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유럽의 보수반화

프랑스인들이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모습은 다른 유럽 국가의 혁명 세력에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며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특히 유럽의 권력층과 보수주의자들에게 프랑스 혁명은 구체제의 문화적-도덕적 토대를 침식하는 중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에드먼드 버크는 혁명에 맞서 구체제를 옹호하는 최초의 지적 결과물을 제시했습니다. 프랑스 혁명 초기에 출판된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은 위기를 느낀 보수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반향을 일으켰죠. 버크가 교회와 왕권신수설을 경배하는 구체제의 수호자였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근대적 인간관에 맞추어 전통적인 체제와 가치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했어요. 버크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이며 계몽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면 지금까지 인간이 생활하고 지켜온 것들에도 충분한 고민과 사유가 깃들어있다고 생각했죠. 버크가 보기에 프랑스 혁명을 이끄는 계몽주의자들은 자기 자신의 이성만을 신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축적된 지혜를 존중하지 않고 졸속으로 마련된 정책을 밀어붙였죠. 버크는 프랑스 혁명이 결국에는 실패할 것이며 혼란을 이기지 못하고 일인독재로 귀결될 거라고 예견했습니다.

《바스티유 습격(La prise de la Bastille)》, 장피에르 루이 로랑 위엘, 1789

사실 계몽주의자들이 모두 프랑스 혁명에 찬성하고 참여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계몽주의 사상을 이해하고 습득했던 계층의 대다수는 사실 물질적 기반과 교양을 갖춘 엘리트 계층이었고, 그들 중에는 귀족도 많았습니다. 프랑스처럼 민중의 힘으로 왕정을 전복시킬 수 없던 나라의 계몽주의자들은 합리적이고 계몽된 전제군주를 통한 사회개혁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와 오스트리아의 요셉 2세 등은 실제로 일부 개혁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죠. 이들 나라에서 계몽주의적 사유는 오히려 전제군주의 통치를 옹호하는 사상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의 모델을 유럽의 다른 국가에 적용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대프랑스동맹의 결성은 유럽의 군주들이 인민주권을 기반으로 하는 공화국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더구나 프랑스의 통치권이 나폴레옹에게 넘어가면서 프랑스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죠.

국민개병제의 도입과 나폴레옹의 군사적 재능으로 프랑스는 연전연승을 거두었고 점령지에서 프랑스의 새로운 법률과 행정체제를 도입했습니다. 점령지의 혁명 세력은 프랑스 군대를 환영하며 개혁의 동력을 얻으려 하기도 했죠. 하지만 개혁은 프랑스의 군사적 필요에 의해 제한되었습니다. 게다가 급진적인 변화가 보수적인 주민들의 불만을 일으키면서 오히려 안정적인 구체제의 시스템에 대한 향수가 번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윌리엄 세드러의 <워털루 전투>

결국 영국과 러시아의 활약으로 나폴레옹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실각했습니다. 혁명이 패배했던 것이죠. 1814년, 대프랑스동맹 세력이 오스트리아 빈에 모여 향후 유럽세계를 정비할 회의를 열었습니다. 일년 가까이 개최된 이 회의의 모토는 ‘혁명 전으로 돌아가자’였습니다. 반동이었죠. 프랑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왕정이 복원되었고 보수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았어요. 이성과 합리를 통한 진보의 가능성이 부정되었고 전통과 역사의 권위가 복원되었습니다.

한편, 나폴레옹의 몰락과 빈 체제의 성립을 주도했던 영국은 유럽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선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영국의 함대는 전쟁 기간에 다른 유럽의 해군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고 독보적인 위상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중해,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등의 지역에서 프랑스가 점령하고 있던 주요 무역 거점을 차지하기도 했죠. 이는 막 산업혁명의 수혜를 얻고 있던 영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권에서 다루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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