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가 지구가 둥글다고 믿은 선구자였고 그래서 아메리카 대륙에 닿을 수 있었다는 신화는 사실이 아닙니다. 중세 후기에 지구 구형론은 이미 일반적인 상식으로 취급되었어요. 여러 후원자들이 콜럼버스의 항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콜럼버스의 계산법이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럽 서쪽으로 출발해 인도에 이르는 거리를 실제의 1/5 정도로 짧게 잡았으니 중세인들의 눈에도 터무니없어 보였던 거죠.
사실 콜럼버스도 자신의 계산이 부정확하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콜럼버스와 그의 부하들을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대단한 일이죠. 모험심도 한 몫을 했겠지만 그들을 움직인 것은 더 직접적인 동기였습니다. 모든 두려움을 잊게 해주는 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얻고 싶은 부가 그것이었죠.
유럽의 상인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없었습니다. 유럽에서 질 좋은 상품이 생산되면 그걸 근처에 가져가서 팔면 될 텐데, 돈이 되는 물건은 대개 이슬람 세계나 중국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중세 유럽은 굳이 이야기하자면 ‘후진국’에 속했고 과학과 기술, 문화와 지식, 사치품은 위부 세계에서 들여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상인들은 배를 타고 선진문명을 방문해 물건을 떼 와야 했습니다. 그냥 가기는 아쉬우니 영국산 모직물이나 이탈리아산 올리브 같은 걸 싣고 가서 팔기도 했지만 돈이 되었던 건 동방에서 들여와 유럽 시장에 파는 물건들이었죠. 향신료 같은 사치품은 생산지에서의 가격보다 수백배 더 비싸게 팔리곤 했어요.
동방세계와의 접촉은 곧 부를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모든 국가가 동등하게 동방과 연결되지는 못했습니다. 이를테면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중세의 지중해 무역과 북방 무역에서 소외되어 있었습니다. 15세기 말, 막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을 몰아내고 국가의 틀을 갖추어가고 있던 이 두 나라는 다른 쪽으로 배를 띄우기로 했습니다. 지구는 둥그니까 남쪽과 서쪽으로 떠나도 아시아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던 거죠. 유럽과 인도를 잇는 바스코 다 가마의 항로 개척(포르투갈)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스페인)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항로는 너무 길었고 서쪽으로 아시아가 아니라 아메리카가 인접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도 노련한 유럽의 상인들은 돈을 벌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아시아에서 물건을 떼 오는 것 말고도, 배를 타고 다니다 흔히 벌어지는 원주민과의 싸움에서 얻은 노예들을 동원해 따뜻한 아프리카의 섬에서 커피를 재배하게 한다든지, 아메리카 문명을 정복하고 금을 빼앗거나 원주민들 동원해 인근 은광에서 은을 채굴하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와 같은 작업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잦고 엄청난 규모의 폭력을 동반했습니다. 다른 세계와의 충돌에서 유럽은 지지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기형적으로 우수했던 군사기술 덕분이었죠. 당시 유럽의 상선은 지구에서 가장 많은 대포를 싣고 다닐 수 있는 배였습니다.
이 시기를 우리는 대항해 시대라고 부릅니다. 누군가에게는 바다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황금을 찾았던 낭만의 시대이고, 누군가에게는 이유로 모른 채 십자가와 총을 들고 온 백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노역을 해야 했던 시대였죠. 이 시기에 유럽인들이 점령한 지역은 후에 식민지로 발전합니다. 식민지는 유럽 문명이 발전하는 데 반드시 필요했던 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무역의 거점을 제공했고, 근대로 넘어가면서 유럽은 점차 다른 문명을 추월하게 됩니다.
유럽인들의 대항해가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의 경제권을 하나로 연결시켰다는 이야기도 해두어야 합니다. 이전에도 문명 간 교류와 무역은 있어왔지만, 이제부터는 무역망이 전 세계적으로 구축되고 훨씬 더 긴밀한 교류가 이뤄지게 됩니다. 유럽인들은 중국에서 비단을 사면서 남아메리카의 볼리비아 광산에서 아프리카 노예들이 주조한 은화로 결제했습니다. 유럽인들이 대서양의 섬들에서 강제 노역을 통해 재배한 커피는 이슬람 세계로 수출되었고 이슬람 상인들은 이를 인도와 페르시아, 그리고 중국에 다시 팔았죠. 아울러 유럽인들은 새로운 세계에서 만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고, 마찬가지로 다른 대륙의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이상한 종교와 무역품을 들고 온 백인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만남은 결국 유럽의 비유럽에 대한 일방적인 지배로 귀결되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