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1897년 고종은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조금 웃긴 일이었죠. 힘도 없는 나라가 ‘제국’이라뇨. 하지만 당대 세계인들의 인식을 고려했을 때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습니다. 19세기 말 세계의 각 지역은 제국과 식민지로 나뉘어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국이라는 간판은 독립국임을 알리는 한 방법일 수 있었습니다.

유럽은 16세기부터 식민지를 개척했지만, 19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세계를 지배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어요. 1800년에 유럽 열강은 전 세계 육지의 35%만을 지배했죠. 19세기 중후반부터 제국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했고, 1914년이 되었을 때 유럽은 세계의 84.4%를 지배하게 되었어요.

제국이 이렇게 빨리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국가의 효율적인 시스템 덕분이었어요. 1860-70년대에 유럽에서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강력한 근대 국가체제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국민국가는 전신과 철도 등 근대적인 교통과 통신 수단을 통해 중앙집권적인 정부를 세웠죠. 관료제와 민족주의를 활용해 효율적인 국민 동원 시스템도 갖추었어요. 그리고 그 힘으로 대내적으로는 산업발전, 대외적으로는 식민지 확장을 추구했고요. 영국은 1920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의 1/4을 차지했고 프랑스는 전 세계 영토의 1/10을 지배했죠. 독일과 미국 등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도 세계 전역에 식민지를 확보했습니다.

빅터 길럼, <백인의 짐>, 『저지』, 1899년.

16세기 이래로 식민지는 유럽에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스페인은 아메리카에서 채취한 금과 은으로 강대국으로 부상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유럽은 여전히 아시아에 비해 생산력이 낮았기 때문에 당시 국제화폐였던 은화는 중국이나 인도로 흘러들어갔어요.

산업혁명으로 유럽의 생산력이 크게 늘어나면서 식민지는 원료 공급지와 상품시장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면직공업의 사례가 적절할 것 같네요. 영국의 면 제조업자들은 식민지 인도의 목화 농장에서 원료를 공급받았고 완성품을 다시 인도인들에게 팔았죠.

2차 산업혁명으로 전기, 화학,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면서 고무, 구리, 석유 등의 천연자원이 중요해졌고 열강들은 식민지 확보에 더욱 열을 올렸습니다. 그 결과 국제적인 분업 체제가 형성되었어요. 고임금과 고이윤의 생산 부문을 담당하는 중심부 국가들과 저임금 저이윤 부문을 담당하는 주변부 국가들로 나뉘게 된 것이죠. 이러한 구도는 식민지들이 해방되고 난 뒤에도 이어졌어요.

서구의 기술과 군사력은 제국주의의 팽창을 가능하게 해준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증기선은 해안 지역을 넘어 내륙으로 진출할 수 있게 해주었고 기관총 등의 신식무기는 전투에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힘을 주었죠. 의학의 발전도 핵심적이었습니다. 말라리아와 콜레라 백신이 도입되고 식민지 지역 유럽인들의 사망률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어요. 1817-38년 서아프리카의 한 지역에서 유럽 군인의 사망률은 1000명당 483명에 달했는데, 이 수치가 20세기 초에는 1000명당 6명으로 떨어졌죠.

제국의 팽창은 문화적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사회진화론으로 대변되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이 제국과 식민지를 가리지 않고 자리 잡았어요. 제국을 뒷받침했던 무력과 경제력은 폭력의 수단이기도 했지만, 약소국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것이죠. 서구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독립운동들 역시 서구의 자유주의나 사회주의의 영향을 짙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흉내 내기가 꼭 제국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조선이 내세운 ‘제국’이라는 깃발이 당대 조선의 맥락에서 여러 의미를 지녔던 것처럼 말이죠.

여하튼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평화를 누리며 유럽과 미국은 전 세계를 분할하는 제국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세계는 전례 없이 긴밀하게 연결되었고 문명이라는 전차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처럼 보였죠. 노동자들이나 이주민, 식민지인들처럼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가 점점 더 부각되었지만, 그 문제마저도 곧 해결될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전쟁이 터집니다. 아무도 이 전쟁이 이토록 길고 참혹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죠.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더 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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