된 공간으로서 ‘판타지’를 ‘현실화’하기 위해 놀이공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길어봐야 ‘3분짜리’ 스릴을 위해 그 긴 줄과 고가의 입장료를 감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놀이공원은 더 짜릿하고, 더 무섭고, 더 위험한 것에 집착한다. 끝이 어딘지도 모른 채 극한 자극을 찾아 달려나가는 야생마 같다고나 할까? 모든 콘텐츠의 끝은 언제나 ‘자극’이다. 이 자극에 서사와 테마는 사치다.

이 현상의 옳고 그름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어디서부터 이 문제가 비롯되었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특별한 정답이 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런 대한민국이 너무 안쓰럽다. ‘환상’의 갈피를 잃어버린 나와 우리가 조금 지쳐 보인다. ‘꿈’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고나 할까?

Editor. 🍜브로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한 것으로도 모자라, 대학원에서까지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공부한 내용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또래 연구자들과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역사공작단>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중 역사로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인문학 콘텐츠를 생산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여러 대학을 전전하며 시간강사로 돈도 벌고, 제 이름의 유튜브 채널 <역발놈 김재원>을 운영하며 ‘지식중개사’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중입니다. 저서로는 《4.19혁명을 묻는 십대에서》가 있으며, 공저로 《한뼘한국사》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쉽게 읽는 서울사 : 현대편》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등이 있습니다.

🔖언리드북은 8월부터 매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글을 제공합니다.
해당 주제에 대한 텍스트만 봐도 책 한 권을 읽은 거나 다름 없을 거예요.

🔮8월은 ‘판타지’에 대해 이야기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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