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우리는 공리주의 명제의 변천사와 함께 해당 사상을 ‘환경문제에 적용하는 방법’, 그리고 이를 실제로 실천해야 하는 사람들의 인식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인식이 과연 옳은지, 그리고 다양한 실천 항목 중 어떤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효과는 적지만, 품도 적게 드는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일회용품으로는 비닐봉투, 일회용컵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일회용품 사용은 실제 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요? 해당 용품별 온실가스의 배출량 수치와 한국인의 연간 탄소 배출량(13.5t) 대비 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의 표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회용품 사용량을 줄이는 것은 실제로 탄소배출량을 줄이는데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회용품 사용량 줄이기를 중단해야 할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는 타 항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으로 실천이 가능한 행동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앞선 글에서 살펴본 책 <뜨거운 지구에서 살아남는 유쾌한 생활습관77>에서도 해당 활동에 드는 노력을 각각 2단계(장바구니 쓰기)와 1단계(스티로폼 쓰지 않기)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해당 활동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실천 가능한 행동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를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명제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행복(환경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의 양도 크지 않지만, 이를 실천함으로써 발생하는 고통(일상 생활에서의 불편)의 양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이는 실천의 대상이 될 만 하다.’
즉, 일회용품 줄이기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타 활동에 비해 크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실천하기에 어려운 행동이 아니므로 환경보호를 위해 이를 실천하는 것은 옳다는 것이죠.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 이용하기, 비행기 사용 줄이기
두 번째로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교통과 관련한 일상의 환경보호 활동에 관한 내용입니다. 앞선 글의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우리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차나 버스를 이용(47.2%)하거나 자전거로 출퇴근(31.9%)하면 환경을 보호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두 가지 행동의 경우 이미 실천하고 있거나 실천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각 53.4%, 23.3%)한다. 그러나 비행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으며(5.8%), 실천 의지 또한 적은 편(1.4%)이다.’
그럼 이 인식이 실제로 맞는지 살펴보도록 하죠. 우선 자가용 대신 기차(전철)나 버스를 이용해 이동하는 것은 환경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자전거 또한 대중교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극히 적은 양의 탄소를 발생시키는데요. 하지만 자전거의 경우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고요? 연합뉴스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서울 거주자들의 출퇴근 거리는 약 13.3km라고 합니다. 수도권은 더 멀어서 인천 거주자의 경우 15.7km, 경기는 16.7km 정도를 매일 출퇴근하고 있죠. 자전거 평균 속도인 시속 15km를 감안하면 매일 왕복 2시간 가량을 ‘운동’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죠.
두 번째로 살펴볼 항목은 ‘비행기 사용량 줄이기’의 효용성입니다. 유럽환경청(EEA, European Environmental Agency)의 자료에 따르면 항공기와 기차, 자동차 등 교통수단 중에서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것은 ‘항공기’라고 합니다. 비행기를 탄 승객 1명이 1㎞를 이동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285g으로, 이를 서울과 부산 사이의 거리를 기준으로 할 경우 약 118.8kg CO₂eq의 탄소가 배출된다고 할 수 있죠. 같은 거리를 이동할 경우 10.43kg CO₂eq의 탄소가 배출되는 KTX와 비교할 때 약 11.3배 많은 탄소가 배출되는 겁니다. 비행기가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훨씬 적다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출발 전 수속 절차에 걸리는 시간, 잦은 연착으로 인해 소모되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큰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죠.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비행기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KTX 등 대체 가능한 대중교통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볼만 하죠. 그럼 이 내용도 공리주의적 명제로 바꾸어 이야기해 봅시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 수단이나 자전거를 사용하는 것은 행복의 양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자전거의 경우 고통의 양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환경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는 지양하는 것이 좋다. 이와 더불어 비행기 대신 기차, 버스 등을 사용하는 것은 행복의 양 증가에 도움이 된다.’
직접 심는 것보다 부탁하는 것이 낫다
세 번째로 우리가 살펴볼 항목은 ‘직접 나무 심기’입니다. 나무를 심을 경우 기대되는 단위면적(ha)당 연간 탄소 순 흡수량은 임령 10년생을 기준으로 약 6.91톤(ton)입니다. 참고로 개개인의 연간 탄소 배출량은 약 13.5톤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약 2ha의 면적에 나무를 심는다면, 우리는 약 10년 뒤 개인의 탄소 배출량이 상쇄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죠.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나무 심기의 효과가 크니 당장 숲으로 달려가 이를 실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 심기는 그리 손쉬운 활동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나무 심기를 위해선 묘목을 직접 구매해야 하고, 나무가 자라기에 적당한 땅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며, 시간을 내 이를 직접 실천해야 하는 등 쉽사리 행동에 옮기기 어려운 이유들이 다분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제가 추천하는 대안은 ‘나무 심기를 효율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단체에 기부하라’는 것입니다. <냉정한 이타주의자>의 저자 윌리엄 맥어스킬이 설립한 비영리단체 기빙왓위캔(Giving What We Can)에서는 ‘기부금으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실시하는 단체를 100곳 이상 추려 1톤CO₂eq을 줄이는 데 가장 비용효율성이 높은 곳’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비용효율성이 가장 높은 단체는 ‘쿨어스(Cool Earth)’로 열대우림 1에이커를 보호하는데 약 100달러의 비용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열대우림 1에이커는 260톤CO₂eq의 온실가스 배출을 상쇄합니다. 1톤CO₂eq의 배출을 상쇄하는 데 드는 비용이 고작 36센트에 불과한 겁니다. 그럼 이를 다시 공리주의적 명제로 바꾸어 이야기해 봅시다.
‘나무를 심는 것은 행복의 양을 높인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고통의 양이 커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반면 산림을 보호하거나 식재하는 활동에 기부하는 일은 행복의 양을 크게 높이는 동시에 고통의 양도 크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보호 단체에 기부하는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무엇이 문제인가?
공리주의에 제기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한계 중 하나는 바로 ‘쾌락과 고통’의 기준이 개인마다 다르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동일한 노력 또는 비용이 소요되는 두 가지 일이 있다고 가정해 보죠. 한 가지는 기후변화에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지만 지금 당장의 경제 발전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는 활동이며, 다른 한 가지는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당장의 경제발전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러한 선택지를 만약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받아들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아마 그는 주저 없이 후자의 선택을 했을 겁니다.
최근 많은 이들이게 확산되고 있는 ‘채식하기’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한 사람이 1년 동안 육식을 하지 않으면 약 1톤의 탄소배출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개인 탄소 배출량의 약 7.5%에 해당하는 양이므로 결코 적은 양이라 할 수 없죠. 그러나 이 양은 우리가 앞서 살펴본 쿨어스에 기부를 할 경우 약 5달러 정도의 적은 비용으로 상쇄할 수 있는 양입니다. 누군가는 개인의 노력과 고통에 비해 환경보호의 관점에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높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물론 이를 동물복지의 관점과 결합하여 생각한다면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경제학자이자 농업 전문가인 베일리 노우드가 가축 복지를 계량화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육우의 동물복지 수준은 6점, 젖소는 4점이며, 육계는 –1점, 돼지와 닭장사육 암탉은 –5점을 획득했습니다. 여기서 마이너스 점수를 얻었다는 것은 해당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도살되는 게 낫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만약 채식하기를 통해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것은 물론, 동물복지를 실현하는 데에도 기여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는 고려해 볼만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결론이 뭔데?
지금까지 우리는 기후변화 문제를 중심으로 환경보호 실천에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며, 그중 어떠한 실천 내역이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더 유효한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같은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각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그 선택에 대한 쾌락 또는 고통의 양이 다를 수 있음을 확인했죠.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우선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 같은 수준의 노력(고통)이 따르는 행동이라도, 얻을 수 있는 쾌락(환경보호)의 양은 다를 수 있다.
둘.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모든 환경보호 실천을 하기란 어렵다.
셋. 그러므로 우리는 각각의 활동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물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다 환경보호에 효과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결론에 앞서 고려되어야 할 전제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라는 점일 겁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의 변화는 뚜렷하며, 또한 이는 인간의 손에 의한 것임에 자명하기 때문이죠. 지금 ‘덜 고통 받으며’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이 훗날에는 더 큰 고통, 더 큰 비용으로 돌아올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