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
레이첼 카슨(1907-1964)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겸 작가. '생태학 시대의 어머니’로 불리는 인물이다. 펜실베니아 여자대학에 문학 전공으로 입학한 뒤,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꿔 졸업했다. 이후 우즈홀해양연구소, 미국어업국,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국 등을 거치며 일했고, 또 다른 대표작인 『우리를 둘러싼 바다』를 출간한 다음해인 1952년부터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아무도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1950년대와 60년대에 그 문제를 적나라하게 밝히는 글을 쓰며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었으며, 그 공로를 인정 받아 <타임>지가 뽑은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64년 4월 14일, 56세를 일기로 암으로 사망하였다.
대표 저서로 『침묵의 봄』,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읽어버린 숲』, 『바다의 가장자리』, 『우리를 둘러싼 바다』 등이 있다.
책을 쓰게 된 경위 및 배경
레이첼 카슨이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1958년 1월, 메사추세츠에 사는 친구 허킨스가 편지를 보낸 뒤부터였다. 허킨스는 <보스턴 포스트>의 전 문학 담당 편집자였으며, 동시에 조류학자인 인물이었다. 그가 보낸 편지에는 같은 달 <보스턴 헤럴드>에 실린 살충제로 인한 야생 동식물의 피해 사례에 관한 기사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미국 농무부는 매미나방과 모기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막기 위해 일부 지역에서 땔감으로 쓰는 기름에 DDT를 섞어 살포했다. 기사는 이후 발생한 문제들을 언급하며 농무부의 무책임한 조치가 곤충 및 동식물은 물론 인간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관련 문제를 지적하는 책을 집필하기로 결심한 카슨은 워싱턴을 중심으로 여러 도서관과 대학을 돌아다니며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살충제에 노출돼 피해를 본 사례를 찾아나섰고, 생태적 위협의 증거도 다수 확보했다. 불가피하게 쓰일 수밖에 없는 여러 전문 지식과 관련 용어에 대해선 해당 분야의 교수 및 학자들을 일일이 만나 철저하게 검증해 나갔다. 그 결과 『침묵의 봄』 에 주요 정보의 목록으로 들어간 색인은 약 600여 개에 달한다.
그리고 1962년 6월 16일, 마침내 <뉴요커>에 책의 축약본 제1부가 실렸다. 다음주인 23일에는 제2부, 30일에는 제3부가 연달아 연재됐다. 카슨의 글은 공개 직후부터 큰 논란을 일으켰다. 대중들은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와 함께 이를 판매하는 기업, 방관하는 국가기관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기사의 반향이 예상보다 크자, 화학업계와 농약 제조업체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 농약공업협회(NACA)는 당장 카슨을 고소하겠다며 협박했고, 수십만 달러를 들여 카슨을 비방하는 홍보물을 제작해 배포했다. 벨시콜 케미칼 코퍼레이션은 한술 더 떠 책이 세상에 나오는 일 자체를 막으려고 했다. 책을 내는 출판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책은 결국 출간을 맡은 휴턴미플린 출판사가 추가로 보험을 든 뒤에야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책이 출간된 뒤에도 화학업계의 협박과 비방은 계속됐다. 살충제를 사용하지 못해 농산물 수확량이 급감하는 상황을 담은 책 『침묵의 가을』을 출간하거나, 카슨이 미국의 식량 생산을 방해하기 위해 애쓰는 공산주의자라는 음모를 퍼트린 것이다. 대체 『침묵의 봄』에는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겼기에 이처럼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지금부터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책의 내용
미국 대륙 한가운데 위치한 어느 마을, 그림처럼 펼쳐진 숲을 배경으로 다양한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던 평화로운 이곳에 낯선 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새들은 울음소리를 감췄고, 기르던 가축들도 하나둘 쓰러져갔다. 농부와 그의 가족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심지어 어린아이 중에는 급작스레 고통을 호소하다가 몇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마을 전체에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정적이 감돌았다. 침묵의 봄이 찾아온 것이다.
『침묵의 봄』의 제1장 ‘내일을 위한 우화’에는 미국 어느 마을의 비극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마을은 사실 실존하지 않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 마을은 동시에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빠르게 진행되는 환경 오염으로 인해 이미 많은 지역이 ‘침묵하는 봄’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봄의 침묵을 만든 것일까? 나아가 새의 밝은 지저귐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어떤 변화를 모색해야 할까?
책의 본격적인 내용은 제2장 ‘참아야 하는 의무’와 제3장 ‘죽음의 비술’부터 시작된다. 카슨은 이 장에서 ‘살충제’라는 이름으로 사용되는 화학약품이 실제로는 ‘살생제’나 다름 없다고 지적한다. 지구상의 생물들이 적응할 여유조차 주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동식물에 연쇄적으로 작용하는 물질을 생산, 살포함으로써 해충을 넘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 전체에 악영향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살생의 연쇄작용은 이후 장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서술된다. 제4장 ‘지표와 지하수’와 제5장 ‘토양의 세계’에서는 물과 토양이 오염됨으로써 이를 통해 양분을 얻는 동식물에 악영향이 가는 사례가 주로 제시되며, 제6장 ‘지구의 녹색 외투’와 제7장 ‘불필요한 파괴’에서는 식물 및 곤충의 오염으로 인해 이를 먹이로 삼는 동물과 인간까지 해를 입는 문제가 제기된다. 1960년대 특별보호구역에서 농약이 호수에 스며들며 발생한 새들의 떼죽음, 화학약품에 노출된 투구풍뎅이의 애벌레를 먹음으로써 눈에 띄게 감소한 지빠귀, 찌르레기, 구관조 등이 카슨이 말하는 연쇄적 살생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와 같은 화학약품의 폐해를 살펴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DDT 문제이다. 카슨은 제8장부터 제10장까지 총 3장에 걸쳐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DDT는 농업 분야의 해충과 말라리아 등 질병을 옮기는 해충을 구제하는 데 널리 사용되던 살충제로 1870년대 처음 합성된 뒤 오랜 기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물질이다. DDT는 그 즉각적인 효과 덕분(?)에 한동안 무차별적으로 쓰였다. 그리고 그 결과 울새와 야생 여우를 비롯한 수많은 야생 동식물들이 사라졌으며, 메추라기와 칠면조 같은 가축들이 번식을 멈췄다. 강에는 죽은 송어와 메기, 잉어, 뱀장어가 수면으로 떠올랐으며, 그보다 많은 어류가 시력을 잃고 방황한 끝에 폐사했다. 그 영향은 당연히 최상위 포식자인 인간까지 미치게 되었다. 농부, 축산업자, 양봉업자처럼 직접 영향을 받는 직군의 사람들은 물론, 일반 시민의 몸에서까지 DDT가 검출된 것이다. 무분별한 화학약품의 사용이 새의 지저귐을 넘어, 지구 전체에 존재하는 동식물의 침묵을 야기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일상의 수많은 유해 화학물질을 모두, 서둘러 제거해야 하는 것일까? 카슨은 그런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대신, 정말 필요한 성분을 뺀 나머지 화학물질부터 하나씩 제거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살충제의 광범위한 살포가 아닌 선택적 살포, 식물간의 경쟁을 통한 자연감퇴 방식 등으로 통해 오염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카슨은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대표작 ‘가지 않은 길’을 소개하며 『침묵의 봄』을 마무리한다. 살충제, 제초제 같은 화학약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조절 등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길을 감으로써 당장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책의 영향력, 파급효과
『침묵의 봄』은 출간 직후부터 빠르게 판매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출판일인 1962년 9월 27일 선계약만으로 4만 부가 배포되었으며, 그해 내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켰다. 첫해에만 60만 부가 넘게 팔렸고, 레이첼 카슨이 세상을 떠난 1964년 4월경엔 100만 부 이상이 독자들의 손에 쥐어졌다. 이 책은 출간된 지 60년도 지난 오늘날에도 약 10개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중이다.
『침묵의 봄』은 단순히 ‘많이 팔린 책’을 넘어 전 세계 환경운동의 기폭제가 된 책으로 평가 받는다. 책의 출판, 그리고 1,000만 명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진 1963년 4월 카슨의 <CBS 리포트> 출연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환경문제의 심각함을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의 언론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침묵의 봄』과 같은 책들이 출간된 뒤에야 사람들이 살충제의 위험성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으며, 미국의 45대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인 앨 고어는 자신이 환경운동을 시작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침묵의 봄』을 꼽기도 했다. 더불어 이 책은 1970년에 지구의 날이 제정되는 데 영향을 미쳤고, 나아가 1992년에는 인간과 환경의 조화 및 환경 보호를 강조하는 ‘리우 선언’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카슨의 책은 수많은 석학, 그리고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절대선이자 진보였던 과학 문명이 인간, 나아가 지구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1999년 미국 생물학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침묵의 봄』은 생물학자들의 연구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고전 2위에 선정되었다. (참고로 이는 찰스 다윈이 쓴 불명의 고전 『종의 기원』보다도 앞선 순위이다.) 더불어 이 책을 세계를 대표하는 100인의 석학이 선정한 ‘20세기를 움직인 10권의 명저’ 목록에서 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물론 『침묵의 봄』에 대한 긍정적 평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일부 학자들은 이 책이 화학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매우 제한적인 역할만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화학 기업들이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건 여론의 변화가 아닌 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기획의 가능성을 발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DDT 금지 조치로 인해 저개발국에서 말라리아가 창궐했고, 이로 인한 인명피해 사례가 급증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제로 DDT를 통한 말라리아 감염 예방 효과는 카슨을 비롯한 환경보호론자들조차 부정하지 않았을 만큼 뛰어났다. 1970년 미국 국립화학협회가 ‘DDT는 인류가 역사상 가장 큰 빚을 진 화학 물질 중 하나’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말이다. 실제로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일부 지역에서는 DDT를 말라리아를 막는 제한적인 용도로 다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침묵의 봄』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제도적인 보완책의 마련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 책의 영향을 받아 미국에는 ‘국가환경정책법’이, 우리나라에서는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더불어 이 책이 발간된 지 60여 년이 지났음에도 꾸준히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이 카슨의 시대보다 훨씬 더 큰 환경 위기에 처해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와 라돈 침대 사건, 최근의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늘상 우리 스스로 만든 ‘오염’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이 비극은 ‘가지 않은 길’을 감으로써만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카슨의 마지막 이야기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