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별종 대조영, 발해를 건국하다.
발해말갈의 대조영은 본래 고려(고구려)의 별종(別種)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조영은 유민들을 이끌고 영주로 옮겨와 살았다.(『구당서』 북적열전 발해말갈) 발해군(郡)이란 옛날의 고려(고구려)국이다. 천지전황 7년(668) 겨울 10월에 당의 장군 이적이 고려를 정벌하여 멸망시켰다.(『속일본기』 성무기 4년) 발해사신 고제덕 등이 발해왕의 교서와 방물을 보냈다. 그 교서에
발해말갈의 대조영은 본래 고려(고구려)의 별종(別種)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조영은 유민들을 이끌고 영주로 옮겨와 살았다.(『구당서』 북적열전 발해말갈) 발해군(郡)이란 옛날의 고려(고구려)국이다. 천지전황 7년(668) 겨울 10월에 당의 장군 이적이 고려를 정벌하여 멸망시켰다.(『속일본기』 성무기 4년) 발해사신 고제덕 등이 발해왕의 교서와 방물을 보냈다. 그 교서에
발해말갈의 대조영은 본래 고려(고구려)의 별종(別種)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조영은 유민들을 이끌고 영주로 옮겨와 살았다.(『구당서』 북적열전 발해말갈) 발해군(郡)이란 옛날의 고려(고구려)국이다. 천지전황 7년(668) 겨울 10월에 당의 장군 이적이 고려를 정벌하여 멸망시켰다.(『속일본기』 성무기 4년) 발해사신 고제덕 등이 발해왕의 교서와 방물을 보냈다. 그 교서에
성공한 통일전쟁, 왕권은 날로 치솟다.정복활동을 수행하고 그것이 성공하면 왕의 권한은 막강해집니다. 이를 반영하듯 신라왕의 권력은 막강해졌습니다. 왕권의 전제화는 장자상속제의 확립과 관료 조직이 체계화 되어 있었다는 것을 기준으로 대체로 파악합니다. 이 점에서 특히 김춘추의 등장은 신라사 최초로 왕족이 아닌 진골귀족이 왕이 된 경우로서 특기할 만합니다. 왕계가 바뀜과 동시에 왕위는 김춘추
용맹한 고구려! 강대국과 싸워 모두 이기다!삼국의 항쟁이 한창일 때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했습니다(589). 이후 고구려는 새롭게 등장한 중원왕조와 자웅을 겨루기 시작합니다. 신라로부터 한강유역을 빼앗긴 와중에 통일된 수나라로부터 지속적인 압박을 받자, 고구려는 일단 먼저 북방으로 시선을 두고 수나라에 집중합니다. 이 과정에서 있었던 유명한 전투들이 바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612)입니다. 고구려는
고대는 신분제 사회였고, 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왕을 정점으로 권력이 편제되는 구조였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왕권은 점차 강화되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그 가운데 귀족과 같은 특권세력과의 갈등이 있거나, 그들이 왕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양자는 상호 협력하며 정치를 운영했어요. 이제부터 언급되는 ‘발전’은 정치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이나 전쟁을 통해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 그리고 사회
사슴의 나라 부여부여는 한국 고대사에서 고조선 다음으로 국가를 형성했던, 우리역사상 두 번째 국가입니다. 부여는 위만조선이 존속했던 시기인 기원전 3~2세기경부터 사료에 보이기 시작해 494년 고구려에게 멸망하기 전까지 약 700년간을 존속한 국가입니다. 부여는 지금의 만주 송화강 유역에 근거해서 살았는데 평탄한 평야에 가축을 놓아기르고 오곡이 풍성하며 사람들의 품성이 좋아 예의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고조선(古朝鮮)은 한국사의 시작을 연 국가입니다. 그 만큼 관심도 많고 논란도 많지요. “단군신화가 사실인가?”라는 질문이 대표적이지요. 여기에서는 고조선 역사를 이해하는 체계적인 단계를 안내해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나라 이름부터 알고 갑시다. 고조선은 옛(古) 조선(朝鮮)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잠깐! 흔히 ‘옛 조선’이라고 하면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과
“누구나 살면서 감기에 걸리듯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병을 앓는다. 그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발병하는 실존적 감기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주는 기능을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역사학자 김기봉 선생의 글에 있는 구절을 발췌해 보았습니다. 21세기, 자본주의의 고도화, 기술발달의 고도화로 상징되는 지금을 살고 있는 ‘실존적 존재’
한국사는 지역적으로 한반도라는 공간과 그 인근에서 전개 되어 온 역사 전체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역사적 계승성도 고려하여 고구려나 발해 등 ‘지금의 한반도’ 밖에 있었던 역사 역시 한국사의 범주에서 이해합니다. 즉 해당 지역에 장기간에 걸쳐 함께 생활하면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화권을 형성하며 동일한 문화적 요소를 공유하고 공통의 역사적 기억과 집단적 귀속감정을
소설가 역시 과거를 대상으로 개연성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소설은 허구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에서는 서사물을 소설(小說)과 대설(大說)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꾸며낸 이야기인 소설에 대비해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 즉 역사를 대설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역사는 실제 일어난 과거의 사실
신의 섭리에서 인간 이성의 발현으로서양 중세에는 신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적 관점에 역사가 매몰되어 인간역사 자체가 신의 의지에 종속됐습니다. 그러다가 14세기 이후 르네상스 운동이 전개되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신 중심에서 다시 인간이 그 중심에 서게 된 것이지요. 16세기 이후부터는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돼 기독교적 세계관에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17세기 이후에는
여러분은 언제 일기를 쓰나요? 하루에 일어났던 일과를 빠짐없이 모조리 기록하나요, 아니면 있었던 일중에 중요하거나 기억할만한 것, 혹은 뿌듯했던 일을 위주로 쓰나요. 이것은 일기를 쓰는 입장에서도 적용되지만,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는 입장에서도 적용됩니다. 다른 사람의 일기를 읽으면서 “아 그날의 날씨는 맑았구나.”, “아 그날 사건이 일어났구나.”라는 ‘사실’파악을 위주로 읽을 수도
역사라는 말은 통상적으로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어요. 하나는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는 뜻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과거의 사건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도 있지요. 여기에서는 두 가지를 같이 이야기하게 될 거예요. 역사학은 지금이 아닌, 과거의 시간과 공간에서 있었던 일을 들여다보는 분야입니다. 지나간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