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세의 경제 : 농업에서 금융까지

유럽 중세의 경제 : 농업에서 금융까지

유럽의 중세 초기는 극심한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전쟁과 이동이 끊이지 않았고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이 갖추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10세기가 지나면서 이민족의 침입과 전쟁이 줄어들었고 서유럽의 봉건사회는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농업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곡물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원래 유럽의 농민들은 매년 경작지의 반을 휴경시키고 나머지 반에서만 농사를 지어야 했어요. 이것을 2포제라고 부릅니다. 중세의 첫 몇 백 년이 지나면서 경작지에 1/3만 휴경하는 3포제가 도입되었어요. 농민들은 더 많은 식량을 만들기 위해 황무지와 숲을 개간하기도 했습니다. 땅을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되니 먹을 게 많아졌고 자연스레 인구가 늘어났습니다. 농업 생산량은 1000년에서 1300년 사이에 두 배 내지는 세 배 가량 늘었어요.

하지만 중세의 농업 생산력은 지중해의 비옥한 토지에 기반을 두고 있었던 로마 시대의 생산력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반복적인 기근과 토지의 혹사, 흑사병은 다시금 인구의 조정을 가져왔습니다. 어쨌든 유럽인들은 10세기 무렵 전보다 더 많은 식량을 확보했고 잉여생산물을 거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세의 무역은 크게 지중해 무역과 북방 무역으로 나뉩니다. 10세기 경 지중해 세계의 세력 다툼이 잠시 멈추자 이슬람 세계, 비잔티움 제국, 이탈리아를 오가는 원거리 무역이 부활했습니다. 지중해 무역의 핵심은 아시아에서 만들어진 후추와 생강, 비단 같은 상품이었어요. 이 상품들은 서유럽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고 활발하게 거래되었습니다.

북방 무역은 지금의 네덜란드 지역인 플랑드르 지방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모직물이 유럽 본토로 들어와 활발하게 거래되었던 것이죠. 모직물은 유럽의 대표적인 생산품이었고 동방으로까지 수출되었습니다. 모직물 거래는 12세기에 접어들면서 독일 북부로 확대되었고 함부르크, 브레멘 등 북해 연안의 도시들은 한자동맹을 맺어 모직물 이외에도 다양한 상품을 유통시켰습니다. 지중해 무역망과 북방 무역망은 프랑스 파리 동쪽에 위치했던 샹피뉴 정기시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상업은 농업보다 결코 중요하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종사했던 인구나 규모를 생각해보면요. 하지만 상업의 꾸준한 발전이 서유럽이 근대로 가는 길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상업이 활성화되면서 성직자, 귀족, 농노로 구성된 중세 사회에 새로운 상인 계층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교역로에 위치한 ‘영주의 성이나 교회의 수도원 주변(burgus)’에 정착했고 이 거주지역들은 점차 도시로 발전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사는 지역을 따 부르주아로 불리게 되었죠.

도시민들은 때때로 지역의 영주로부터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조합(guild)을 만들 권리를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독점적인 사업권을 유지하는 도구인 길드의 힘을 빌려 이들은 ‘도시귀족’으로 성장했고 경제력과 정치력을 키웠습니다. 때로는 왕과 손을 잡고 영주를 몰아냈고 때로는 영주와 손을 잡고 왕을 몰아냈습니다. 후자에 해당하는 사례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었고 전자의 경우가 영국과 프랑스 등 다른 서유럽 국가들이었습니다.

19세기 말 공연된 <베니스의 상인>의 한 장면

자, 이제 금융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원거리 무역이 가능하려면 물건을 실은 배가 지중해를 건너올 전까지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이나 안전을 보장해줄 보험이 필요했겠죠? 이러한 사업에 대한 수요가 가장 높았던 것은 물론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었습니다. 은행, 보험업, 대부업 등이 이탈리아에서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중세 유럽에는 금융의 발달을 가로막는 요소가 많았어요. 무엇보다 교회가 금융업자들을 죄인으로 취급했습니다. 중세인들의 시각에 시간은 신성한 것이었고 하느님의 소유물이었어요. ‘미래’는 구원의 시간이고 구원은 하느님의 권능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미래의 시간을 이용해 이자를 받아가거나 요금을 청구하는 금융업은 하느님의 권한을 침범하는 일로 비추어졌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중죄였지요.

하지만 교회가 어떻게 생각하든 금융은 중세 유럽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럼 누가 이러한 수요에 대응했을까요?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교회는 유대인만 금융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못 박았고, 기독교인들은 그들을 차별했습니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도 이 유대인들의 후손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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