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문화의 재조명, 신고전주의

1592년 이탈리아,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오래된 건물과 회화 작품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인해 용암과 화산재에 파묻혀 있던 그리스 로마의 도시, 폼페이가 발견된 순간이었죠. 우연한 계기로 폼페이의 소재가 밝혀졌지만 당시는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생생하게 보존된 고대 도시를 눈 앞에 두고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죠.

잠시 잊혀졌던 폼페이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1748년부터였습니다.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가 독점 사업으로 폼페이에 대한 발굴을 시작한 것이죠. 발굴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약 2만 명의 주민이 살았던 고대의 도시가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진 것이죠. 두껍게 쌓인 화산재 아래, 기원전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호화로운 저택과 온갖 종류의 집들이 서 있었습니다. 포럼과 원형 극장 등의 커다란 공공건물도 눈에 띄었죠. 건물 내부에는 폭발을 피해 숨은 사람들의 유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으며, 화덕에는 굽고 있던 빵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고대 도시에 관한 이런 놀라운 발견은 유럽 전역을 고고학적인 열기로 들끓게 했습니다. 더불어 그리스 파르테논에서 떼어온 대리석 부조들이 런던에 진열됨으로써 이러한 분위기에 불을 지피게 되었죠. 당대의 시인 존 키츠는 이 대리석 부조를 보고 감탄한 나머지 “인간 지능의 승리이자 그리스인의 위대함”이라고 칭송할 정도였습니다.

권력 관계의 변화도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몫했습니다. 유럽은 1789년을 기점으로 크게 변화했습니다. 바로 프랑스 대혁명 때문이었죠. 주도권을 잡은 부르주아 세력은 화려하고 방탕한 귀족들의 문화와 로코코 예술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이상을 그리스 로마 문화에 투사했습니다. 새로운 고전주의, 이른바 ‘신고전주의’가 시작된 것이죠.

신고전주의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유행했습니다. 신고전주의 양식은 로코코 예술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만큼 정연한 통일과 조화, 표현의 명확성, 형식과 내용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특징입니다. 특히 미술에서는 엄격하고 균형잡힌 구도, 명확한 윤곽, 입체적인 형태의 완성 등을 강조했죠.

건축도 영향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전을 그대로 복붙한 것 같은 건축물이 세계 곳곳에 세워진 것이죠.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개선문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를 본떠서 지은 것이며, 아우스터리츠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파리의 개선문도 고대 그리스 로마의 건축 양식을 따랐죠. 대표적인 인물로는 영국의 아담 형제, 독일의 랑그한스, 프랑스의 샬그랭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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