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지 말라고 하니까 더 먹고 싶잖니?

다양한 이유에서 때때로 술 마시는 건 국가에 의해서 금지되어 왔다. 꽤나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미국만 하더라도 고작 100년 전까지 국민들의 술 소비를 단속해왔다. 한국이라고 예외일 소냐면 결코 아니다. 술 자체를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술을 만들 땐 국가의 허락이 필요했다. 조선에서는 주기적으로 술 제조는 물론 술 마시는 것은 엄격히 금지시켰다.

인간이 그렇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막으면 막을수록 술은 음성화되어 더 퍼져 나갔다. 인간은 언제나 답을 찾아내는 존재니까. 밀주가 성행했고, 밀주를 팔아치우는 존재들은 ‘폭력 조직화’되어 부를 축적해 나갔다. 그러니까 국가의 금주정책은 언제나 ‘실패’했다는 뜻이다.

곱씹어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술을 막다니? 모든 술병에 부착된 “지나친 음주는 암 발생의 원인이며, 임신 중 음주는 태아의 기형이나 유산, 청소년 음주는 성장과 뇌 발달을 저해합니다.”라는 경고 문구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 솔직히는 읽어도 그냥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다. “누가 몰라?”라면서 말이다. 그것이 술의 힘(?)이다.

하지만 술은 관리되어야 했다. 술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한 잔의 술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곡물의 양이 너무 많다는 뜻이다. 쌀 10kg을 막걸리로 만들면 (고작) 80병 정도가 나온다. 그걸 다시 (전통)소주로 증류하면 20병 정도가 나온다. 이것도 현대의 기술발달에 따른 계산법이다. 그러니까 먹을 쌀도 없는 마당에, 귀한 쌀을 가지고 술을 만들면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한반도의 술쟁이들은 여러 번에 걸쳐 고초를 겪어야 했다. 어떨 땐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했다. 밀주가 성행했지만, 국가에서는 죽어라 단속하고 술 마시는 인간들을 잡아댔다. 어쩌면 한반도의 긴 역사는 술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한반도의 나라들

그러다보니 한반도의 여러 나라에서는 식량을 보존해야 하는, 어쩌면 절박한 상황 속에서 금주법을 간헐적으로 실시해왔다. 보통의 금주령은 주로 가뭄이 심한 봄과 여름에 집중적으로 반포되었다. 특히나 흉년이나 기근이 들면 금주령을 시행했다. 쌀과 곡식이 귀한 것이 한반도뿐이었겠는가. 삼국지의 여포를 생각해보자. 금주령을 어긴 부하장수들에게 곤장을 쳤다가 그들이 배신해서 조조에게 잡혀버리지 않았던가 말이다.

한반도의 여러 나라들은 꽤 오래전부터 술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백제의 다루왕은 “추곡이 여물지 않아”, “소곡주 빚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니까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백성들에게 술을 만들지 말라고 한 것이다. 고려 때도 마찬가지였다. 현종이 즉위하고 얼마 뒤 “비구나 비구니가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한다. 당시는 절에서 주로 술을 빚어 유통시켰는데, 이를 원천적으로 금지한 거다.

술에 대해서 가장 엄격하게 다스렸던 나라는 바로 조선이다. 편견과 오해가 가득한 이야기지만, 왜인지 수긍이 가지 않나? 조선에서는 술을 금지했을 것‘만’ 같은 느낌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조선은 기근이 들었을 때마다 금주령이 내렸다. 1592년 개국과 동시에 흉작을 핑계(?)로 금주령을 내린 조선은 이후에도 여러 대에 걸쳐 빈번하게 금주령을 실시한다. 태종은 거의 매년 금주령을 내렸고, 성종도 그랬다.

중종 때는 심지어 과거시험에 대놓고 ‘금주령을 내려도 말을 듣지 않는데, 이걸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식의 시험문제까지 출제하며 술을 금기시했다. 물론 전대 임금이었던 연산군이 마셔댄 술 때문이었겠지만, 해도 너무 하지 않는가 말이다. 공무원 뽑는 시험문제에서 백성들의 소소한 ‘기쁨’을 뺏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니. 중종 연간은 조선 술쟁이들의 1차 고비였다. 이후로도 금주령은 조선시대 내내 간헐적으로, 아니 꽤 자주 있어왔다. 흉년이 들어서, 국왕이 상을 당했다고, 태풍이 와서, 기상이 이상해서 등등의 이유로 조선은 금주령을 내렸다.

조선 술쟁이들의 2차 위기는 영조 연간이었다. 영조는 재위 기간 내내 금주령을 내린 왕으로 유명하다. 그것도 대단히 엄격한 잣대로 금주를 강행시켰다. 영조가 즉위하고 7년이 지났을 무렵, 그러니까 1731년에 있었던 일이다. 사간원(조선의 언론기관)에서 “곡식과 재물을 소모하는 것은 술의 피해가 가장 심각”한데 요즘 들어 “금주禁酒가 해이”해졌다며 영조에게 일러 바친 거다. 영조는 이에 대해 “요즘 보니까 있는 놈들한테는 제대로 단속도 못하면서 말이야, 엄하게 금지하라고만 하는데, 이제부터는 걸리면 얄짤 없어”라며 강력한 단속을 예고한다. 그렇게 영조 때는 술을 빚다가 걸리면 섬으로 유배 보내고, 사서 마시다가 걸리면 노비가 되도록 조치한다. 양반은 귀양 보내고, 중인은 수군으로 귀속시켜 버렸다.

심지어 제사 때도 술을 쓰지 못하게 막아 버린 영조였다. 한번은 병마절도사였던 윤구연이라는 사람이 술을 빚었다는 소문이 돌자 영조는 그를 잽싸게 잡아버린다. 그리고는 2주 뒤 윤구연은 참수형을 당한다. 그리고 그 장면은 영조가 직접 참관했다. “술 마시면 죽는거야”라고 강하게 경고한 거다. 술을 마시려거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대였다.

영조가 그랬으니, 정조라고 가만히 있었을 소냐 싶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다. 영조 연간의 강력한 금지는 아마도 영조가 태어나기 얼마 전(1670~1671년) 조선이 겪어야 했던 경신대기근의 여파였을 거다. 먹을 쌀이 없어 인육까지 먹어야 했던 극강의 흉작이 고작 수십년 전에 발생했으니, 영조의 판단을 가혹하게만 볼 수는 없다.

수리 기술은 점점 발달했고, 이앙법이 확산되면서 벼농사의 기술도 발전되기 시작했다.

인분을 비료로 쓰면서 지력도 높아졌고 갈수록 자연스럽게 농업 생산성은 높아졌다. 먹고 살만 해졌다는 뜻이다. 술을 빚는 일이 큰 생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 거다. 정조는 엄격히 금지되던 누룩(술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발효제)의 판매를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허용해버린다. 이후 조선은 집집마다 술을 각자의 술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다양한 술이 생산된다.

🍷금지가 아니라, 통제를 선택한 조선총독부와 군부정권

1910년 일제에 의해 식민 통치가 시작되면서 조선총독부 또한 술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백성들의 안정적인 식량 확보를 위한 조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가 시작한 건 세금 걷기였다. 일본 제국주의 본국에서 재정 지원을 원활히 받을 수 없었던 조선총독부는 자체적인 재정 확보를 위한 조치를 취한다. 1916년 일본에서 주세법을 제정을 주도했던 메가타 다네타로가 재정 고문으로 오면서 「주세령」을 만들어 버린 거다. 그렇게 조선에서는 면허가 없는 업장은 술을 만들 수 없게 되었고, 신고하지 않은 술은 밀주로 단속하기 시작한다.

이후 조선에는 자본력을 갖춘 일본 양조장이 진출하기 시작했고, 일본에서 마시는 술(사케와 맥주 등)을 제조하는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그간 가업으로 술을 빚어 내다 팔던 조선의 전통 업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이후 사실상 가양주 제조를 금지시키자 한국의 전통주는 대가 끊기게 된다. 간헐적 금주령이 아니라, 지속적 통제가 이루어지자 전통적으로 만들어지던 술 자체가 사라지게 된 거다. 총독부의 단속과 전에 없던 ‘세금 부과’로 조선인들은 밀주를 만들어 나름의 대응을 이어갔지만, 사실상 전통은 끊겼다.

이런 분위기는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주세법은 유지되었고, 해방과 동시에 일어난 전쟁으로 식량문제는 더욱 심화되었다. 1960년대 초반의 대흉작, 거기에 더해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생산성 하락은 군사정권의 골칫거리였다. 미국에서 원조 받아온 밀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혼분식 장려운동)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술에 손을 댄다. 막걸리를 포함해 술 제조 전반에 쌀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한 거다. 조선총독부와 마찬가지로 금지가 아닌 통제를 선택한 거다. 1966년 8월 28일 이후 박정희 정권은 ‘쌀 사용’을 전면 금지시킨다. 그렇게 막걸리는 밀로 빚는 시대가 찾아왔다. 더불어 고구마를 원료로 한 희석식 소주도 이때 탄생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뒤, 지금 우리의 술

군사정권의 주조 통제로 밀로 만든 막걸리(1977년 이후 수입쌀)가 양적으로 엄청난 팽창을 했고, 희석식 소주가 완벽히 시장을 점령한다. 전통주의 명맥은 끊겼고, 술의 질적 수준은 현격히 떨어졌다.

그런데 한국인들 ‘술사랑’은 끝나지 않았으니, 저렴하고 질 나쁜 술은 시장을 잠식하며 외형을 엄청나게 키워버렸다. 1980년대 이후 규제와 제약이 조금씩 풀리면서 전통술 50여종이 재현되기도 했고, 다양한 술을 주조하는 사업장이 영세하게나마 운영되면서 전문 양조기술을 키워나가며 영업력을 키우고 있다.

원래 그렇다. 역사적으로 금지와 통제의 시대가 끝나면 어떤 사업이든 날개를 달게 마련이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도 금주령이 풀리면서 본격적인 미국식 위스키(버번)의 시대가 열렸다. ‘우리’만큼 술을 사랑하는 나라 러시아에서도 1930년대 강력한 금주 캠페인 이후 ‘보드카의 생산과 판매’가 확대되었다.

물론 이 두 사례는 국가에 의한 안정적인 ‘통제’를 전제해 둔 ‘술의 자유’였다. 범죄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강력하게 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두 사례를 통해 술을 어떻게 통제하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강력한 단속과 금지가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100여 년 간의 술 통제가 어떤 결과(전통주의 소멸, 질 낮은 주류의 유통)를 가져왔는지 충분히 확인했다. 국가가 강요하는 가치관으로 음주문화를 만들면 그 결과는 왜곡되고 비뚤어질 수밖에 없는 거다. ‘받아들인 척’을 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진정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최근 MZ세대에서 불고 있는 술 문화의 변화는 이를 단적으로 준다. 맛있는 술을 맛있게 먹으려는 술 문화의 시작 말이다. 이건 MZ세대가 특별나서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실패를 딛고 조금씩 빗장을 푼 ‘술에 대한 금지와 통제’ 덕분이다. 여전히 국가와 인민은 술을 놓고 전쟁을 치르지만, 결국 이렇게 아름다운 답을 찾아가고 있다.

글. 🍜브로커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한 것으로도 모자라, 대학원에서까지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공부한 내용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또래 연구자들과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라는 모임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역사공작단>이라는 팟캐스트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중 역사로 돈을 벌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인문학 콘텐츠를 생산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여러 대학을 전전하며 시간강사로 돈도 벌고, 제 이름의 유튜브 채널 <역발놈 김재원>을 운영하며 ‘지식중개사’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중입니다. 저서로는 《4.19혁명을 묻는 십대에서》가 있으며, 공저로 《한뼘한국사》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쉽게 읽는 서울사 : 현대편》 《세상에서 가장 짧은 한국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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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은 ‘술’에 관해 이야기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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