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바이러스처럼 예외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들은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합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경제가 조금이라도 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인류가 이러한 믿음을 갖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믿음이야말로 자본주의 체제 아래의 경제가 그 이전의 경제와 분명하게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18세기 말까지만 해도 인류 대다수의 삶은 천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고, 먹고 입고 자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없었어요. 당연하게도 이들은 미래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었죠. 농업 생산량이 점진적으로 증가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늘어난 수확량은 뒤이은 인구의 폭증을 감당하지 못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러한 회귀현상을 명료한 언어로 정리한 사람이 바로 맬서스입니다. 맬서스는 1798년 출간된 <인구론>에서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가 식량 생산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인구조정이 일어난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제는 무한정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제자리로 복귀하는 성향이 있다는 말이었죠.
그런데 유럽의 국가들은 대략 19세기 무렵부터 ‘맬서스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우선 대항해 시대부터 식민지를 통해 엄청난 자원과 노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 노동력의 대부분은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가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었죠. 기계와 에너지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본래 생산은 인간이나 동물이 제공하는 자연적인 동력에 의지했죠. 하지만 증기기관이 발명된 뒤로부터 인류는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힘을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석탄으로 물을 끓여 발생한 열, 석유를 태워 발생시킨 압력, 그리고 전기 같은 에너지를 통해 기계를 움직였던 것이죠. 이로 인해 생산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유럽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끝없이 성장하는 경제’가 시작된 것이었죠.
이제 사람들은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시민혁명을 전후로 이성 중심의 사고관이 인류의 진보를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같은 시기, 경제의 진보에 대한 믿음도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미래의 기업가는 현재보다 돈이 더 많을 것이고 사업은 계속해서 번창할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신용의 공급을 수월하게 해주었어요. 투자자들이 사업가의 미래를 믿고 돈을 빌려줄 수 있었으니까요. 쉽게 자본을 융통한 기업가들은 한결 편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투자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상당부분 이와 같은 신용체계에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발명가가 개발한 기계가 빠르게 산업현장에 투입되고 철도건설과 같은 노동집약적 작업이 순식간에 이뤄질 수 있었던 데에는 막대한 신용의 공급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죠.
국가도 기업가들을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부르주아지가 점령하고 있던 각국 의회와 정부는 안정적인 노동력과 자원의 수급, 시장이 원활히 작동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 해외시장과 원료 공급지 등 기업가들이 필요로 하는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전력투구했습니다. 자본주의의 발전을 잘 매개한 국가들은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어요. 면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장악하고 세계의 절반을 지배한 영국처럼요.
그래서 ‘자본주의’가 뭐냐고요? 자본주의를 정의하는 방법에는 수만가지가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미래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 “자본이 자본을 낳는다는 믿음”과 그 믿음을 지탱하는 제도이라고 해두죠. 부의 무한한 증가를 믿지 않았던 중세의 권력자들은 축적한 돈을 화려한 마상시합을 열거나 웅장한 궁전과 성당을 건설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달랐어요. 생산에 따른 이윤을 공장을 늘리거나 시설을 개선하는 데 다시 투자했던 것이죠. 나중에 더 큰 이윤으로 돌아온다는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미래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 어떻게 될까요? 몇 번의 국제적, 지역적 경제위기들은 그 모습을 어렴풋이 보여줍니다.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제부문들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는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허상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늘 그럴만한 토대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자본주의는 결합할 수 있는 모든 것과 결합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지구적 시장, 노예제도, 농촌을 떠난 농민들, 국가 등 모든 대상과 제도와 말이죠. 그러한 결합은 자본주의를 단단하게 해주었고 동시에 악랄하게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