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화의 보루, 플랑드르

오늘날 벨기에와 남부 네덜란드 지역에 해당하는 플랑드르는 종교 개혁 후에도 가톨릭 국가로 남아 있는 곳이었습니다. 덕분에 예술가들은 종교화를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상대적으로 자주 얻을 수 있었는데요. 그곳의 여러 화가 중 가장 주목 받은 인물은 바로 루벤스였습니다.

<십자가가 세워짐>을 보고 있는 네로와 파트라슈

동화 <플랜더스의 개>를 본 분들이라면 네로와 파트라슈가 추운 겨울밤 어느 성당에서 얼어 죽어가면서도 한 화가의 제단화를 바라보던 장면을 기억할 겁니다. 바로 루벤스가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그린 <십자가가 세워짐>이란 그림인데요. 이 그림은 그가 8년에 걸친 이탈리아 여행 직후에 제작한 것으로, 우리가 ‘바로크’라 일컫는 시대 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담한 대각선 구도와 함께, 중앙과 좌우 패널을 독립적인 구성으로 꾸며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만드는 중세 및 르네상스 방식과 달리 세 면을 하나로 이어 웅장하고 광활한 느낌을 선사한 것이죠. 더불어 등장 인물들은 극적이며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그림에 생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루벤스의 솜씨는 17세기 유럽 전역의 상류층 고객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얼마나 끊임 없이 주문이 쏟아졌는지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했고, 주문을 감당하기 위해 수많은 조수들도 그의 곁을 지켰다고 알려집니다. 작업 모습 또한 재빠르고 역동적이어서 그의 작업을 지켜본 한 손님은 ‘루벤스의 붓이 빈 공간 위를 한 번 스치면 화면 전체가 순식간에 그림으로 뒤덮혔다’고 회상하기도 했죠.

〈마르세유에 도착하는 마리 드 메디치〉, 페테르 파울 루벤스, 역사화, 1622-1625년 제작, 루브르 박물관 소장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사례로는 메디치 가문의 마리 드 메디치와 프랑스 왕실의 앙리 4세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한 회화 연작을 들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은 당시 꽤나 화제였다고 합니다. 프랑스 왕실의 입장에서 격이 떨어지는 인물과 결혼이 이뤄졌기 때문인데요. 이는 메디치 가문이 제공하는 지참금으로 어려운 왕실의 재정을 충당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루벤스는 다분히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유에 불과한 이 결혼을 마치 숙명적인 사건처럼 묘사했습니다.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차용해 이야기를 이끌어간 건데요.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의 만남은 마치 올림포스의 신들이 만난 것처럼 묘사되었으며, 결혼의 여신과 아기 천사들이 이를 축하하기 위해 그림 속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알리고 싶었던 마리 드 메디치와 그의 가문 입장에선 더이상 흡족할 수 없는 그림이었죠.

안토니 반 다이크의 초상화

반 다이크 역시 플랑드르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루벤스의 공방에서 조수로 일하기도 했는데요.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독립해 영국 찰스 1세 궁전의 왕실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왕실 초상화를 보다 인간적이고 우아하게 만든 것으로 유명합니다. 초상화 속 인물들은 과하게 포즈를 취하기보단 잠시 그곳에 멈춰진 듯한 느낌으로 그려졌으며, 인물이 조금 더 날씬하게 느껴지도록 머리와 몸통의 비율을 조정했죠. 때론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반 다이크의 초상화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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