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도시로

가수 조용필의 <꿈>이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고향을 떠난 한 사람이 “춥고도 험한” 도시의 진면목을 느끼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시화가 비교적 현재와 가까운 시기에 나타났지만, 서구 국가들에서는 19세기 중후반부터 급격한 도시화가 진전되었습니다. 농촌을 떠난 노동자들이 저마다의 ‘꿈’을 안고 도시를 찾았지만 당시의 도시는 노래의 남자가 겪은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공간이었죠.

산업혁명으로 맬서스의 덫에서 벗어난 유럽의 인구는 19세기동안 2배 이상 증가합니다. 이중 대부분은 도시 인구의 증가였죠. 런던의 인구는 1800년 86만 명에서 1900년 650만 명으로, 파리는 55만 명에서 330만 명으로, 베를린은 17만 명에서 270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산업시설이 들어서면서 황무지에 대도시가 생기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었죠. 미국의 대표적인 산업도시인 시카고의 인구는 1833년 200명에서 1900년 17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토지에서 밀려난 농민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도시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근대성의 상징이었던 19세기의 도시는 악마의 땅에 비견될 정도로 혼란스러운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주거구역은 인구밀도가 너무 높았고 위생설비와 공공시설도 부족했습니다. 불경기에는 해고당한 노동자가 빈민으로 전락해 길거리를 가득 채웠죠. 이 지역은 늪지대를 뜻하는 ‘슬럼’으로 불렸습니다. 슬럼의 환경은 폭력과 성 관련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콜레라와 결핵이 발병하면 수천 명의 목숨을 우습게 빼앗아가곤 했습니다.

도시 노동자들은 19세기 전반에 걸쳐 조직을 만들고 정치적 목소리를 높여갔습니다.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의 급속한 확산은 사회혁명이 곧 일어날 것처럼 보이게 했어요. 그전까지는 부유층의 거주지를 교외로 옮기는 식의 대처를 해오던 도시의 행정가들과 기업인들은 이제 무언가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전염병의 창궐과 악취, 공해 등 환경문제가 도시 시민 전체의 삶을 위협한 것도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근대적인 도시정비 사업이 시작되었어요.

도시정비의 핵심은 공중보건이었습니다. 우선 상하수도망을 정비해 수인성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고 오폐수에 의한 오염을 줄이는 방안이 논의되었어요. 런던과 파리의 하수도가 1850-60년대에 정비되었고 유럽의 다른 도시들도 근대적 상하수도망을 구축했죠. 공원과 광장을 조성해 공기의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시민들의 건강을 증진하는 방안도 추진되었습니다. 또 노동자들과 빈민을 위한 주거시설을 제공하기도 했어요. 공영주택을 건설해 저소득 서민층에게 장기임대하는 정책이었죠.

근대적 도시 정비 사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9세기 중반 오스만이 주도했던 파리 정비 사업입니다. 개선문을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파리의 도로망도 이때 구축되었어요. 파리에서 개선문이 차지하는 위치를 보면 알 수 있듯, 도시 정비는 근대국가의 기념사업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국가의 영웅과 영광을 도시의 주요 위치마다 배치했던 것이죠. 베를린의 제국의사당 등 거대한 공공건축물도 이 과정에서 건축되었습니다.

도시의 정비사업의 성취는 세계박람회라는 행사를 통해 국제적으로 공유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그 박람회 행사가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거예요. 도시가 안정화되자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공연예술시설, 선술집, 레스토랑, 쇼핑센터 등이 그것이었죠.

하지만 도시 개발의 과실은 불균등하게 배분되었습니다. 도시 개발이 부동산 투기와 연결되면서 특권계층의 자산이 급격히 늘어나고 임대차계약의 불균형이 발생했던 것이죠. 철거된 지역의 주민들이 노숙자로 전락하는 일도 자주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도시 문제들은 또 다른 갈등을 불러일으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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