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바다로 나갔을까?: 대항해 시대
콜럼버스가 지구가 둥글다고 믿은 선구자였고 그래서 아메리카 대륙에 닿을 수 있었다는 신화는 사실이 아닙니다. 중세 후기에 지구 구형론은 이미 일반적인 상식으로 취급되었어요. 여러 후원자들이 콜럼버스의 항해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콜럼버스의 계산법이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럽 서쪽으로 출발해 인도에 이르는 거리를 실제의 1/5 정도로 짧게
중세 사회의 위기와 변화
14세기에 들어서 유럽에는 두 가지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는 농업생산력 저하와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의 급격한 감소였고, 다른 하나는 백년전쟁 등 대규모 전쟁의 발발이었습니다. 이 사건들을 겪으며 유럽은 중세의 토대였던 영주제와 기사 중심의 전투 방식을 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시기의 변화는 유럽이 근대로 나아가는 길과 이어져 있었습니다. 중세의 인구는 1300년경 정점을
중세의 문화: 유럽, 지중해, 아시아
서유럽은 비잔티움 제국이나 아랍 세계보다 문화적으로 크게 뒤쳐져 있었습니다. 전쟁과 이동이 계속되면서 1000년경까지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기도 했었고, 대부분의 지적 자원이 성경 연구에 투자되었던 탓도 있었죠. 중세 초 유럽의 유일한 교육 및 연구 기관이었던 수도원과 교회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화나 실용적인 지식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지식은 대부분 로마 제국의 유산을
중세의 사회: 성직자, 귀족, 농민
앞에서 중세의 정치적 지형이 형성되는 과정과 경제적 토대에 대해 살펴보았죠. 이번에는 중세인들이 어떤 계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각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갔는지 알아봅시다. 중세의 삶은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도 종교적이었습니다. 게르만족 출신의 왕들이 통치 수단으로 기독교를 활용하면서 기독교 국가들이 세워졌었죠. 그와 동시에 교회는 유럽 곳곳에 예배당을 세우고 주교 등 성직자를 파견해 전유럽적인
유럽 중세의 경제 : 농업에서 금융까지
유럽의 중세 초기는 극심한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전쟁과 이동이 끊이지 않았고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이 갖추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10세기가 지나면서 이민족의 침입과 전쟁이 줄어들었고 서유럽의 봉건사회는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농업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곡물 생산량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원래 유럽의 농민들은 매년 경작지의 반을 휴경시키고 나머지 반에서만 농사를 지어야 했어요.
몰락한 제국의 터에서 시작하다
지난 시간에 로마 제국의 멸망을 가속화했던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배웠죠. 이 대이동은 중앙아시아 유목인이었던 훈족이 흑해 북쪽에 정착했던 4세기 후반부터 수많은 게르만 부족들이 서쪽과 남쪽으로 이동한 사건을 말합니다. 5세기 중반에 이르면 로마 시까지 약탈하기에 이르렀죠. 로마인들은 이들을 문명화되지 않은 야만적인 존재로만 묘사했지만, 사실 로마 제국 변방의 이민족들은 이미 여러 경로로 로마의
기독교는 어떻게 유럽의 종교가 되었을까
로마 제국이 지중해 지역을 통합해가는 와중에 로마 제국 전체보다도 서구의 역사에 더 큰 흔적을 남긴 움직임이 시작되었어요. 기독교의 등장이었죠. 기독교의 창시자였던 예수는 기원전 4년에 태어나 1세기 무렵에 활동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려면 그 이전의 유대교 교리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의 유대교 교리가 통일되어 있지는 않지만, 예수가 그들 모두와 분명하게 구분되는
로마 제국의 흥망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게 된 로마는 사회적 부를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로마 공화정 체제에서 일체감을 이루던 평민과 귀족은 이 문제를 두고 다시 분열하게 되었죠. 공화정이 무너지고 제국이 등장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공화정 체제에서 평민들을 대변했던 직책이 있었어요. 바로 호민관이죠. 기원전 133년 호민관이 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유력가들의 라티푼디움(
로마는 어떻게 지중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
이탈리아 반도의 한 도시 국가로 시작했던 로마는 어떻게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 되었을까요? 먼저 지리적 이점을 이야기해 볼 수 있습니다. 트로이아 전쟁에서 패하고 도망친 아이네이스는 이탈리아의 라티움(로마 시 주변의 평야지대)에 정착합니다. 이탈리아 반도는 문명의 형성에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북쪽의 알프스 산맥과 지중해는 자연 방어막 역할을 해주었고 평야가
서구 문명의 요람, 그리스 문명의 발전과 몰락
‘그리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서구 문명의 요람, 인류의 토대, 합리적인 이성과 찬란한 예술 같은 이미지가 아른거립니다. 하지만 빛나는 문명을 건설했던 그리스가 처음부터 대단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리엔트와 이집트 문명이 지중해 세계를 주도하던 때가 있었고 동 지중해의 작은 지역에 불과하던 그리스는 선진문명에서 문물을 수입하며 발전했습니다. 히타이트인들은 제철기술을, 페니키아인들은 문자를, 리디아인들은 화폐주조술을, 이집트인들은
왜 그리스·로마인가?
흔히 그리스·로마 시대를 ‘고전고대’ 라고 표현합니다. 여러분은 ‘고전(classic)’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고전을 읽어야지!" 같은 잔소리가 생각날 수도 있고 "나는 고전영화를 좋아해" 라고 말하던 고루한 취향의 친구가 생각날지도 모르겠네요. 어느 경우에서든 고전은 ‘믿고 따를 수 있는 모범’ 정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네요. 서양인들도 그런 이유에서 그리스·로마
Prologueㅣ왜 서양사를 공부해야 할까?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데 왜 인권을 지켜야 해요? 전염을 막는 게 먼저지 개인정보나 이동의 자유를 운운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서구 국가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바이러스의 유행 초기, 심지어 프랑스의 한 기자가 '한국의 대처는 인권을 침해한다'고 비난해 몰매를 맞기도 했죠. 도대체 서양 사람들은 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