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한국사 Part 1 | 고구려판 ‘🔥파괴왕’ 이야기

우리에게 소설 <삼국지>로 유명한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 이야기는 사실 실제 역사였습니다. 위·촉·오 세 나라 간의 경쟁에서 열세에 몰린 오나라의 손권은 주변국과의 연대를 모색하던 중 고구려와 접촉하게 되었죠. 그렇게 기분 좋은 만남을 시작한 두 나라였지만, 오해와 갈등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어 버립니다. 오나라와 고구려 사이의 연대와 갈등을 살펴보면 급박했던 당시의 시대 상황은 물론, 현대 외교전에도 적용 가능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손권은 왜 요동에 손을 내밀었나


소설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전부 다 읽지는 않았더라도, ‘천하삼분지계’로 유명한 이 책이 대충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있죠.

책의 저자 안정준은 사실 위·촉·오의 팽팽한 세력 균형은 소설일 뿐이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중심부는 황하 중하류를 아우르는 화북지역이었습니다. 이곳을 장악한 군웅이야말로 사실상 ‘중원’을 장악한 자였고, 그 사람이 바로 조조였죠. 그리고 곧 조조가 죽자 그의 아들 조비가 위나라를 세웁니다. 그렇게 중원은 조비의 위나라가 차지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에 반해 오나라가 장악한 장강 유역은 이 시기 농경 기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었고, 이 지역의 소수민족들 또한 오나라에 장악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인구, 생산력, 군사력 등등. 오나라는 사실 뭐하나 위나라에 압도적이지 못한 실정이었던 겁니다.


사실 촉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위나라에 비할 바가 아니었죠. 오나라는 위나라 군대의 분산을 위해 촉나라와의 연대를 전략적으로 취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손권은 생존 전략 중 하나로 다양한 국가와의 연대를 꾀했고, 바로 이때! 고구려가 눈에 들어옵니다.


고구려와 오나라의 인연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바로 ‘공손씨’ 와의 일화입니다. 이 시기 고구려와 위나라 사이의 요동·요서 지역은 ‘공손씨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중원을 장악하고 주변 정리에 들어갔던 위나라는 곧 ‘공손씨 세력’과 마주하게 됩니다. 둘 사이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죠.


그 순간 오나라는 ‘공손씨 세력’에 손을 내밉니다. 이들은 손권이 위나라 견제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카드였습니다. 손권은 적극적으로 ‘공손씨 세력’에게 동맹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이에 반해 ‘공손씨 세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오나라와 동맹을 맺었을 경우의 득과 실을 면밀히 검토해야 했죠. 위나라는 강성했고, 두려운 상대였죠. ‘공손씨 세력’의 결정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선물과 사신단 파견이었습니다.


손권은 그들이 보낸 최소한의 예의 표시에 감동해 이를 곧장 군사동맹이라 착각합니다. 그러고는 요동 땅에 사신단 400명, 군사 1만 명이 진귀한 보물을 가득 짊어지고 떠나게 되었죠. 오나라의 참모였던 장소가 공손씨 세력의 의중에 의문을 품었지만, 손권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손권은 그들을 믿었고, 위나라를 견제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대규모 사절단에 놀란 ‘공손씨 세력’은 군대를 해안가에 머물게 하고, 사신단 400명과 보물만 군주였던 공손연이 있는 양평 지역으로 이동시켰죠. 해안가에 있던 오나라 군대는 별안간 괴한의 습격을 받습니다. 바로 공손연이 보낸 군대였죠. 그리고는 사신단 대표들의 목을 잘라 위나라 조정에 갖다 바칩니다. 공손연의 선택은 오나라가 아닌 위나라였던 겁니다.


그런데 이때 오나라 사절단 중 살아남은 4인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진단과 장군, 두덕과 황강입니다. 살아남은 이들은 정처 없이 거지꼴로 위나라의 반대편인 동쪽으로, 또 동쪽으로 걸어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의 성곽과는 조금 다른 돌로 쌓은 성채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그렇게 이들이 도착한 곳은 고구려였죠.


📃고구려와 오나라의 운명적 만남


오나라와 고구려의 어색한 만남의 현장을 묘사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안정준은 이들의 대화를 특유의 재치로 묘사해 냅니다. 안정준은 아마도 오나라 사신단 최후의 4인이 “저희가 고구려로 온 사신단인데요. 공손연이 갑자기 공격해서 다 뺏어 갔어요!”라고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죠.


사실 고구려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 없는 장사였습니다. 이 시기, 그러니까 3세기 전반까지만해도 고구려는 그리 강한 나라가 아니었고, 위나라와 ‘공손씨 세력’에 치여 눈치보며 살아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중국 남쪽의 ‘황제국’ 오나라가 먼저 우호관계를 맺자고 한다니, 기쁜 일이었죠.


계산기를 두드린 고구려의 동천왕은 곧 손권과의 교섭을 결정하고 고구려 관리 25인과 함께 최후의 사신단 4인을 오나라로 돌려보냅니다. 오나라의 손권은 ‘공손씨 세력’에게 처참하게 물을 먹었지만, 동북방의 신흥 세력 고구려와의 교섭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이들 4인방이 너무나도 대견했습니다. 사실 고구려는 아직 미약한 세력에 불과했지만, 손권에게는 공손씨 세력을 함께 공격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고구려가 소중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책의 저자 안정준은 오나라 손권의 외교적 선택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이 시기 위나라의 동쪽 지역 세력과의 연대를 선택한 손권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거죠. 공손씨 세력도, 고구려도 위나라를 견제할 수 있는 수준의 국가는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두 세력 모두 화북을 장악하고 있는 위나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죠.


이 순간 손권이 무엇보다 간과하고 있었던 건 ‘위나라’ 그 자체였습니다. 위나라는 이미 오나라 사신단 공손씨 세력을 향해 가던 그 순간부터 오나라의 전략을 눈치채고 있었죠. 요동 지역 세력을 향한 손권의 관심은 이미 위나라에 의해서 간파된 전략이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곧 오나라 사신단이 고구려의 국내성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전해들은 첩보는 놀라운 것이었죠. 고구려와 위나라가 은밀히 접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신단 일행은 급히 국내성을 빠져나와 오나라의 배가 정박해 있는 서안평으로 내달렸습니다.


저자 안정준의 추론에 따르면 이때 고구려는 딱히 오나라 사신단을 해칠 생각은 없었지만, 공손씨 세력에게 당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오나라 사신단은 고구려 관리를 인질로 잡아 고구려와의 대치를 선택하죠. 오해는 곧 풀리고 일이 마무리되는 듯 했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조금씩 균열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산조각 난 손권의 꿈


둘 사이의 묘한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손권은 다시 고구려를 믿어보기로 결정합니다. 그야말로 순정파였죠. 사건이 있은 2년 뒤, 손권은 다시 고구려로 사신단을 파견합니다. 안정준은 이 시점에서 손권의 외교능력을 “무능”이라고 표현합니다. 실제로 오나라 사신단이 고구려 땅에 발을 들인 순간, 고구려 병사들에 의해 붙잡혔다가 몇 달 뒤 목이 잘려 위나라로 보내집니다.
왜 고구려는 2년 만에 태도를 바꿨을까요? 동아시아의 정세가 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촉나라의 제갈량이 죽은 겁니다. 촉나라의 ‘북벌’이 사실상 막을 내린 겁니다. 오나라 또한 단독으로는 위나라를 칠 수 없는 입장이었죠. 남쪽의 위협을 정리한 위나라는 서서히 동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공손연이 그랬던 것처럼, 오나라 사신의 목을 잘라 보내는 형식으로 위나라와의 교류를 시작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공손씨 세력과 고구려는 위나라와 행복한 교류 관계만을 맺었을까요? 정말 손권만 바보같은 외교를 했고, 나머지 요동의 두 세력은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일까요? 저자인 안정준은 외교를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위나라는 곧 요동을 직접 장악하기 위해 작업을 시작하죠.


그렇게 위나라 명제의 명을 받은 사마의가 요동을 치기 위해 군을 이동시킵니다. 4만 여 명의 정예부대를 이끌고 요동으로 간 사마의는 양평을 포위하고 곧 공손연과 아들의 목을 잘라버리죠. 그렇게 요동지역을 50여 년간 장악했던 공손씨 세력은 위나라에 복속됩니다.


이제 고구려가 남았습니다. 위나라가 공손씨 세력을 칠 때 병력 1,000여 명을 지원 했던 고구려였지만 위나라에게 고구려는 그저 빨리 장악해야 할 작은 나라에 불과했죠. 곧 관구검을 필두로 한 위나라 군대가 고구려를 공격했고 동천왕은 국내성을 버리고 동해안 지역까지 도망하는 신세가 되어 버립니다.


저자인 안정준은 이 시기의 외교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공손연과 동천왕의 처세가 손권에 비해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작은 세력에 불과했던 두 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실리적인 외교를 하는 것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오히려 위나라를 자극해 동북방의 정세를 어지럽히기 시작한 오나라의 외교술이 대단히 미숙했다는 거죠.


결과적으로 공손씨 세력의 괴멸과 고구려의 엄청난 피해를 낳은 손권은 “파괴왕”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이 역사적 사실을 통해 안정준은 괜한 ‘로맨스’나 ‘선악구도’를 그릴 필요는 없다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이 외교사를 통해서 현실의 “동아시아 정상들의 웃음 뒤에 숨겨진 치열한 이해타산”과 “욕망”을 유추해야 한다는 겁니다.


🎧 준비된 음원과 함께 들으면 이 책에 더욱 몰입하기 쉬워집니다. 그리고 책이 조금 더 쉽게 느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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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아니라, 이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 위촉오 삼국의 군사력 및 경제력은 어느 정도로 차이가 났을까?
  • 촉은 착하고, 오는 무능하며, 위는 나빴다?
  • 당대 요동의 판세는 어떠했을까?
  • 공손씨 세력 또는 고구려가 오나라에 협력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까?
  • 현대 또는 근대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을까? 결과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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