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미술의 황금기, 비잔틴 미술

중세 미술의 황금기, 비잔틴 미술

비잔틴(Byzantine) 미술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동방의 도시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뒤에 발전한 양식입니다. 비잔틴은 콘스탄티노플의 원래 명칭이 비잔티움이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데요. 이 양식은 수도 이전 직후인 330년경부터 이 도시가 투르크 족에 의해 멸망한 1453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비잔틴 미술의 특징은 모자이크와 이콘화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우선 모자이크는 국교로 공인된 기독교의 강령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당연히 주제는 대부분 종교와 관련된 것들이었고, 예수는 전지전능한 지배자 혹은 설교자로 표현되었죠. 성자들 역시 황금빛 후광에 둘러싸인 형태로 장대하게 묘사되었습니다. 모자이크의 재료는 반짝이는 유리조각이었으며, 인조 유리를 사용했기 때문에 다양한 색채를 가지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개인 주택의 마루를 장식하던 로마 시대의 모자이크와 달리, 교회의 돔이나 제단 뒤 같은 곳이 주된 설치 장소였죠.

<옥좌의 그리스도> 부분, 800년경, 모자이크, 이스탄불: 하기아 소피아 성당

흔히 ‘성상화’로 번역되는 이콘(icon) 역시 비잔틴 미술의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이콘은 성경의 내용을 묘사한 패널화를 일컫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그림들에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떤 작품은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으며, 또다른 어떤 작품은 향기가 난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죠. 때문에 교회와 일반 가정은 물론, 황실에서도 이를 귀하게 다루었는데요. 메시지 전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관례적이고 양식화된 표현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왼손에는 복음서를 지니고, 오른손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표현하는 판토크라토르(Pantokraor) 형태의 그리스도상이 대표적인 이콘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판토크라토르란 만물을 지배하는자 혹은 전능한 자라는 의미이죠. 이밖에도 성자 혹은 성가족이 그려지는 경우 대부분 엄숙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며, 큰 눈을 하고, 후광을 두른 것이 특징입니다.

한편 이콘화는 과도한 우상화로 인해 100년 넘는 기간동안 제재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종교적 이미지를 마치 실제 신 혹은 부적처럼 숭배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독실한 신자들은 성상을 전쟁터를 가져가기도 했고, 그림에 키스를 너무나도 많이 한 탓에 얼굴이 닳아버린 것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동로마 제국 황제 레오 3세는 726년 이콘 파괴 칙령을 선포했고, 성경의 내용을 묘사한 조형 작품들이 황실 주도로 파괴되었습니다. 십자가와 식물 문양 정도가 제한적으로 사용될 정도였죠. 하지만 이러한 인위적인 제한은 분명 한계가 있었습니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종교 교리를 전파하고 신앙을 북돋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미지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죠. 결국 이콘은 843년에 열린 종교회의에서 재현적인 도상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부흥기를 맞이합니다.

<하기아 소피아> 전경, 537년 건립

건축의 경우 6세기 초반에 세워진 하기아 소피아라는 이름의 성당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당시의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는 400년간 세계 최대의 위용을 자랑한 콘스탄티노플에 걸맞는 건축물을 짓고자 했는데요. 이를 위해 안테미우스와 이시도루스라는 두 수학자에게 설계를 위임했습니다. 하기아 소피아란 신성한 지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요. 로마의 직사각형 바실리카 위에 돔 지붕의 원형 구조를 결합함으로써 양쪽 양식의 장점을 모두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초기 비잔틴 건축 공학이 집결된 이 건물을 본 황제는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노라!”라고 외치며 크게 기뻐했다고 알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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