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대 초,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르네상스(Renaissance)란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인데요.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모범으로 삼고, 이를 다시금 되살려내고자 했던 일련의 움직임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는데요. 그럼에도 프랑스어가 붙은 이유는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가 ‘르네상스’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라는 인물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라는 책을 출간하며 그 이름을 공식화해버렸죠.
어찌 됐든, 이러한 변화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유는 당대 정치상황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처럼 왕정이나 봉건제로 운영되는 것이 아닌, 공화정 체제의 도시국가로 운영되고 있었는데요. 이들 도시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무역 거래를 하며 부를 늘려갔습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처럼 신흥 부자가 되어 예술가를 후원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도 이 때문이었죠. 메디치 가문뿐만 아니라 당대 많은 은행가와 사업가들은 미술가와 시인을 후원하고 새로운 작품을 주문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르네상스의 관념이 확고한 기반을 가지게 된 것은 이탈리아 작가인 조토 디본도네 이후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조토는 중세 후기 고딕 미술기와 르네상스 시기가 겹쳐지는 시기에 활동했다고 알려지는데요.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나가던 치마부에가 바위에 양을 그리는 조토의 모습을 발견하곤 그 자리에서 그를 제자로 삼아 피렌체로 데려왔다고 하죠. 그와 관련해서는 이밖에도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치마부에가 그리던 그림 위에 파리를 그렸는데 돌아온 스승이 진짜 파리가 앉은 줄 알고 손을 휘저어 쫓으려 했다는 이야기, 아무런 도구 하나 없이 완벽하게 원을 그려서 교황의 감탄을 자아 냈다는 이야기 등이 그것이죠. 조토의 정확한 생애와 행적 등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미술사에서 그가 르네상스 시대의 첫 인물로 평가받는 데에는 이견이 별로 없습니다. 중세의 미술에서는 느낄 수 없던 그의 작품 속의 깊이감과 기교는 우리가 드디어 새로운 세계로 넘어왔다는 선언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죠.
건축가이자 미술가인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는 로마를 여행하며 유적지를 측량하고 건축물의 형태와 장식들을 스케치했다고 알려지는데요. 그것이 단순히 고대의 건물을 그대로 모방하려는 이유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는 과거의 미술에서 과감히 탈피하고, 새로운 미술 양식을 창조하고자 노력했는데요. 특히 당대에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겨지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일명 두오모 대성당의 돔 지붕을 얹는 도전에 성공하면서 그 명성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거대한 돔의 모습에 놀란 나머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이은 여덟 번째 기적이라고 평하기도 했죠.
평면 위에 공간감과 거리감을 표현하는 ‘원근법’ 역시 그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는 자신이 설계할 건물이 완성된 모습을 미리 보여주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다가 이 방법을 찾아냈다고 하는데요. 다음 장에서 우리가 배우게 될 마사초가 이 방법을 자신의 작품인 ‘성 삼위일체’에 적용하며 회화에도 사용되기 시작했죠. 이후 원근법은 약 500년동안 서구 회화의 기초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