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게 될 확률

내가 어릴 적부터 엄마는 새해가 되면 점집 또는 철학관으로 가족들의 사주와 운세를 보러 다니셨다. 신기하게도 어느 곳을 가던 내 사주와 운세는 대체적으로 비슷한 편이었다.

“큰 딸은 걱정 안 해도 돼. 지가 알아서 잘 살아, 일복이 넘치거든. 가족들이 딸 옆에 너무 붙어 있으려고 하지마. 오히려 방해만 되니까. 인복이 많아 큰 딸은. 그 복으로 먹고 살거야.”

일복, 가족들과의 거리, 인복..지금까지 봐온 내 사주에서 가장 주요한 키워드들이다. 일복이 많은 건 인정. 나는 일 욕심이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가족들과의 거리? 이건 무릎을 탁 치고 동의했다. 난 가족들이랑 그렇게 친하지도, 애틋함 같은 것도 없는 사람이다. 마지막 인복.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11년이 되었는데 내 직장생활의 거의 대부분은 ‘사람’이었다. 정신적인 위로가 되어준 사람들, 내가 일로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 좋은 동료가 될 수 있도록 깨닫게 해준 사람들..내 인생에 이런 동료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미 주저 앉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을 거다. 이건 정말 확실하다.

맑고 사랑스러운 그녀

당시 출판계에서 디지털마케팅이라는 건 거의 돌산을 깎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영역이었다. 그 황무지를 곡괭이로, 호미로, 삽으로 다지고 씨앗을 뿌려 작은 동산 하나를 혼자 힘으로 일궈냈다. 분에 넘치게도 당시 내 나이와 연차에 비해 팀장이라는 직책을 꽤 빨리 달게 되었고 팀장이 되며 팀원을 뽑게 되었다. 내 첫 팀원인 그녀는 맑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각별하고 애틋했다. 그녀는 내가 준 사랑만큼 그 에너지를 내게 돌려주었다. 어느 주말엔가 집 밖에서 “팀장님! 조 팀장님!” 이라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하고 창밖을 보니 그녀가 건물 앞에 서서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손에는 꽃다발과 선물이 들려 있었다. 그 주에 내가 입사 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녀는 나의 입사 5주년을 축하해주기 위해 성북구에서 경기 고양시까지 그 먼 거리를 찾아온 거였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 팀을 부러워했다. 팀 분위기가 좋다고. 서로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각자의 재능이 빛날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이끌어주는 그런 관계였던 거다. 즐겁게, 밝게 하다보니 팀에서도 성과가 뚜렷했다. 대표님을 포함한 임원들은 우리 팀을 지지했고, 대표님의 직속 부서가 되면서 든든한 지원군을 얻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내가 먼저 퇴사를 하게 되었고, 이후 그녀가 퇴사하는 날, 나는 다니던 회사에 반차를 쓰고 그녀를 포함한 동료들과 밥을 먹으며 그녀를 배웅하기도 했다. 재미있게 일을 하면 어떤 일이라도 일어난다는 걸 깨닫게 해준 팀원이자, 사랑스러운 후배였다. 선배들과 술을 마실 때마다 종종 그녀의 이야기를 한다. 회사에 상처를 받고 업계를 떠난 그녀는 지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모두와의 연락을 두절한 상태다. 언젠가 맑은 웃음을 지으면서 이제는 행복하다며 연락이 왔으면 좋겠다.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동료들

생각보다 나는 친해지기 어려운 타입이다. 상대와 나의 온도 차이를 생각하면서 꽤 깊이 상대를 살피고, 경계를 하는 편이다. 친해지고 난 뒤부터는 쉬워진다. 자동문처럼 마음을 활짝 열기 때문이다. 지금의 동료들이 그렇다. 만난지 두 번째 쯤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을 보면 그렇게 밝고 즐겁게 웃었다. 나와 맞는 온도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업계에서 자칫 고인물로 썩을 수도 있었던 나를 위해 그들이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러나 일을 함께 시작하고부터는 삐걱거리는 것들이 많았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쉽게 자책했고, 그들은 작은 것에도 쉽게 자괴감에 빠지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마음을 닫고 입도 닫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따뜻하고 다정한 온도가 차게 식고 있었던 과정이었다. 마음을 완전하게 닫기 직전, 그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내 마음을 살피고 돌보기 시작했다. 나를 다시 웃게 해주고, 내가 돌아서서 몰래 속을 앓을 때마다 그것을 알아채고 손을 먼저 내밀어주었다. 그들은 나를 울게 하고, 웃게 했다. 그런 사람들이 뭐 그렇게 좋아서 일을 같이 하냐고 누군가 물어올 때면 나는 늘 이렇게 답을 한다.

“예뻐서요.”

서툴지만 그들이 한 발자국씩 내게 다가온 방식들이, 나는 그 모습을 예쁘다고 생각했다. 누구하나 완벽한 것 없는 서툰 사람들끼리 서로를 구원한 것이다.

묵묵히, 나만의 일로 건너가 보겠습니다.

김민철 작가의 에세이 《내 일로 건너가는 법》에서 이런 문장이 있다.

“너무 애쓰지 말고, 재미가 있으면 재미있는 대로 강물에 몸을 맡기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그건 그때 또 생각하면 되는 거지. 그러다 어떤 강둑에 도착하게 되면 그때 또 거기서 답을 찾아보면 되는 거지. 지금 모든 답을 다 알려고 애쓰지 마. 인생이 알려줄 거야.”

일터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강물 위에 떠오른 사람들이 있다. 유유히 배영으로 유영하는 사람도 있고, 옷깃이 젖을까 싶어 작은 보트를 타고 물길을 건너가기도 하고, 깊이를 가늠하지 않고 무작정 뛰어 들어 허우적 거리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그 강을 건너고 보면 각자의 방식이 옳다, 틀렸다 혹은 다른 방식으로 다시 강을 건너야겠다 라고 깨닫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짐작도, 가늠도 할 수 없는 강 위를 떠다니고 있는 중이다. 아직 ‘일’이라는 것에 관해 정답을 찾지 못한 상태다. 그럴 때일수록 우린 그저 묵묵하게 해나가면 된다. 정답을 알기 위해 애쓰려고도 하지 말고, 그 과정에서 자책과 비난을 더더욱 해서는 안 된다. 책에서 알려준 것처럼 어떤 강둑에 도착해 그곳에서 답을 찾아보면 된다.

Q. 우리에게 ‘일’은 뭐라고 생각해요?

🦝레서(콘텐츠 마케터, 5년차)
일 자체에는 죄가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일에 붙어 있는 이해관계들이 문제일 뿐이죠. 일은 나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시간들이에요.

🦦해달(콘텐츠 마케터, 5년차)
돈이기도 하지만 일이라는 것은 나를 나타내주는 징표예요. 거기서 오는 뿌듯함이 있고 성취감이 있어요. 결국 일이라는 건 나와 같이 살아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기린(마케터, 8개월차)
인생의 원동력 같은 거요. 그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찾아가는 과정 같아요.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발견하게 해준달까요. 저도 ‘일’을 통해 그런 과정을 찾아가고 있어요.

Q. 만약 팀장이 된다면 어떤 분위기의 팀을 꾸려보고 싶어요?

🦝레서(콘텐츠 마케터, 5년차)
친근하고 다정한 분위기도 좋지만 무엇보다 팀원의 커리어를 책임져 줄 수 있는 팀장이 되고 싶어요. 힘들어도 너는 이런 장점이 있으니 여기까지 해보자, 라고 다독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멀리 점을 찍어주고 팀원이 그 점을 찍으러 갈 수 있도록 조력해주는 그런 팀장이요.

🦦해달(콘텐츠 마케터, 5년차)
퇴근을 눈치보지 않게 하는 리더가 되고 싶어요. 주어진 시간 동안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서 일을 할 수 있는, 퇴근에 대해 서로 눈치보지 않는 그런 조직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운 분위기요.

🦒기린(마케터, 8개월차)
팀원보다 우월하다 생각하지 않는 팀장이요.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팀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는 다정한 팀장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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