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왕이 된 그 남자, 영조

숙종은 ‘환국’이라는 극단적 형태의 정국 운영방식을 선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붕당 정치의 변질을 가져온 임금이었습니다. 숙종 집권 이후 각자의 붕당이 생각한 공론, 그러니까 조선을 어떤 나라로 만들 것인가를 두고 서로의 의견에 치열하게 토론하던 모습은 사라졌죠. 그저 상대 붕당을 없애야 할 대상, 심지어는 상대 붕당의 인물을 죽음으로까지 몰아가는 비정상적 정치가 일상화되어 버린 겁니다.

문제는 숙종 이후였습니다. 숙종이 그토록 자신감 있게 ‘환국’을 주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지하다시피 그의 ‘완벽한’ 정통성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실 소생인 왕자가 없었죠.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장희빈의 아들이 세자 자리에 앉아 소론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무수리 출신이었던 숙빈 최씨의 아들인 연잉군은 노론의 지지를 받으며 경쟁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인현왕후가 이미 죽은 뒤였고, 세 번째 왕비였던 인원왕후에게서도 왕자를 얻지 못했죠. 숙종에게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고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