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Rococo)란 말은 원래 더위를 피하기 위한 석굴이나 분수를 장식하는 데에 쓰이는 자갈 또는 조개 장식 등을 일컫는 ‘로카이유(rocaille)’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루이 15세가 통치한 시기인 1715년부터 1774년까지 파리에서 크게 유행했는데요. 미술사가들은 이것이 17세기 프랑스의 엄격한 바로크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다고 추측합니다. 이후 프랑스 국경을 넘어간 로코코 미술은 18세기 말까지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중부 유럽에서 궁전과 교회를 장식하는데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로코코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로는 ‘페트 갈랑트(Fête galante)’, 즉 우아한 연회란 의미의 그림을 들 수 있습니다. 페트 갈랑트란 야외에서 남녀가 춤을 추거나 음악을 즐기고, 사랑을 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들을 일컫는 말인데요. 이는 루이 14세가 죽고 왕권이 약화되면서, 귀족들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벗어나 파리에 저택을 마련하고 자유분방한 파티를 즐기던 당시의 취향과 부합했죠.
당시의 유명 예술가로는 앙투안느 와토와 프랑수아 부셰,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를 들 수 있습니다. 특히 프라고나르의 <그네>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히는데요. 그에게 이 그림을 주문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아주 세세하게 요구했다고 알려집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그네를 타고, 그 모습을 자신이 누워서 지켜보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한 것이죠. 심지어 사랑하는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연인에게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칠 줄 모르는 자유분방함과 화려한 열정은 로코코 양식을 대표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치와 낭비로 점철되던 당시 귀족들의 문화는 결국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장바티스트시메옹 샤르댕은 이 시기 변화해가던 사회의 모습을 그린 인물이었습니다. 부유한 귀족이나 신화 속 인물을 그리던 여타 화가들과 달리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계급을 그린 것인데요. 이러한 그의 그림은 귀족적 분위기의 로코코 미술 사이에서도 부르주아 시민계급의 모습이 차츰 중요한 탐구 대상으로 부각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