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약속도 없는 일요일 이른 아침을 좋아한다. 아침 7시 정도에 눈을 뜨고 몸을 최대한 느리게 움직이며 이불 속에서 밍기적 거린다. 그러다 보면 금세 1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창으로 해가 들어올 즈음 침대에서 내려가 대청소를 시작한다. 늙은 강아지는 추위로부터 피신을 시켜놓은 다음 집 안 창문을 몽땅 열어둔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오들오들 떨며 청소를 하는 거다. 차가운 공기가 집안에 돌아야만 마치 그게 소독이라도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린 후 스팀 청소기로 바닥을 한번 더 닦아낸다. 그 다음부터는 가전제품과 선반, 손이 닿지 않는 곳곳에 묻은 먼지들을 닦기 시작한다. 그렇게 맹목적인 청소를 하는 동안의 나는 거의 경건한 어떤 의식 같은 걸 치루는 사람이 된다. 청소를 마친 후 좋아하는 향의 인센스 스틱을 켜둔다. 거실 곳곳에 향이 가라앉는다. 그때 바람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향은 조금 더 멀리 퍼진다. 거실 가운에 매트를 깔아두고 잠시 명상을 한다. 내가 유일하게 나에게 말을 거는 시간이다.
내가 이런 시간들을 좋아하고, 행복해 한다는 것을 느낀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나의 지난 1년 동안의 평일과 주말은 위태로운 줄타기 같았다. 뭐라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멈춰 있는 시간 자체가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멈춰있는 나를 누군가는 한심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라는 불안이 늘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는 “너 정말 그러다 큰일나.” 라고 이야기 했다. 그 말은 머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건강과 시간을 모두 잃고나니
22년도 하반기부터 나는 매주 병원을 다녔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정기검진을 하면서 발견해낸 혹을 몸에서 떼어냈고, 수술을 마치고 받은 건강검진에서 또 다른 장기에 큰 종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1, 2차 병원을 거의 연말까지 왔다갔다 하며 검사를 받았다. 그 사이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무리한 운동을 하느라 무릎 인대에 염증이 생겨 한동안 걷기를 중단하고 재활에 가까운 치료를 받았다. 대상포진을 무시하고 지나가 그 후폭풍을 아주 씨게 얻어 맞기도 했다. 대상포진균이 허리 신경으로 침투해 한동안 무릎과 마찬가지로 허리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태어나 처음으로 허리 신경에 내 손가락보다 긴 주사 바늘을 8개나 꽂아 넣게되는 경험도 했었다. 위경련의 고통을 두 번이나 느껴보았고, (아직도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번아웃과 우울증 때문에 집으로 가는 길 주저 앉아 몇 번 대성통곡을 했었다. 심지어 집 앞까지 갔다가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울며 친구에게 전화해 비밀번호를 물어보고 들어가게 된 바보같은(?) 경험도 했었다. 이런 신체화 증상들은 작년 하반기 사이 모두 내게서 벌어진 일들이다. 당시 다녔던 회사와 동료들에게 아파서 병원에 간다고 말하는 게 미안할 정도였으니까.
여자들은 30대가 되면 크게 아프게 되는 때가 한 두 번 씩 온다는 주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렇게 아프고 난 게 어떤 계기가 되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도 꼭 따라왔다. 생각해보니 그런 사례들을 왕왕 본 것 같기도 하다. 20대와 30대를 일과 청춘에 다 바치고 건강이 나빠지는 바람에 일도 회사도 그만두고 귀촌을 했다는 사람도 봤고, 퇴직금을 몽땅 털어 세계 여행을 떠났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인생의 어느 한 시퀀스에서 뭐로든 크게 한 번씩 얻어 맞아봐야 사람은 정신을 차리는가 싶었다.
그래서 일하는 것처럼 쉬기로 했습니다
아픈 것을 계기로 전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뭐, 비슷해요.”라고 답하겠다. 몸이 아프면서도 일을 했을 땐 ‘시간이 필요하다’ 라는 말이 다른 의미로 붙어 있었다. 일을 더 해야 하니까, 일을 할 시간을 24시간 보다 더 주세요. 아니면 내 몸을 몇 개로라도 쪼개어 주세요. 였다면 지금은 조금 인간적인 측면이 생겼다. 일 할 시간도 주고, 놀 시간도 주세요. 라고.
태국 치앙마이에서 얼마 간 여행자로 지냈었다. 낮 시간에는 덥기 때문에 야외 활동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고 그 시간에 노트북 하나를 들고 카페를 전전했다. 시원한 카페에 앉아서 일을 하는데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일을 하는 시간은 한국에서와 비슷했다. 현지 시간으로도 조금 이르게 일을 시작했으니 어쩌면 그보다 더 했던 것도 같다. 배가 고파질 때즈음이면 해가 질 시간이었고 나는 노트북을 닫으며 못내 아쉬워했다. 그때 느꼈던 간절함이 내게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했다는 거였다. 앉아서 일을 더 하면 되잖아? 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해가 질 때즈음엔 나는 수영을 해야했고, 옷을 갈아입고 바에 가서 술도 마셔야 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일할 시간이 부족해 그 긴박한 상황들 안에서 허우적 거리던 나는 없었다. 노는 것도, 쉬는 것도 일처럼 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Q.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소한 것들이 있나요?
🦝레서(콘텐츠 마케터, 5년차)
일상적인 순간들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는 오후 3~4시 즈음의 내리쬐는 햇살을 좋아해요. 고요하고 햇살 아래로 먼지가 차분히 가라앉는 그 순간을 굉장히 좋아해서 그 시간이 되면 볕이 잘 드는 방에 들어가 누워 있어요. 그냥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 있는 그 순간에 작고 가득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해달(콘텐츠 마케터, 5년차)
작은 것에서 행복을 자주, 많이 느끼는 편이에요. 카페에 가서 먹은 크로플이 너무 맛있어서 행복해질 때도 있고, 여행 가기 전 설렘 때문에 행복해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지나가다 예쁘다 생각했던 카페에 들어갔는데 음식도, 커피도 맛있으면 더 행복해지고요. 그래서 저는 “아, 나 행복하네.”라는 말을 자주 해요. 그럼 정말 행복해지거든요.
🦒기린(마케터, 8개월차)
친구들을 만나 카페에 가는 시간을 좋아해요. 그런데 그보다도 주변 사람들이 저를 필요로 하는 그 순간 가장 큰 행복을 느껴요. 친구들이 나를 보고싶어하는 순간, 혹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그 순간을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Q. 각자 MBTI와 내가 여가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레서(콘텐츠 마케터, 5년차)
본투비 ENFP예요. 차분히 앉아서 쉬는 것도 좋아하고, 밖에 나가 노는 것도 엄청 좋아해요. 여가 시간에는 대신 무조건 활동적인 걸 해요. 수영을 하거나 남자친구와 캐치볼을 하거나요. 밖에 나가 몸을 그렇게 움직이고, 혼자만의 시간에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보내고 있어요.
🦦해달(콘텐츠 마케터, 5년차)
INFP일 때도 있고, ENFP일 때도 있어요. 상황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편이에요. ENFP일 때는 친구들을 만나 그 에너지를 분출해요. INFP일 때는 방 안에 혼자 누워서 이너피스를 하는 시간을 보내요. 좋아하는 플리를 재생 시켜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해요.
🦒기린(마케터, 8개월차)
ESTJ일 때도 있고, ESFJ일 때도 있어요. T 성향이 가장 좀 크긴 해요. E라고는 하지만 I의 성향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친구들을 만나는 건 좋아하지만 너무 많은 인원은 조금 피하는 편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기는 하지만 너무 그 시간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보통은 소수의 친구를 만나서 이 에너지를 쏟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