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이 끝나고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대공황 같은 위기가 반복되지 않을 세계경제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과거의 경제적 위기는 파시즘의 부상을 일으켰죠. 만약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오면 사회주의가 세계적으로 부상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자유무역을 보장하는 것이 경제 안정의 핵심이라고 믿었습니다. 모든 나라가 공통의 규칙을 지키며 무역에 참여한다면, 혹시 모를 공황의 여파를 분산시킬 수 있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관세 장벽을 낮추고 통화가치를 안정시켜야 했죠. 어떤 나라가 자기만 관세를 높이고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려 하면, 다른 나라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니까요.
이러한 기조 하에 1944년 브레턴우즈 회의가 열렸고, 1947년에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GATT)이 맺어졌습니다. 이 합의에 근거한 세계경제 체제를 브레턴우즈 체제라고 합니다.
참여국들의 합의한 바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선 미국의 통화인 달러의 가치를 일정한 양의 금에 고정시키고, 달러가 다른 나라의 화폐와 교환되는 비율을 설정해 통화가치를 안정시켰어요. 그리고 한 국가가 나라별로 다른 관세율을 부과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최혜국 대우를 받는 나라의 관세가 자동적으로 다른 나라들에게도 적용되게 한 것이었죠. 나아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을 설치해 저개발 국가와 금융위기에 빠진 나라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마셜 플랜을 비롯한 대규모 원조 프로그램을 통해 전쟁에서 폐허가 된 세계 각지의 나라들의 재건을 지원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패권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수립해갔습니다. 일단 미국의 대규모 원조는 사회주의권이 확대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았어요. 예를들어 공산주의자들의 힘이 세던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경우 미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 사회주의 세력을 멀리하게 되었죠. 미국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해상무역을 보호했고 자국의 거대한 소비시장을 개방해 다른 나라들이 수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를 대가로 미국은 월등한 경쟁력을 지닌 공업 제품과 막대한 자본을 제한 없이 진출시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죠.
자유무역 체제 하에서 전후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재건이라는 목표 하에 기업과 노동자들이 타협을 하게 되었고, 생산력과 임금이 모두 크게 늘어나면서 대량생산과 대중소비가 가능한 사회가 세계적으로 확대되었어요.
이 와중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은 국가입니다. 국가는 이제 19세기 방관자의 역할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경제 재건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적자를 보더라도 재정을 적극적으로 투입해 투자와 고용을 늘렸죠. 1920년대까지만 해도 서구 주요국의 국민총생산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이하였지만, 1960년대에는 1/3을 상회했어요. 군수, 우주, 전자, 컴퓨터 산업에서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한 것도 국가였죠. 예를 들면 1957년부터 1966년 사이에 지출된 미국 전체의 연구개발비 중 2/3이 연방정부의 예산에서 지출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20여년의 기간은 인류가 겪어보지 못했던 풍요의 시대였습니다.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도시화가 전례없는 수준으로 진전되었죠. 정책적인 기술혁신으로 생산력과 이윤이 올라갔고 동시에 임금과 복지도 상승했어요. 자동차,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등 이제는 생활필수품이라고 여겨지는 제품들이 서구사회에서 보편화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모든 게 잘 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