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Part 4 | 우리 인류에게 남은 대안은 ‘종말’뿐

사피엔스 Part 4 | 우리 인류에게 남은 대안은 ‘종말’뿐

시종일관 과거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비판, 회의론적 시각을 견지해온 유발 하라리는 이번 장에서 역사를 통해 현재의 ‘우리’에게 통찰을 넘어 강력한 경고장을 날립니다.

첫 페이지에 실려 있는 원자폭탄 사진은 유발 하라리가 던지고 싶은 모든 것이 담겨 있죠. 그 사진이야말로 ‘우리’의 손으로 ‘우리’가 끝을 만들고 있음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유발 하라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미래는 무엇일까요?

정말 우리에게 남은 대안은 이번 장의 마지막 절의 제목처럼 “종말”뿐일까요?


📃무지의 발견

사피엔스는 과학혁명으로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가 정리한 변화(압도적으로 늘어난 생산량과 소비량, 달착륙, 컴퓨터의 발명, 미생물의 발견 등)를 천천히 읽고 읽자면, 자못 그 위대함에 놀라면서도 변화의 속도에 압도되어 무섭기도 합니다. 특히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45초의 첫 원자폭탄이 터진 시점을 기준으로 변화된 세계는 “끝장”을 향해 내딛는 중이라고 유발 하라리는 경고합니다. 이 변화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NASA

5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과학이 사피엔스의 능력을 증가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은 정부와 민간자본은 과학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현대 과학’이 시작된 이래로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죠. 흥미롭게도 현대 과학의 토대에는 ‘무지’에 대한 인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일부’이거나, 혹은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새롭게 나타나는 더 합리적인, 더 과학적인 증거들을 최선으로 인정하는 태도죠.

바로 이 새로운 전통으로 말미암아 기존의 지식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유연한 탐구가 가능해졌죠. 하지만 반대로 이 새로운 전통은 기존의 사회를 단단하게 지탱해주던 “상상의 산물”(이전 장에서 계속 떠들어대던 다양한 신화들)에 대한 의심을 낳게 했고, 곧 공동체를 흔들었죠. 결국은 정치사회적 질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비과학적인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그것이 바로 “인본주의”라는 신화라 이야기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글 속에서 “놀라지 말라”며 계속해서 우리를 달래주고 있지만, 놀라움을 참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인본주의”에 대해서, 더 디테일하게는 “인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의심하거나, ‘틀린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이건 근대 과학의 연구방법론에서 ‘틀린’ 생각입니다. 무엇이든 ‘무지’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지금의 사회과학적 연구의 토대는 처음부터 정답을 두고 시작하기 때문이죠.

유발 하라리가 바라본 오늘날의 교육은 더욱 이 믿음에 근거하여 ‘올바른’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학 중심의 교육이죠. 인문학은 점점 더 수학에 의존하고, 통계학은 인문학의 방법론으로 고착화되어 가고 있죠.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제 과학입니다. 인문학은 과학적 방법론의 토대 위에서 다시 쓰여야 하는 학문이죠. 사피엔스는 점점 더 과학에 의존하고 있고, 정부기관은 물론 자본가들도 모두 과학에 투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Photo by Dan-Cristian Pădureț on Unsplash


이렇게 발전된 과학은 죽음을 극복하는 방향으로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불멸을 추구하고 있는 사피엔스의 과학혁명을 유발 하라리는 ‘길가메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 시도가 성공하든, 그렇지 않든 이 프로젝트는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완벽히 분리해 버렸습니다. 이제 종교에서 이야기한 사후세계 따위는 인간의 관심사가 아니죠. 적어도 과학의 관심사는 전혀 아니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과학의 필요는 전쟁을 통해서도 확인되었고, 확인되고 있습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과학의 힘을 목도했죠. 공격과 방어를 통틀어 과학은 무기를 만드는 어디에서나 필수요소입니다. 하지만 사피엔스의 오랜 역사 속에서 과학은 변화의 핵심 축이 되지 못했죠. 화약이 발명되고도 폭죽으로만 쓰였을 뿐, 무기화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 이유는 화약이, 더 나아가 새로운 무기류가 자신들의 지켜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우리의 사고방식과는 완전히 달랐던 겁니다.

하지만 과학과 산업과 군사 기술이 자본주의와 만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죠. 과학이 혁명적 변화를 낳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돈”이었습니다. 과학이 부를 창출할 수 있게 되면서 변화에는 속도가 붙었습니다. 근대 이후 변화된 자본주의 세계체제 속에서 과학은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이죠.

과학에는 돈이 많이 듭니다.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죠. 과학이 자본주의 세계와 어울릴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과학은 제국과의 결혼을 선택합니다.


📃과학과 제국의 결혼

유발 하라리는 유럽인에 의해 시작된 대항해시대야말로 과학과 제국이 만난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이야기합니다. 대항해시대의 무수한 발견과 이에 따른 과학적 발전은 결국 제국주의 국가의 ‘점령’과 ‘착취’로 이어졌고, 수많은 식민지를 양산해냈죠. 과학과 제국이 함께 ‘발전’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한편으로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문화가 비문명이라는 핑계로 사라졌고, 비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멸시당합니다.

왜 유럽이었을까요? 왜 하필 수많은 문화권 중에서도 유럽에서 과학과 제국의 성스러운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18세기까지만 해도 세계의 중심은 단연 아시아였습니다. 세계 경제의 80%가 아시아에 있었죠. 과학에 투자할 수 있는 자본력도 아시아가 단연 앞섰습니다. 그런데 왜 유럽이 먼저 시작했을까요?

이 물음은 굉장히 오래된 질문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왜 일본이 먼저였을까?”라는 질문과도 연결될 수 있죠. 근대화가 늦었던 모든 국가에서는 이 질문에 ‘집착’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중국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국영방송국(CCTV)에서 <대국굴기>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도 만들었을 정도죠. 大国崛起, 즉 대국(선진국)이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이를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정치적 구조”로 설명합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혁명적 변화가 유럽의 다른 나라와 미국에서 빠르게 쫓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 사회적 구조가 비슷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 구조가 바로 자본주의와 과학이라고 유발 하라리는 말합니다.

Photo by Ricardo Gomez Angel on Unsplash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앞서 살펴봤던 ‘무지’에 대한 인정입니다. 유럽인들이 무지를 인정하는 순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정복의 DNA’가 각인될 수 있었죠. 새 영토에 대한 욕망은 새 지식을 획득한다는 정당성으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만사의 비밀을 모두 알아서 그 땅을 다스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에 알기 위해 점령하는 것은 전혀 다르죠. 탐사와 탐험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전 세계를 누빈 침략자이자, 정복자이자, 제국주의자들은 과학자들을 동반하게 됩니다.

이로써 제국주의자들은 “직접 이웃한 지역”을 넘어 지배권을 한없이 확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지식에 관한 탐구와 탐험을 위해서 말이죠. 사실은 이 모든 것은 ‘탐욕’ 덕분이었습니다. 이런저런 핑계와 설명이 장황했지만, 유발 하라리가 말하고 싶었던 유럽 제국주의가 과학과 만난 단 하나의 이유는 탐욕이라는 “열병”때문이었습니다.


📃자본주의의 교리

제국, 과학, 탐욕. 이 모든 것들에는 이 필수적입니다. 이들을 합쳐주는데 가장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연결고리는 돈이죠. 이때 연결고리를 더욱 단단하게 해주는 단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성장”이라는 단어입니다. 사피엔스의 역사의 오랜 기간은 비슷한 경제 규모를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과학과 제국이 만났던, 그러니까 익숙한 표현대로라면 근대 이후 사피엔스의 ‘성장시계’는 미친 듯이 빠르게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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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제대로 흐를 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변화는 ‘신뢰’‘신용’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용을 바탕으로 은행이 탄생한 것이죠. 하지만 신용에는 커다란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혹은 개인)보다 미래의 ‘우리’가 더 잘 풍요로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혹은 환상)입니다. 신용은 한마디로 미래를 담보삼아 현재의 ‘우리’에게 무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겁니다. 근대 이후 사피엔스의 성장은 이를 토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이때 과학혁명과 “진보”(성장의 다른 말)가 만납니다. 무지를 인정하고, 과학에 돈을 쏟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미래의 과학이 성장할 것이라는 막연한 신뢰를 바탕으로 엄청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죠, 모든 것은 그렇게 돈을 매개로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탄생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돈을 벌려는 이기적인 생각은 사실 이타적인 생각이며, 공동체 부의 기반이 된다.”라는 스미스의 주장은 이미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음을 글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미스의 경제이론은 곧 자본주의 시대의 교과서를 넘어 성경이 되었죠. 여기에 획기적인 아이디어 하나가 더 붙습니다. “이윤을 생산에 재투자”하라는 혁신적인 생각이었죠. 자본주의 시스템이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근대 이전의 왕정 시스템을 잡아먹었습니다. ‘지리적 발견’이라 불리던 탐사는 곧 정복으로 바뀌었고, 정복은 곧 식민지 건설로 이어졌습니다. 왕과 사업가의 재정은 날로 불어났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미개척지’는 탐험가와 사업가를 이어주는 ‘신뢰’이자 신용이었습니다. 그렇게 제국주의가 시작된 겁니다. 제국의 부는 점점 늘었고, 수익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커져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금융 시스템은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제국과 제국 아래 기생하는 자본가들은 식민지를 건설하는 과정(투자자의 이익을 실현하는)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헤집고 다니며 쑥대밭을 만들었습니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할 것 없이 식민지를 개척하며 제국의 팽창을 경험 나라들은 한결같았죠. 과학, 제국, 돈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은 전 지구를 자본주의라는 괴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쯤에서 유발 하라리는 질문을 던지죠. 바로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물음입니다. 정치와 경제의 상관관계에 대한 그의 질문은 곧 분배라는 자본주의의 “옥에 티”로 향합니다. 경제의 파이가 커지고, 이윤과 생산량은 끝을 모르게 늘어나지만 애덤 스미스의 성경 말씀과는 다르게 부는 언제나 편중되어 늘어나는 상황을 모두가 목도해야 했던 겁니다.


📃산업의 바퀴

유발 하라리가 지금의 ‘우리’가 만든 사회 시스템의 핵심 난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이 파트에서 등장합니다. 바로 유한한 에너지입니다. 과학이 막대한 돈을 먹으며 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핑계는 성장이며, 성장을 끝없이 만들어 줄 동력이 바로 에너지입니다. 그런 에너지가 유한하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요?

물이 끓어 오를 때 튀어 오른 주전자 뚜껑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낳았고, 내연기관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거기에 전기산업의 발전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죠. 이 모든 과정은 곧 에너지 전환이라는 과학의 발전에 그 토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피엔스는 강력한 도전에 직면합니다. 바로 태초의 원자재가 유한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실 에너지가 유한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에너지를 끌어내 효율적으로 전환하는 원자재”가 유한한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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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의 고갈은 단순히 내연기관 등의 산업 시설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농경, 축산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죠. 채식주의자 유발 하라리의 시선에는 유한한 에너지의 대표적인 사례가 ‘석유산업’이 아닌 ‘농축산 산업’에 있습니다. 더불어 식품산업을 넘어 소비산업 전반으로 시선을 돌리죠. ‘우리’의 소비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겁니다.


📃끝없는 혁명

유발 하라리가 생각하는 에너지와 원자재의 고갈은 사실 ‘석유의 고갈’이나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줄 ‘자원의 희소성’ 따위가 아닙니다. 이런 류의 주장을 하는 “종말론적 예언가”들은 모두 헛짚은 것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죠. 그가 생각하는 에너지와 원자재의 진짜 위기는 “생태계 파괴”입니다.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 그리고 광범위한 오염 같은 “자연 변형”(그는 파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습니다.)이죠.

자연 변형의 최초 단계는 가족 공동체의 해체였습니다. 국가와 시장의 역할이 커지면서 가족과 소규모 공동체의 테두리에서 사는 삶은 전혀 이상적이지 않게 되었죠. 국가와 시장은 곧 가족공동체의 해체를 위해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담론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는 젊은 세대를 부모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어졌죠. 부모에게서 멀어진 젊은 세대가 기댈 곳이라고는 국가와 시장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더불어 젊은 세대와 멀어진 부모세대는 각자의 노년을 국가와 시장에 기대야 했죠. 그렇게 국가와 시장과 개인은 삶을 담보로 거래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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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발 하라리의 이 관점은 사실 한국 사회에는 들어맞지 않습니다. 시장경제가 여느 선진국 못지않게 성장한 한국이지만, 국가와 개인의 거래는 덜 성숙한 모양새죠. 아직 한국은 부모와 자식이 완전히 결별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끈끈함은 더욱 강해지고 있죠. 유발 하라리가 생각한 ‘자본주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한국에서 젊은 세대는 여전히 부모 세대에 기대야 합니다. 이건 단순한 청년실업률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는 청년세대가 홀로 설 수 있는 주거조건을 마련해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결혼, 육아와 같은 기본적인 복지제도조차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성장’하고 있죠.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요? 유발 하라리의 관점과는 전혀 상반된 움직임 덕분입니다. 바로 가족공동체입니다. 곧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에 기생해 주거를 해결하고, 결혼과 출산, 그리고 육아까지 맡겨버립니다. 사춘기 시절의 반목을 뛰어넘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가족 상봉이 절실히 필요해진 거죠. 이 과정에서 부모 세대의 부는 고스란히 ‘대물림’ 됩니다. 국가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아니, 사실 국가는 이 문제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주장하는 ‘국민’과 ‘소비’로 묶인 상상의 공동체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재구성되고 있는 형편인 겁니다. 한국은 바로 이 가족공동체가 국민이라는 이름의 상위 공동체로 자연스럽게 상위호환되는 상상을 하는 겁니다. 한국적 민족주의가 강력한 혈연을 바탕으로 한 ‘가족 중심 서사’인 까닭입니다.

이는 오히려 훨씬 강력한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가족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니까요. 우리는 피를 나눈 ‘한 가족’이라는 상상은 국가와 국민을 더욱 강력하게 묶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여기에 소비 공동체까지 묶이면 자본주의는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됩니다. 우리의 자랑스런 기업 삼성, 현대, LG를 위해 영원한 구매를 약속하게 되면서 입니다.

한편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제국은 은퇴했고, 국가 간의 폭력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아랍과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분쟁은 대부분이 내전이거나 쿠데타였죠. ‘우리’는 지금 사피엔스의 그 어느 시절보다 평화로우며 행복한 시절 속에 살고 있다는 말이죠. 하지만 이 평화는 전쟁의 대가가 어느 시절보다 크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그에 비해 작아진 탓도 있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평화가 곧 돈이죠.

유발 하라리가 보기에 무엇보다 현재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평화를 사랑하는 엘리트”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사피엔스는 독립적인 공동체를 벗어나 하나의 “지구 제국”으로 향해 가고 있으며, 이는 곧 개별적인 국가 간의 분쟁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여기서 아마 독자들은 어색함을 느꼈을 겁니다. 시종일관 비관적이고, 회의론적이고, 암울하고, 어두운 미래를 그려오던 유발 하라리의 글에서 우리 시대의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게다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우리’라니요?

유발 하리리가 갑자기 관점을 바꾸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것도 같은 책 안에서 전혀 다른 관점으로 충돌되는 서사를 그리지는 않을 테죠. 그는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 어느 시절보다 평화로운 지금, ‘당신은 행복합니까?’와 같은 질문입니다. 스스로 이야기하듯이 이런 질문은 역사학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사람이 역사를 향해 물을 수 있는 중요하고도 근원적인 질문이죠.

사피엔스의 ‘발전’은 행복의 크기를 키워왔을까요? 우리는 막연히 고대의 수렵 채집인보다 중세인이 행복하다고 가정해왔고, 중세인보다는 근대 이후의 우리가 행복하다고 믿어왔습니다. 보다 평등해졌다고 믿었고, 보다 발전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죠. 유발 하라리는 여기서 중도적인 입장을 고수합니다. 행복이란 원래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객관적인 지표(낮아진 유아사망률 따위)를 통해 확인되는 행복도 있지만, 모든 행복이 지표만으로 해석되지도 않습니다.

Photo by SIMON LEE on Unsplash


오히려 유발 하라리는 더 큰 관점에서 행복을 바라볼 것을 주장합니다. 사피엔스 종을 넘어 지구 전체를 바라보자는 겁니다. 사피엔스가 현재 누리고 있는 행복은 지구상의 다른 동물의 희생 아래에서 존재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조금 뜬금없이 들리시나요? 혹자는 ‘그래서 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인간 중심의 사고는 현재 ‘우리’를 지배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이니까요. 유발 하라리가 채식주의자이기에 가능한 사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정말 중요한 사회적 이슈 중 하나이고, 전 장에서 살펴봤듯이 ‘유한한 원자재’라는 인류에게 닥친 생존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죠.

유발 하라리의 날카로움은 이 장의 말미로 갈수록 현격하게 떨어집니다.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들은 경험했겠지만, 점점 논의는 ‘자기계발서’에서나 볼 수 있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따위로 흘러가죠.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행복과 쾌락 사이의 관계라던지 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페이지를 낭비합니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행복의 역사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 한다’고 말이죠.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앞 장에서의 실망감은 마지막 장까지 이어집니다. 긴 호흡의 책이었던 만큼 보다 새로운 관점의 마무리를 원했던 독자들은 여기서 더욱 큰 실망을 느꼈을 겁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한 사피엔스가 맞이한 강력한 도전은 오히려 새로운 종의 탄생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유전자를 “주물럭”거려 만들어 낸 새로운 ‘우리’는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유발 하라리는 거기에 더해 사이보그의 존재는 사피엔스가 변화할 또 다른 새로운 종이라고 주장합니다. 더불어 완전히 무생물적인 존재의 탄생(AI)도 유심히 지켜봐야 할 부분이죠. 그리고 AI와 생명체의 결합까지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거지?’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사피엔스가 마주할 그 미래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과거는 어디서 만나는 걸까요? 인터넷만 연결되면 각종 언로사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미래사회’에 대한 뻔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마지막 장은 그간 유발 하라리가 날카롭게 분석해 온 과거와 어디서도 만나지 않습니다.

Photo by Milad Fakurian on Unsplash

역사학자의 시선에서 미래를 보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허무하게 사라집니다. 과거를 통한 통찰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까지‘만’이었습니다. 물론 여기까지도 훌륭한 성과입니다. 때문에 마무리가 더욱 아쉬워지는 순간이죠.

그간의 역사학자들이 할 수 없었던 거대한 지구사적인 시선에서 과거를 훑어내고, 그 시선을 통해 현실을 날 서게 비판하는 능력은 실로 놀랍습니다. 지엽적인 연구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과거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간의 당연하게 생각했던 ‘고정된 과거’가 새롭게 해석되는 놀라운 경험도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값지고 의미있는 책입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국사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혀 있던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읽어보길 강권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단, 마지막 장은 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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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아니라, 이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 조선은 왜 탐욕이라는 ‘열병’을 키우지 못했을까?
  • 같은 문화권이었던 일본이 다른 나라에 비해 탐욕에 빨리 눈을 뜬 이유는 뭘까?
  • 사피엔스의 종말은 새로운 종의 탄생일까, 아니면 인류의 소멸일까?
  • 신이 되고자 하는 사피엔스의 ‘도발’은 윤리와 도덕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사피엔스』를 함께 읽는 시간이 모두 끝났습니다.
언리드북은 다음 주, 5월부터 다시 소란한 책 이야기를 나누어볼 예정입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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