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반동의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프랑스 혁명의 유산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참정권 확대를 요구하는 자유주의와 인민의 자치를 주장하는 내셔널리즘이 온 유럽에 퍼졌던 것이죠. 빈 체제는 언론 검열이나 군대를 통해 수시로 이러한 요구를 억압했습니다. 결국 19세기 전반에 걸쳐 크고 작은 혁명과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자유주의는 지배세력의 개입에 맞서 정치-종교-경제적 자유를 표방하면서 출현한 역사적 운동이었습니다. 구체제에 대항해 인간의 이성과 합리를 추구한 계몽주의와 궤를 같이 하며 18-19세기에 영미권을 중심으로 확산되었죠. 자유주의의 핵심은 집단보다 개인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라는 공동체도 개인의 대표들에 의해 구성되어야 했죠. 그리고 대표자들의 정당성은 투표를 통해 확립되어야 했습니다. 다만 어떤 개인에게까지 자유를 허락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는 자유주의자들마다 입장이 달랐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모든 인민이 자유민이며 따라서 참정권을 지닌다’는 자유주의 중에서도 급진적인 입장을 지지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인권선언문은 온 유럽에서 자유주의 운동에 불을 질렀죠. 하지만 혁명의 패배 이후 들어선 빈 체제에서 대부분의 국가는 선거권에 제한을 두었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은 모든 사람이 자유민인 것은 아니라고 말했죠. 돈과 교양이 있는 사람만이 자유로우며 투표권을 지닐 수 있다고요. 빈 체제에서 참정권을 지닌 자유민은 귀족들과 상층 부르주아지에 불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