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세대에게나 소위 ‘환장하는’ 영화 시리즈들이 있다. 최근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마블>시리즈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밀레니엄의 시대를 해리포터 시리즈와 함께 자라난 세대가 있고, 내 경우처럼 20세기의 후반기를 <스타워즈> 시리즈와  함께 살았던 세대도 있다.

새로 개봉한 시리즈가 아무리 혹평에 시달리고, 온갖 평점이 저조하다고 하더라도, 시간을 내어 남몰래 어두운 극장에 스며들게 만드는 환상의 세계가 있다. 불이 꺼지기 전까지 거슬리는 광고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부터 끌고 다니던 누더기가 다된 담요를 이제는 버려야 하는, 한껏 큰 소년의 심정으로, 이 영화가 마지막이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흐르고 타이틀이 등장하는 순간, 다시 유치한 기억과 환상의 세계 속에서 꿈을 꾼다. <스타워즈>의 ‘옛날 옛적 우주에서 Once once upon a time in galaxy’의 자막과 함께 흐르는 주제곡과, 이륙하는 초음속전투기와 함께 흐르는 ‘Top Gun Anthem’은 과거로 되들어가는 입구다.

어쩌면 영화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엄청난 규모의 볼거리들이 있거나, 관객을 사로잡는 멋진 이야기들이 일상에 찌든, 잔뜩 화난, 우리가 어둠 속에서 숨죽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흥행하는 영화들이 갖춰야할 장점들은 하늘의 별만큼 많지만, 그것들만으로 흥행대박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지지만,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는 대작들은 일 년에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흥행에 대한 예측과 결과의 상관관계는 선형적이지 않다. 차라리 영화에 대한 혹평과 비난이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새 영화들이 개봉한다는 소식은 주로 메시지들을 통해 알게 된다. 개봉 영화들에 대한 평가는, 흥행영화가 등장하는 확률과 반비례하게 대부분 영화들에 대한 악평이 일반적이다. 몇 편 안되는 ‘대박 영화’보다 새로 극장에 나타난 영화들에 대한 비난이 익숙하다. 나는 귀가 그렇게 얇지는 않다. 그만큼 내가 겪은 일은 스스로 판단하고자 한다. 때문에 영화나 연극을 보기 전에 스스로를 모든 사전 정보로부터 차단한다. 그럼에도 내 습관의 방벽을 무참하게 부수고 들어오는 내 주변의 메시지들은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문자 메시지든, SNS를 통한 메시지든 접하지도 않은 작품에 대한 선이해를 강요당한다. 심지어 그들은 절대 보면 안된다면서 영화의 세세한 장면까지 이야기해준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영화 판의 언저리를 떠돌고  있긴 하지만, 자기들이 선택해서 본 영화들을 도대체 왜 나한테 그리 씹어대는지 모르겠다. 자신들이 경험한 혼돈의 세계 chaotic universe로 어서 동참하기를 바라는 만 오천 원 짜리 메시지들.

<외계+인>은 내가 보기도 훨씬 이전부터 입에 담기 힘든 비난 속에서 출발해야 했다. 게다가 영화에 대한 첫 메시지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개봉관을 찾기 힘들었다. 이런 불길하고 비극적인 상황이다 보니, 기대는 사라졌다. 마음 한 켠에는 대개의 재앙에서 무엇인가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부질없는 희망도 있었다. 기대가 없으니 더 잃을 것도 없지 않나?

흥행에 성공한 판타지 영화들은 한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작에 들어간 자본이 일단 다른 영화들보다는 막대하다. 이 세상에 없는 것들을 다루다보니, 그것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데 엄청난 자본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성공한다면 그 뒤의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이어지는 시리즈들이 제작된다. 이미 검증된 것이니 속편들의 흥행확률도 예측할 수 있고, 이미 작품을 만들 영화의 소재와 인프라가 있으니, 그 다음 작품을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것이 다하면 그 앞의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하나의 ‘유니버스 또는 삼라만상’이 탄생한다. 판타지가 지배하는 하나의 새로운 삼라만상.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 그리고  <마블>시리즈 들이 그것이다.

<스타워즈>는 SF의 전범이다. 1977년에 그 첫 작품이 나왔고, 무려 45년 가까운 기간 동안 생존해왔다. 10세 어린이가 그 첫 편을 보았다면, 지금은 55세가 되었다. 풋내기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커가 할배가 되었고, 레아 공주는 세상을 떠났다. 첫 작품의 성공이 이후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용기를 주었을 것이고, 그 시리즈는 어떤 이들에게는 삶에 있어서의 하나의 장면으로 남겨진다. 시대가 변하고, 제작환경이 변화되어 중국배우가 영춘권을 보여주는 시리즈들이 난무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등장한 한 솔로와 츄이의 등장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나는 실제로 그랬다. 마음속으로 ‘살아있었구나 츄이!’를 되뇌었고, 스타워즈 시리즈와 관련된 많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광선검이 형광등이다라는 것으로 주먹다짐을 벌였던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 코를 하도 골아대서 방독면을 씌워 잠을 재웠던 군대 후임의 기억. - 물론 그의 별명은 다스베이더였고, 우리는 그를 볼 때 마다 ‘내가 니 애비여!’를 외쳤었다. - 이렇게 충분히 우리는 그 삼라만상에서 뛰어 놀았다. 이제는 더 이상 아니라고들 하지만, 그 언젠가 또 다른 시리즈가 나온다면 역시 난 그 컴컴한 자리에서 츄이의 자손들을 보면서 훌쩍거릴 지도 모른다.

다른 시리즈들은 사실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그 이유를 찾는 것도 우습지만, 내게 있어 <해리포터>와 <마블>은 그저 영화 시리즈일 뿐이고, <반지의 제왕>은 석사과정 논문 학기에 고생하는 와중이라 그다지 좋은 기억은 없다. 내 세대의 영화는 아닌가 보다. 그것과 얽힌 삶의 기억들이 그다지 크지 않다. 그래도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건 그들의 ‘유니버스’이지 않은가?

영화가 끝났다. 나는 무엇을 본 것인가? 게다가 이 이야기는 반도 끝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외계+인> 1부가 제목이었다. 나는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을 떠올렸지만, ‘1부’는 제목을 표시하는 부호 바깥에 있었다. 그럼 2부도 봐야한다는 것인가?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내가 신뢰하는 좋은 친구들이지만, 그들의 영화 취향까지 지지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을 다 무시하고, 영화의 좋은 면을 찾아 의미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영화를 봤다. 팝콘의 달콤함에 느낌이 변할까봐 물 한 병을 들고 들어갔을 뿐이다.

최동훈의 영화는 나름의 흥이 있다. 내가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과도하리만치 정교하게 구성된 대사의 맛과 영화가 진행되는 리듬이다. <전우치>에서는 특히 그러한 흥이 잘 드러났다. 도사, 부채, 요괴 등의 설정들은, 잊고 있었던 기억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전우치의 휘모리장단에 나를 맡기면 가볍고 경쾌하게 볼 만한 작품이었다. <외계+인> 역시 그런 흥이 가득하다. 문제는 장단이 너무 다양해 어느 부분에 어떤 몸짓으로 놀아야할 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초반의 테크노 리듬과 중반의 휘모리장단, 이후 섞여가는 케이팝의 비트들과 해금의 선율들이 넘쳐났다. 모든 것이 있지만,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즐겨야 흥인게지, 그렇지 않으면 그저 소란에 불과하다.

영화를 많이 본 내 직업병일 수도 있지만, <외계+인>은 ‘내가 본 모든 영화 + 당신이 보았을 모든 영화’다. ‘에일리언’시리즈의 ‘프리퀄’인 <프로메테우스> 또는 <맨인블랙>의 초반부와 <백 투더 퓨처>의 설정과 <컨택트>의 비쥬얼과 <전우치>의 구조와 <천녀유혼>의 스타일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더 언급하고 싶지만, 영화 제목으로 글의 양을 억지로 채운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는 않다. 모두 좋은 영화들이고 성공한 영화들이지만, 문제는 도무지 섞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이저광선’과 ‘도술’과 권총 ‘글록17’- 심지어 도술이 난무하는 영화 속 세상에서 권총의 격발 수를 세고 탄창을 교환한다! - 이 서로 한 시공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대체 누구를 응원해야 하는가? 현란한 촬영과 멋지고 실감나는 특수효과들이 있다. 그리고  맛깔나는 대사들과 엄청난 배우들의 연기가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따로따로 자웅을 겨룬다.

<전우치> ‘유니버스’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인가? 아니면 ‘메타버스’적 묵시록인가? 몰입까지는 아니어도, 영화가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장면마다 재미있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판타지’ 시리즈들의 시작을 알리고 싶은 것인가? 경험한 적 없는 기억에 공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영화의 목적이 요새 회자되는 새로운 한국적 ‘유니버스’를 욕망한 것인가?

우리 영화들 중에 성공한 판타지 영화를 찾는 것이 힘들다. 일단 제작비의 규모가 상당하고, 그만큼 그 ‘리스크’를 감당하는 원작들이 없기 때문이며, 비교적 잘 버티고 있지만, 국내 영화 시장의 규모도 제한적이다. 예외라면 <신과 함께> 시리즈 정도가 ‘판타지’라는 이름을 걸고 만들어진 영화들 중 흥행에 성공한 예가 될 것이다. 해외의 흥행작들을 살펴봐도,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 <마블> 시리즈 들의 경우 <신과 함께>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이미 원작들이 다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영화의 관객이 되기 이전에, ‘판타지 소설’의 팬이었고, 부모님이 읽어주는 또는 선물해주는 ‘해리포터’를 듣고 자랐거나, 심심풀이로 읽던 ‘만화-요새는 비주얼노벨이라고 한다’-였고, 핸드폰으로 조마조마하게 보던 웹툰이었다. 이미 다른 시장에서 그 팬덤을 갖고 있는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스타워즈>의 경우 최초들 중 하나였던 만큼 <스타워즈-새로운 희망> (1977) 이후 비주얼노벨 또는 소설등으로 판매되어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판매부수만큼 ‘스타워즈 유니버스’는 확장되고 정교해졌다. 그렇게 40여년의 세월을 살아남았다.

아마도 우리에게 위에서 열거한 정도의 장대한 ‘유니버스’를 구축한 영화들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아직도 투자자들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이유는 그러한 이전의 장르들이 몇몇 마니아층을 제외하고는 없기 때문은 아닐까? 판타지 소설, 판타지 게임 등등의 흥행작들이 아직은 부족하고, 새로운 ‘삼라만상-유니버스’이 되기에는 부족한 것은 아닐까? - 물론 이전의 <퇴마록>과 같은 영화는 있었지만, 그때는 우리의 영화 기술이... -

<외계+인>은 정통 판타지 영화다. 게다가 한국적인 요소들로 채워진 우리의 새로운 ‘유니버스’를 만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유니버스’만 급하게 펼쳐져있고, 개별적 인물들과 이야기들의 구조들이 잘 어우러지지 않았다. 하긴 ‘삼라만상 universe’ 안에는 ‘질서 cosmos’도 ‘혼돈 chaos’도 포함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다지 감정이입할 수 없었다. 차라리 정말 한국적으로 배추도사나 무도사가 나왔으면 어땠을까?

내가 영화를 보는 것인지, 게임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흥분과 긴장이 넘치고, 대체 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 이야기가 <외계+인> 2부에서 마무리될 것인지? 2065년 쯤 <외계+인> 9편으로 계속 이어질지 궁금하다.

글. 🎞김영재

노벨상의 꿈을 꾸고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였다. 그러던 중 영화를 만나 긿을 잃고,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연극판과 독립영화판을 전전하다 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들을 하며, 소박한 영화들을 만들며, 아직도 영화와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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