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시대, 바로크 미술과 개척지 로마

바로크(Baroque)란 용어는 ‘일그러진 진주’란 의미의 포루투갈어 ‘바로코(barroco)’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당시는 오늘날과 달리 온전하고 둥근 형태의 진주를 구하기 힘들었는데요. 이런 연유로 바로크는 말하자면 괴상한 것 혹은 뒤틀리고 과장된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시기의 미술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허세 가득했다며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건데요. 이는 오히려 이 시기의 미술이 이전 시대의 미술이 딱딱하게 느껴질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렘브란트나 벨라스케스 등 여러 걸출한 예술가를 배출한 것도 이 시기에 해당하죠.

바로크 시대는 1600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는 유럽은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운동으로 신교 세력이 확산된 시기였습니다. 구교 세력, 즉 가톨릭 교회의 위세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로마 교황청은 자신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아시아와 아메리카 등 신대륙으로 선교사를 보내 새로운 신도들을 얻었으며, 성상을 금지한 신교와 달리 오히려 사치스럽고 화려한 건축물과 예술품을 만들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으려 했습니다. 앞서 말한 바로크 미술의 화려하며 압도적인 특성도 이런 배경에서 연유하죠.

더불어 17세기가 되자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넓은 영토와 인구를 가진 국가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지배자들이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며 절대군주라 부를만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는데요. 이처럼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군주들 역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방법으로 예술을 선택했습니다.

보다 넓은 범위로 지역을 넓힌 것도 바로크 예술의 특징입니다. 르네상스의 경우 주로 북부 이탈리아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했는데요. 이와 달리, 바로크 예술은 유럽 전역에 걸쳐 그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르네상스의 성과를 유럽 여러 나라가 흡수하며 나타나된 양식이 바로 바로크 예술이었기 때문이죠. 또한 바로크 미술 양식은 유럽에 퍼져나가는 동안 각국의 고유한 양식과 문화환경을 만나 각각의 독특한 특징을 지니게 됩니다.

그럼 로마로 돌아가보죠. 당시 로마에는 르네상스 시대에 발달한 회화 기법을 가르치는 미술 아카데미가 존재했는데요. 이곳의 존재로 인해 화가들은 누구보다 인체를 능숙하게 묘사할 수 있었으며, 원근법과 같은 새로운 기법에도 익숙할 수 있었죠. 그러나 질서와 절제, 균형미를 강조하던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과 달리,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보다 역동적이며 격정적인 스타일을 선보이고자 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화가 카라바조와 조각가 베르니니 등을 들 수 있죠.

카라바조, <의심하는 토마스>,107x146cm, 1602-1603년경

카라바조는 종교화에서 두드러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성스럽고 이상적이기만 했던 이전 시대의 작품들과 달리, 사실적이고 현실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작품을 직접 살펴보며 이야기 나눠보죠. 우선 첫 번째 작품은 <의심하는 토마스(Thomas)>입니다. 이 그림은 종종 ‘의심하는 도마’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요. 이는 개신교 성경에서 토마스를 도마라고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는 이외에도 종종 있습니다. 이집트(Egypt)는 애굽으로, 네부카드네자르(Nebuchadnezzar)는 느부갓네살로 번역된 식이죠. 어찌 됐든 그림 속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해 제자들 앞에 나타납니다. 물론 제자들은 크게 기뻐했는데요. 그 자리에 없었던 토마스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당시 로마 병사가 창으로 찔러 생긴 옆구리의 상처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그의 부활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죠. 며칠 뒤, 예수는 토마스에게로 찾아와 그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도록 합니다. 그제서야 토마스는 놀라며 예수의 부활을 인정하게 되죠. 자, 그림을 보니 어떤가요? 고결하며 위엄 있어야 할 사도들은 늙은 노동자로 묘사되었으며, 예수의 모습 역시 매우 사실적이죠.

카라바조, <성 바울의 개종>, 175x230cm, 1600년

두 번째 그림인 <성 바울의 개종>도 마찬가지입니다. 성 바울은 원래 악동이었다고 알려집니다. 깡마른데다가 참을성이라곤 없는 성격이었죠. 그런 그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요. 이를 위해 말을 타고 가던 중 놀라운 광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의 앞에 그리스도가 나타난 것이죠. 그리고 그 광경에 놀란 바울은 말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이전 시대의 화가들은 이 이야기를 묘사할 때 대개 그리스도가 천사들에 둘러싸여 하늘에서 바울을 부르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카라바조는 달랐습니다. 과감하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생략하고 바울이 땅바닥에 떨어져 놀라고 있는 장면만을 묘사한 것이죠. 말의 힘줄과 바울의 갑옷 등이 사실적이며 생동감 있게 그려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더불어 그는 극적인 빛의 대조를 통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어두운 배경이 깔림으로 인해 표현하고자 하는 사건을 더욱 강조한 것이죠. 이런 그의 스타일을 우리는 ‘일 테네브로소(il tenebroso)’, 즉 암흑양식이라고 부릅니다.

베르니니, <다빗>, 높이 170cm, 1623년

베르니니는 조각가이자 건축가, 화가, 극작가, 무대 디자이너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조각을 하다가 코미디와 오페라 각본을 쓰기도 했으며, 분수를 만들거나 성당 실내 디자인에 참여하기도 했죠. 그만큼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던 겁니다.

베르니니 역시 이전 시대와는 다른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가 25살 때 조각한 <다윗>상이 대표적인데요. 이전 시대와의 차이점은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작가인 미켈란젤로의 다윗상과 비교하면 두드러집니다. 정적이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려 노력한 미켈란젤로와 달리, 베르니니의 다윗은 생동감 넘치는 모습입니다. 입을 꼭 다문 채로 골리앗을 향해 막 돌을 집어 던지려는 듯 몸을 비틀고 있는데요. 이처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동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 그의 조각이 가진 특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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