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형 VS 무계획형 여행은 말이죠
내 MBTI는 내향형에 직관적이고 감정형에 계획적 인간인 INFJ다. 대충 무슨 뜻이냐면 소심하지만 감수성은 충만하고 계획적인 섬세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SNS에 떠돌아 다니는 MBTI 유형별 여행 밈(meme)들을 보면 계획형 인간인 F와 탐색형(무계획) 인간인 P를 비교해 놓은 것들을 종종 볼 수 있다.
P들의 무계획의 혼돈 속에서 보이는 나름의(?) 계획들을 보면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치게 만든다.(대환장 파티라서..) 반대로 내 여행은 A부터 Z까지 완벽히 철저한 편은 아니지만 타임라인 정도는 세워두는 편이다. 20대 때는 계획 강박이 굉장히 심했었지만 30대인 지금은 한결 느슨해진 편이다. 짐가방은 또 어땠게..계획 변태였던 20대와 안녕한 게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나간 20대와 현재의 30대가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은 것은 내 여행에는 항상 책과 노트가 함께 해왔다. 앞서 말한 계획 변태인 것과 동시에 나는 기록 변태이기도 하다.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기록을 절대 게을리 하지 않는 편이다. 그 기록의 열정이 폭발했던 때는 2020년 2월, 코로나19가 인류에 창궐하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던 ‘해외여행 막차’를 탔던 시기였다. 여행을 2주 앞두고 모든 것들을 충동적으로 예약해 유럽으로 떠났다. 비행기를 타는 그 순간부터 무지 노트와 펜은 내 손을 떠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14시간 동안 나는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생각이 날 때마다 펜을 들고 생각을 기록했다. 영화를 보고 기록했고, 다운로드 받아 놓은 음악을 들으면서도 그 감정에 대해 기록을 했다. 심지어 온도와 구름의 색, 공기의 느낌까지도. 도대체 그걸 어디에 쓰려고 그리 열심히 쓰니? 라는 질문을 왕왕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템포 쉬고, 차분히 답을 했다.
“그때의 기억과 감정으로 지금까지 버텨보는 거예요.”
여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영화 속 주인공병
솔직히 혼자하는 여행이 마냥 즐거울 리는 없다. 여행 3일차 쯤 되자 혼잣말은 제법 많이 늘었고, 영어도 잘 못하면서 식당이나 카페 같은 곳을 가서 괜스레 직원에게 이것저것 덧붙여 묻곤 했다. 그 뒤 찾아오는 고요의 시간에는 다시 노트를 들고 기분과 생각들을 써나갔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의 일이다. 더블린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회사 후배를 만나러 바르셀로나에서 더블린으로 넘어갔고, 펍에서 일하는 후배를 기다리며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을 구경하고 있었다. 미술관이 워낙 크고 넓어서 다리가 아플 땐 작품들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쉬고 걷고를 반복했다. 의자에 앉아서 그때의 기분과 느낌을 노트를 꺼내 적고는 했다. 그때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그는 경계를 확 풀며 내 옆으로 한발자국 더 가까이 왔다. 자신은 부산에서 일을 했었고, 부산에 있다가 제주도에서도 지냈었다고 했다. 내게 부산과 제주도에 가봤는지, 그곳은 어떠냐고 물었다. 엉망진창인 영어 실력이지만 그가 듣고 싶어했던 답을 했다. 그러자 그는 내게 여행을 온거냐고 물었고 어느 곳들을 여행했냐, 아일랜드 어떠냐, 지금까지 혼자 뭐했냐는 등의 질문을 해왔다. 그 질문들 하나하나에 답을 천천히 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 마지막 질문에는 손에 쥐고 있던 노트와 책을 보여주며 혼자 일기를 썼다고 했다. 그는 내 노트를 굉장히 흥미롭게 봤다.
그 뒤로도 한 30분은 더 대화를 나누었다. 서툴고 느린 내 말을 차분히 기다려주었고, 내가 이해하기 쉬운 말들로 배려해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는 더블린에서 제일 맛있는 아이리쉬 커피를 사주고 싶으니 함께 나가자고 했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는 건 당시 빼곡하게 손글씨로 채워둔 여행 일기 덕이다. 당시 나는 마치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셀린이 된 기분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만 누릴 수 있는 주인공병(?) 같은 거다. 이 모든 기억들이 헛되거나 무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차곡히 쌓아둔 내 여행의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건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오롯한 ‘나의 것’이다.
작지만 확고한 행복을 가진 마케터가 책을 사랑하는 법
이제 8개월차에 접어든 작고 귀여운 마케터 기린은 이 한 권의 책을 군대에 있을 때 만났다고 한다.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슴에 팍-하고 꽂혔다고 표현했다.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여행>. 기린의 단정한 말투에서 작지만 확고한 행복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가 소장하고 있던 이 책 모서리가 손때로 얼룩져 있음을 보고 그 생각은 더욱 확실해졌다.
🦒기린(마케터, 8개월차)
군부대 책꽂이에 꽂혀 있던 많은 책들 가운데 이 책을 꺼냈어요. 이 책을 두고두고 읽어야지 한 게 아니라 정말 우연하게 만난 거예요. 심지어 작가님이 어떤 사람인지도 몰랐던 상태였는데 이 책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작가님과 함께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작가님이 찍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에 대해 제 바로 옆에서 직접 설명을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요.
저는 평소 어떤 걸 계획할 때 강박 같은 게 굉장히 심했거든요. 심지어 쉴 때도 그 강박으로 생각이 항상 많았어요. 그런데 이 책에 “무용하고 싶지만 무용한 시간을 견디는 힘이 우리에겐 없는 것이다.” 라는 문장이 있는데 제 삶을 관통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행 에세이지만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달까요.
Q. 당신에게 이 책을 마케팅 할 수 있는 기회가 닿는다면요?
🦒기린(마케터, 8개월차)
마케터의 시점보다는 독자의 시점으로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상업적으로 다가가는 것보다 조금 더 담백하고 싶었거든요) 저는 이 책의 사진전을 열고 싶어요. 작가님의 여행 사진들이 본문에 담겨 있는데 사진을 전시하고, 사진을 설명하는 텍스트로 책 속 문장을 넣고 싶어요. 작가님께서 직접 도슨트 역할을 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더 와닿을 것 같거든요. 사진전에는 조금 더 특별하게 책에 미처 담지 못한 작가님의 글과 사진을 소개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사진전 티켓은 이 책 한 권으로 하고요.
Q. 이 책은 어떤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어요?
🦒기린(마케터, 8개월차)
저처럼 강박을 가지고 계신 분들, 그리고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이 어느 순간 지겨워지고 따분해진 분들, 그런 마음 때문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분들이요.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을 때 저는 군인 신분이었고, 전역 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던 때였는데 그 당시 정말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어요. 전역 후에 이 책을 다시 펼쳐보니까 당시에 접어 놓았던 페이지가 지금이랑은 또 다르더라구요. 감정이 파도치는 분들께는 더욱 추천하고 싶어요. 이 책을 읽으면 혼란한 마음에 먹구름이 걷히고 해가 쨍하게 뜨고, 바람도 어느덧 잠잠해지게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