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Part 3 | 인간은 그저 바이러스이며, ‘기생충’이다

사피엔스 Part 3 | 인간은 그저 바이러스이며, ‘기생충’이다

농업혁명이라는 거대하고 도발적인 사기 행각에 갇혀버린 사피엔스들은 스스로 덫에 빠지기 위해서 신화라는 ‘상상의 질서’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죠. 사피엔스는 사회질서를 ‘데이터화’하기 위해 문자를 만듭니다. 2진법에서 글자로, 다시 10진법으로 데이터를 관리한 사피엔스는 다시 컴퓨터 세상 속 2진법 체계에 세상을 구겨 넣었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생각하는 사피엔스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단 하나의 문장은 바로 이것일 겁니다. ‘역사는 정의로웠던 적이 없지만, ‘우리’는 언제나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정도가 아닐까요? 유발 하라리의 시선은 날카롭고, 통찰력이 돋보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회의론적입니다. 문제는 그의 이런 회의적 시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죠.


📃 역사의 화살‌‌

유발 하라리는 문화를 경쾌하고 단순하게 정리합니다. “수백 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네트워크”라고 말이죠. 그는 기존(20세기 전반)의 연구자들이 문화를 고정적인 불변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것과는 반대로 최근의 연구 경향은 그렇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즉, 문화는 대단히 가변적이라는 것이죠. 외부적인 접촉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내부적인 역동성에 의해서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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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문화가 변화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적 모순 때문입니다. 중세 기사들의 기독교적 윤리관과 기사도 사이의 모순, 프랑스 혁명 이래로 평등과 개인의 자유가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 사이의 모순이 그렇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이 둘 사이의 간극이 거대한 변화로 이어져 왔고(질 것이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낼 것이라고) 믿습니다,만 그 변화의 기반에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해야 하죠.‌‌ 이렇듯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데, 유발 하라리는 그 변화의 방향성을 “통일”이라고 봅니다. 역사 속에 종종 발견되는 분열은 “일시적인 반전”이기 때문에 “다양성”을 사피엔스의 역사로 규정하기엔 대단히 근시안적이라는 거죠. 지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인간 세상”은 수천 년 사이에 극적으로 줄었고, 줄고 있습니다.

사피엔스의 문화는 다양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문화적 차이로 인한 “논쟁의 개념”은 같고, 심지어 싸우는 무기도 같습니다. 그가 바로기에는 “진정한 의미”의 문명 간의 충돌은 사실 없는 것이죠.‌‌그는 더 나아가 이렇게 단언합니다. “고유의 문화”라는 건 하나도 없다고 말이죠. ‘민속 요리’라는 허상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각국의 요리들은 결국 문화의 이동과 변화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 안에는 고유성 따위는 없다는 겁니다. 그의 시선에서는 김치도 마찬가지겠죠.‌‌ 적어도 멕시코산 고추가 한반도에 인근에 상륙해 음식에 첨가되기까지는 19세기에 이르러야 하니까요. 사실 전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히 늦은 시기에 ‘만들어’ 집니다.‌‌ 유발 하라리가 생각하는 사피엔스를 “우리”로 묶어주는 마법의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화폐 질서야말로 최초이자 최종의 보편적 질서죠. 정치와 종교라는 강력한 질서보다 앞선 ‘끝판왕’이 바로 돈이죠.


📃 돈의 향기‌‌

사피엔스가 만들어 낸 사회에 본격적으로 돈 냄새가 나기 시작한 때는 바로 도시와 왕국의 출현 이후입니다. 교역을 통해 다른 도시, 혹은 왕국과 교류하고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가 출현하면서부터죠, 교역의 범위가 넓어지면 단순한 물물교환을 넘어서게 됩니다. 바로 이때 돈, 즉 화폐가 탄생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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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화폐를 주화와 지폐로 상상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화폐의 90%는 컴퓨터 서버에만 존재하는 “전자데이터”입니다. 우리는 이 전자데이터를 통해서 “거의 모든 것”을 “다른 거의 모든 것”으로 바꿀 수 있죠.‌‌돈이 작동하는 방식은 간단합니다. 각자의 문화권에서 만들어 낸 ‘집단적 상상의 산물’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가치를 돈을 통해 주고받는 것이죠.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셈 법은 돈이 작동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방식입니다. 그 출발은 기원전 3,0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든 은으로 된 세겔(은 8.33그램)이었죠.‌‌

주화를 만드는 행위는 곧 절대적 권위를 상징했습니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이들이 로마 사람들이었죠. 로마 황제의 얼굴을 새긴 주화는 곧 주변에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돈 박힌 왕의 얼굴은 각 공동체의 절대자야말로 각자의 주화를 찍어 낼 유일한 권력임을 말해주는 상징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더 넓은 교역망을 형성하기 위해서 각자의 주화는 곧 하나의 공통된 ‘재료’로 통일되어야 했습니다. 서로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같은 가치를 지녔다고 믿는 특별한 무엇이 필요했습니다. 그 믿음의 산물은 은을 넘어 금으로 이어졌고, 대항해시대를 거쳐 서세동점의 시기까지 금이야말로 모든 사피엔스가 신뢰하는 공통의 주화로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 제국의 비전‌‌

공통의 주화가 제 기능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제국이 필요합니다. 이때 제국은 꼭 군사력의 우위로만 설명될 수는 없습니다. 아테네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경우가 그렇죠. 아테네 제국은 자발적인 동맹 관계를 통해, 합스부르크 가문은 결혼 관계를 통해 제국을 형성했습니다. 심지어 대영제국의 경우는 독재적 황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통해 제국을 건설하고 통치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제국의 가능해진 이유는 사피엔스의 다양성이 급격히 축소되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민족의 독특한 특징들은 사라졌고, 다양한 이유로 만들어진 상상의 산물은 문화를 하나로 묶어냈고, 제국을 형성했죠. 때문에 ‘제국주의자’라는 표현은 결국 욕설이 될 수 없습니다. 제 살 깎아 먹기인 셈이죠. 모두가 제국주의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하나의 제국이 무너지면, 그 자리에는 새로운 제국이 싹 텄습니다. 그렇게 정복은 또 다른 정복을 만들었고,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죠.‌‌제국의 유지를 위해서는 무자비한 억압이 필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억압을 통해서만 지금 우리가 “인류 문화의 성취”라고 부르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 수 있었죠. 피정복민의 피와 땀이 없이는 로마, 인도, 합스부르크 제국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단지 과거의 유산으로만 기능하지 않습니다. 현대 문화의 대부분은 바로 이 제국에서부터 출발한 것이죠.‌‌

사피엔스의 기본적인 본능은 ‘구별’입니다. 너와 나,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것이죠. ‘우리’는 ‘그들’과 다르고, 그 차이는 사피엔스와 다른 종의 차이를 넘어 인종적 배타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배타성이야말로 통합과 통일의 이데올로기를 완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죠. ‘그들’이 ‘우리’가 되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제국은 곧 공통의 문화를 전파해 나갑니다. 이를 위한 정당성은 언제나 비슷했습니다. ‘그들’을 진정으로 인간답게 만들어주겠다는 선의였죠.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제국의 통치술은 언제나 비슷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이러한 관점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탈을 떠올리게 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죠. 미개한 조선을 문명화시켜준다는 명분이었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주장하는 ‘문화가 동화되는 과정’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는 제국과 피식민지 간의 ‘동화 과정’은 언제나 힘들지만(특히 끼인 세대의 소외와 배제) 시간이 흐르면 결국은 성공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로마부터 아랍, 중국에 이르는 제국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죠.‌‌ 조선은 전쟁(미국과 일본의 전쟁)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사실상 제국의 지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조선을 비롯한 제3세계의 식민지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해방되었지만, ‘서구의 가치’를 받아들인 지역이야말로 지금 현재 다양한 나라들과 동등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거시적인 관점에 따르면 조선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서구적 가치’의 지배를 받았고, 여전히 그 동화 과정에 있는 나라입니다.‌‌

Photo by Hasan Almasi on Unsplash

대단히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유발 하라리는 관점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스스로가 지키려는 특별한 유산이 있다고 상상하더라도, 그 유산이야말로 또 다른 제국의 유산이라는 것이죠. 서구 제국주의보다 덜 야만적인 제국의 유산이라고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각 문화권(결국은 상상된 권역이지만) 고유의 유산 또한 피억압자의 피와 땀에 의해 탄생한 유산이니까요.‌‌‘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최근의 경향성입니다. 현존하는 200개 가량의 국가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겁니다. 개별 국가를 넘어서는 “다민족 글로벌 세계”의 출현입니다. 특히 점점 발전하고 있는 신기술들은 새로운 유형의 생명체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고, 결국 “글로벌 협력”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응할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 시대 앞에 놓여진 거대한 도전은 어떤 제국을 건설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 종교의 법칙‌‌

오늘날의 종교는 차별과 분열의 근원이자, 한편으로 돈과 제국 다음으로 사피엔스를 묶어주는 매개체입니다. 유발 하라리에게 종교란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입니다. 그에게 종교는 사회를 묶어주는 취약한 정당성을 매워주는 효과적인 정치도구일 뿐이죠.‌‌

애니미즘과 같은 국지적인 종교는 농업혁명 이후 일종의 “종교혁명”을 통해 성장합니다. 애니미즘은 각 제국에서 다신교의 출현으로 이어졌고, 다신교의 관용적인 종교관을 통해 나름 선한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 전통은 일신교의 전통을 가진 기독교의 확장 이후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이 일신교도들은 같은 신을 믿는 서로에게까지 칼을 겨누며(종교전쟁) 자신들의 신학만이 진리라고 외쳐댔습니다. 결국 다신교의 전통은 조금씩 깨어졌습니다. 다신교도 조차 자신의 수호신에 대한 과한 애정으로 기독교와 같은 일신교도가 되어 갔죠.‌‌하지만 기독교는 정말 오로지 일신론적인 모습만 있을까요? 태초의 다신교적 전통은 ‘이신교’로도 이어져 선과 악의 대결로 세상을 이해하는 논리를 만들어 냅니다. ‘악’ 앞에서 약해지는 일신론이 선과 악의 대결을 설명해주는 ‘이신론’과 만나면 천하무적이 됩니다.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악마’의 존재가 바로 일신교 안에 있는 ‘이신교’의 전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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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교의 논리 안에 이신교의 논리가 존재한다니?”

사실상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인간은 모순을 믿는 놀라운 존재”입니다. 기독교 안에는 다신교에서부터 시작해 이신론적인 모습까지 다양하게 뒤섞여 있죠.‌‌한편 근래의 300년 간을 종교가 사피엔스 사회에서 힘을 잃어가는 시기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이와 같은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자연법칙의 종교”로 확장한다면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등의 ‘이즘’이야말로 진정한 종교적 현상이라는 겁니다. 근대 이후의 사회는 바야흐로 각종 ‘이즘’ 간의 대결이었다는 거죠. 여기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야말로 신 없는 종교의 대표적인 예이니까요.‌‌

유발 하라리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설명하는 ‘이즘’은 “인본주의”라는 종교와 “인권”이라는 상상의 계명입니다. 사회주의가 되었든, 자유주의가 되었든 이들 종교는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사상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 즉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상을 일신론적 토대 위에서 세웠죠. 이는 곧 “영혼이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일신론적 사상의 변형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 성공의 비결‌‌

유발 하라리의 회의론은 이 파트에서 극에 달합니다. 특히 역사학자로서, 과거를 남들보다 더 많이 생각한 한 사람으로서 그가 바라본 인류의 발자취는 대단히 암울한 것이었습니다. 인류가 걸어온 길은 인류의 복지를 개선하는 방향도, 이익이 되는 방향도, 선이었을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죠. 모두가 결과론적이고 승리한 자들의 주장일뿐이죠.‌‌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인간은 그저 바이러스일 뿐입니다. 정확히는 바이러스의 숙주일 뿐이죠. 스스로를 복제해서 이동하며 자신을 퍼트릴 뿐입니다. 그는 인간을 “기생충”이라고 명명합니다. 혹시 이 표현에 기분이 상하셨나요? 아니면 반론을 펼치고 싶으신가요? 하지만 이 책을 꾸준히 따라 읽은 독자라면 유발 하라리가 왜 이런 주장을 펼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표현이 과격할 뿐, 사실은 사피엔스의 만행에 대해서는 우리는 익히 알고 있었죠.‌‌

Photo by Khashayar Kouchpeydeh on Unsplash

바로 이 지점에서 역사가 필요한 이유를 명확히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역사를 거시적으로 바라볼 때의 장점에 대해서도 확실히 와 닿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역사, 더 정확히는 자국의 역사(한국사, 또는 국사라고 불리는)와는 다른 보다 넓은 의미의 역사 말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넓은 관점을 유발 하라리는 ‘거시적’으로 뱉어냅니다.

여기서 불쾌해 하며 책을 덮을 것인지, 아니면 그의 주장을 더 깊게 따라가 볼 것인지는 자유입니다. 적어도 여기서는 마지막 장까지 끝내 따라가 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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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아니라, 이런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 인문학의 ‘이론적 토대’가 된 사상이 ‘종교적’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종교를 넘어선 ‘이즘’은 존재할 수 있을까?
  • 한국의 역사에서 어떤 제국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 고려와 조선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고려인과 조선인은 어떤 억압과 착취를 만들어 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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