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 죽을 거, 조금 막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2002년 4월5일, 식목일이었다. 그 당시 식목일은 공휴일이었고 금토일 연달아 쉴 수 있다는 게 열세 살 초등학교 6학년에게는 무척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4월4일 목요일 밤부터 우리집은 거의 초상집 분위기와 같았다. 함께 살던 친할머니 때문이었다. 아빠는 4월4일 밤부터 고모, 삼촌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곧 돌아가실 것 같아." 라고 하면서.

4월5일 금요일 오전 11시. 우리 네식구는 할머니 주변에 모여 앉았다. 아빠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뱀가죽 같은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엄마, 잘 가.”

아빠의 울대 뻣뻣한 그 목소리가 오래도록 집안에 울렸다. 살이 희고 비쩍 마른 할머니는 우리집 거실 이부자리 위에서 돌아가셨다. 잠시 후 경찰이 왔고, 그 뒤에 구급차가 우리집 앞에 왔다. 누군가 집에서 죽으면 경찰이 온다는 걸 난생 처음 알게 된 거였다. 티비에서나 보던 것처럼 할머니는 흰 천에 덮여 구급차에 실려갔다. 그 뒤로 부터의 기억은 없다. 아빠의 울대가 뻣뻣했던, 눈물 가득 머금은 목소리만 선명하게 기억날 뿐이다.

2013년 10월27일, 일요일.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고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들어갔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외삼촌이 죽은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멍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삼촌이 죽은 것 같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외삼촌은 가족 중 나와 가장 각별한 사이였다. 둘도 없는 친구 같은 가족이었다. 삼촌은 흔히 말하는 ‘탈 것’ 중에서 바이크를 좋아했는데 그 바이크를 타다 사고가 났고 목이 부러져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그날 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할머니와 엄마가 점을 찍고 가는 곳마다 눈물들이 길을 이었다.

다음 날 멍한 표정으로 똑같이 출근을 하는데 갑자기 버스 안에서 눈물이 터졌다. 꽉 찬 만원 버스에서 내가 흐느껴 울자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어떤 여성분은 내게 왜 우느냐고, 무슨 일 있냐며 물어보기도 했다. ‘눈물이 터진다’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 울음은 끝내 멈추지 않아 회사가 있는 광화문까지 가지 못하고 결국 세 정거장을 앞서 내렸다.

할머니와 엄마는 미국에서 삼촌의 장례를 치뤘고, 할머니와 엄마가 없는 상태로 한국에서도 하루 장례를 치뤘다. 그때 태어나 처음으로 상복이라는 걸 입었다. 온통 검정색이었던 그 한복은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옷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외가 식구들 모두가 절에 모였다. 스님이 목탁을 치고 불공을 드리며 스님 뒤에 나란히 일렬로 선 우리 가족들은 절을 하기 시작했다. 스님은 절을 많이 하는 만큼 망자가 좋은 곳에 갈 거다 라고 이야기 했다. 나는 흐느껴 울며 계속 절을 올렸다. 내가 절을 한 만큼 외삼촌이 좋은 곳에 닿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선연한 기억이 있다. 막내 아들의 장례식에서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조문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살 사람은, 그래도 살아야지요.”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이 생애 가장 슬픈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죽음이라는 것에 꽤 무던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쉬운 것이 죽는 것이라고도 생각했으니까. 아니, 생각하니까.

때때로 두 발을 땅에 딛고 서는 것조차 힘들땐 차라리 죽겠다고 생각을 한다. 죽음보다 귀신을 더 무서워한다는 게 코미디이긴 하지만 남들과는 다르게 죽음에 큰 두려움 없이 산다는 건 꽤 씩씩한 것도 같다.

지난 해 늦봄에서 여름 사이 마음을 가장 크게 앓았던 때, 매일 아침 죽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대로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초가을이 왔다. 그땐 몸이 가장 아팠던 때였고 수술을 하면서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퇴원을 하고 누워만 있어 퉁퉁 부은 몸이 꼴보기 싫어 한강을 걸었다. 그때 본 윤슬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 마음껏 사랑하고 온 마음을 다 해 아프자, 우리.”

그 뒤로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드라마처럼 나는 한 사람의 다정한 돌봄으로 한발 더 내딛을 힘을 얻었다. 인생에 큰 파도가 닥쳐올 때마다 외우는 주문이 생겼다.

“어차피 죽을 거. 마음을 다 해보자.”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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