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1차대전이 끝나고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베르샤유 조약을 맺어 패전국 독일에 엄청난 배상금을 물렸습니다. 전쟁의 모든 책임을 독일에 돌리고 독일이 다시 재기하기 못하게끔 한 것이었죠. 1차대전의 원인이 어느 특정한 나라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두 나라에 대한 반감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히틀러는 승전국의 조치에 복수하고 독일을 다시 강대국의 위치로 올려놓겠다면서 이 틈을 파고 들었어요.

1933년 투표에서 승리해 총리가 된 히틀러는 그 해 국제연맹에서 탈퇴합니다. 1935년에는 베르사유 조약을 무시하고 공군과 징병제를 부활시켰죠. 그리고 1938년부터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를 잇달아 공격하면서 2차대전이 발발합니다. 전개가 정말 빨랐죠? 전쟁 초기의 전황도 그랬습니다. 나치 독일은 프랑스를 6주만에 점령하는 등 순식간에 유럽 전역을 차지했어요.

다른 서유럽 국가들과 소련은 독일이 진짜 전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어요. 1차대전의 참혹한 기억을 떠올리며 두 번째 전쟁을 피하려 했던 방어심리였을까요? 영국과 프랑스는 1938년 뮌헨 협정에서 독일이 체소슬로바키아를 지배하는 것을 용인했고, 소련도 다음해에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어요. 이러한 유화정책은 히틀러의 전격전에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독일에 완전히 기울어가던 전세는 1941년 6월 히틀러의 갑작스런 소련 침공으로 뒤집히기 시작합니다. 독일군은 그해 11월에 모스코바까지 진격했지만 패배했고, 1942년 여름부터 여러달 동안 계속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군에 항복했습니다. 동부전선에서의 전투들은 2차대전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았고 히틀러가 패배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이어 1944년 영국과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면서 나치 독일은 패망하게 됩니다. 동부전선에서 모든 힘을 뺀 독일군은 제대로 반격하지 못했죠.

그렇다면 왜 히틀러는 잠자코 있던 소련을 공격했을까요? 나치즘의 이데올로기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치즘은 공산주의자와 슬라브족을 혐오했습니다. 나치즘과 공산주의는 두 세계대전 사이의 독일 정치판에서 혼란스러운 경제를 해결해줄 대안으로서 경쟁했던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나치는 강력한 인종주의로 대중을 동원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냈죠. 이런 이유로 스탈린의 소련을 공격하는 것은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보다 혐오했던 건 유대인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유대인 금융가들이 세계경제를 망치고 있다며 그들만 사라진다면 평화와 번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습관처럼 장담하곤 했어요. 앞서 포드의 사례에서도 나왔듯이 당시 반유대주의는 서구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던 현상이었지만, 나치 독일은 실제로 유대인을 척결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에서 새로웠습니다.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유대인을 차별하는 법들을 통과시켰습니다. 유대인들은 공직에서 쫓겨났고 재산을 몰수당했으며 시민권을 박탈당해 ‘게토’라는 분리구역으로 이송되었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모두 죽여야 한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이 진행되며 곧 절멸이 목표가 되었죠.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던 폴란드에 유대인들을 죽이기 위한 시설들이 설치되었고, 국가의 모든 관료기구들이 동원되어 전 유럽에 있는 유대인들을 포획해 이 시설들로 이송했습니다. 폴란드에 살던 유대인의 89.6%인 300만 명이 죽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83%,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82.5%가 사망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도 14만 명의 유대인 중 10만 명이 죽임을 당했죠.

전쟁은 유대인 사망자 600만 명을 포함해 수천만 명의 민간인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가장 희생이 컸던 소련에서는 군인 860만 명, 민간인 1600만 명이 죽었죠. 폴란드는 전체 인구중 1/5인 600만 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570만 명이 민간인이었습니다. 무차별한 폭격과 학살, 피난과 추방이 낳은 결과였죠.

2차대전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습니다. 일본의 참전은 전쟁을 진정한 세계전으로 만들었고 그 상흔은 전세계가 공유하는 것이 되었죠. 1945년 이후의 현대사는 이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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