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로마 제국의 멸망을 가속화했던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배웠죠. 이 대이동은 중앙아시아 유목인이었던 훈족이 흑해 북쪽에 정착했던 4세기 후반부터 수많은 게르만 부족들이 서쪽과 남쪽으로 이동한 사건을 말합니다. 5세기 중반에 이르면 로마 시까지 약탈하기에 이르렀죠. 로마인들은 이들을 문명화되지 않은 야만적인 존재로만 묘사했지만, 사실 로마 제국 변방의 이민족들은 이미 여러 경로로 로마의 문명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여러 부족이 대이동 전에 기독교로 개종한 상태였고, 로마 멸망 이후로도 문화적으로 우월했던 기존의 거주민들, 즉 과거 로마의 시민들과 협력해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려 했습니다.
게르만 왕국들 중 가장 잘 나갔던 건 프랑크 왕국이었습니다. 15살의 나이에 프랑크족의 부족장이 되었던 클로비스는 탁월한 전쟁능력으로 오늘날의 프랑스 지역에 정착해 있던 게르만족들을 통합하고 5세기 말엽에 프랑크 왕국을 세웠습니다. 그는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왕위를 아들들에게 물려주면서 메로빙 왕조를 출발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왕조는 7세기 무렵 왕가 내부의 분열로 몰락해버려요. 이어서 등장한 게 카롤링 왕조입니다. 카롤링 왕조의 2대 왕이었던 카롤루스 마그누스, 다른 이름으로 샤를마뉴 대제는 서유럽 대부분을 정복하고 프랑크 왕국을 더욱 발전시킵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오려는 이슬람 세력을 막아내기도 했죠. 그는 기독교의 수호자를 자청하면서 각지에 예배당을 건설하고 고위 성직자를 등용해 기독교 기반 통치체제를 확립했습니다.
또한 카롤루스는 토착귀족들에게 백작의 지위를 하사해 지역의 통치권을 위임하는 대신 군사적 복종을 약속받는 봉건적인 주종관계를 통해 왕국을 유지시켰습니다. 이 시스템이 나중에 서유럽 봉건사회의 뼈대를 이루게 됩니다. 이 프랑크 왕국이 카롤루스의 손자 대인 870년경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분열하면서 서유럽 국가의 틀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서로마 제국의 영토가 게르만족에 의해 분할되었던 겁니다.
서로마 제국은 멸망했지만, 동로마 제국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살아남아 유럽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 다른 이름으로 비잔티움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천해의 요새였습니다. 그리고 흑해와 지중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요충지로 상업에 최적화되어 있기도 했죠. 게르만족의 이동이 유럽 서쪽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비잔티움 제국은 대이동의 여파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마 제국의 과거 영토를 회복할 국력은 없었죠.
527년 즉위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로마법을 정비해 국가행정을 개혁하고 황제교황제를 실시해 제정일치의 권력을 확립했습니다. 또한 농업과 무역이 다시 활발해지면서 비잔티움 제국은 확장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십수년 간 이어진 팽창 전쟁과 540년대에 번진 흑사병은 제국의 국력을 크게 악화시켰습니다. 그래도 비잔티움은 상업을 기반으로 한 경제력과 압도적인 문화를 통해 오랫동안 중세 유럽인들에게 선망의 도시로 남았습니다.
중세 초기 로마 영토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던 스페인, 북아프리카, 아랍 지역을 다스렸던 것은 이슬람 제국입니다. 6세기 말에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는 종교와 정치의 수장으로서 아라비아 반도를 정복했고 그의 후계자들은 그가 죽은 뒤 1세기 만에 이슬람 제국의 영토를 스페인까지 확대했습니다.
이러한 폭발적 확장은 무슬림들의 종교적 동기와 군사적 역량 외에도 다른 요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무슬림들은 정복 지역에 기존 지배자보다 더 낮은 세금을 부과했고 개종을 강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세금을 더 깎아줄 따름이었죠. 이러한 동화 정책은 무슬림들이 피레네 산맥을 너머까지 진출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물론 카롤루스 마그누스의 군대에 의해 저지되었지만요. 이렇게 중세 초기에 과거의 로마 제국이 남긴 거대한 터는 게르만 왕국, 비잔티움 제국, 이슬람 제국에 의해 삼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