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미술의 시작과 관련해선 오랜 기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특히 한동안은 고대 로마의 문인이자 정치인이었던 플리니우스의 낭만적인 기록이 곧잘 인용되곤 했는데요. 그는 자신의 책 <박물지>를 통해 다음과 같은 전설을 소개했습니다. 조셉 라이트, <코린토스의 소녀>, 1782-1785년경, 캔버스에 유채, 106.3x130.8cm기원전 600년 경, 고대 그리스 지역인
미술의 시작과 관련해선 오랜 기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특히 한동안은 고대 로마의 문인이자 정치인이었던 플리니우스의 낭만적인 기록이 곧잘 인용되곤 했는데요. 그는 자신의 책 <박물지>를 통해 다음과 같은 전설을 소개했습니다. 조셉 라이트, <코린토스의 소녀>, 1782-1785년경, 캔버스에 유채, 106.3x130.8cm기원전 600년 경, 고대 그리스 지역인
로코코(Rococo)란 말은 원래 더위를 피하기 위한 석굴이나 분수를 장식하는 데에 쓰이는 자갈 또는 조개 장식 등을 일컫는 ‘로카이유(rocaille)’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루이 15세가 통치한 시기인 1715년부터 1774년까지 파리에서 크게 유행했는데요. 미술사가들은 이것이 17세기 프랑스의 엄격한 바로크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다고 추측합니다. 이후 프랑스 국경을 넘어간 로코코 미술은
프랑스의 바로크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의 통치자 중 한 명인 루이 14세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로 유명한 그는 국가의 권위를 옹호하는 동시에 통치자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했는데요. 자신의 군주권과 왕국의 영광을 과시하기 위해 예술에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는 문화와 예술을 자신의 틀에 맞춰 관리하고자 ‘아카데미(
바로크 시대에는 유명한 궁정화가가 많습니다. 큰 규모의 국가가 생겨나면서 예술가들 역시 이러한 나라의 군주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인데요. 우리가 앞서 살펴본 반 다이크 역시 영국 찰스 1세 시절 궁정화가로 활동하기도 했죠. 하지만 궁정화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이 사람, 디에고 벨라스케스를 선택해야 할 겁니다. 그는 10대에 이미 완벽한 기교를
네덜란드의 바로크 예술은 1610년부터 1670년 사이에 절정을 이뤘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인접국인 플랑드르와 다르게 신교가 지배적인 국가였는데요. 이로 인해 가톨릭 지역의 예술가들처럼 교회의 주문을 받을 수 없어 새로운 미술 장르가 개발될 필요가 생겨났습니다. 더불어 당시 네덜란드에선 시민계급이 주도하는 새로운 정치 체제가 완성되었는데요. 그 결과로 왕실이나 귀족 계급 같은 기존의 주요 후원자들은
오늘날 벨기에와 남부 네덜란드 지역에 해당하는 플랑드르는 종교 개혁 후에도 가톨릭 국가로 남아 있는 곳이었습니다. 덕분에 예술가들은 종교화를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상대적으로 자주 얻을 수 있었는데요. 그곳의 여러 화가 중 가장 주목 받은 인물은 바로 루벤스였습니다. <십자가가 세워짐>을 보고 있는 네로와 파트라슈동화 <플랜더스의 개>
바로크(Baroque)란 용어는 ‘일그러진 진주’란 의미의 포루투갈어 ‘바로코(barroco)’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당시는 오늘날과 달리 온전하고 둥근 형태의 진주를 구하기 힘들었는데요. 이런 연유로 바로크는 말하자면 괴상한 것 혹은 뒤틀리고 과장된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 시기의 미술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허세 가득했다며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던 건데요.
우리는 지금까지 초기부터 전성기까지의 르네상스를 만나보았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나요? 바로 이탈리아, 그것도 피렌체나 로마 같은 몇몇 도시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는 점이죠. 그렇다면 이탈리아를 벗어난 북유럽의 예술은 변화나 발전이 없었던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유럽의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와는 조금 느낌이 다릅니다.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기를 거치며
초기 르네상스에 마사초와 도나텔로, 보티첼리가 있었다면 전성기 르네상스에는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있었습니다. 우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형 인간, 즉 다방면으로 재능과 지혜를 갖춘 이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입니다. 여러 걸작을 남긴 것과 더불어 30구 이상의 시체를 해부해 인체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했으며, 운하와 중앙 난방 시설을 설계했으며, 인쇄기와 망원경, 휴대용 폭탄 등을 발명하기도
브루넬레스키에 이어 초기 르네상스를 이끈 인물로는 마사초와 도나텔로, 보티첼리 세 사람을 꼽을 수 있습니다. 마사초는 워낙 어리숙하고 지저분했던 탓에 ‘어줍은 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요. 미술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마치 고딕 건물의 기둥처럼 인물을 묘사하던 기존과 달리 실제와 유사한 형태로 인간을 묘사했습니다. 명암이 일관되게 표현되었고, 등장인물의 개성
1400년대 초,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르네상스(Renaissance)란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인데요.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모범으로 삼고, 이를 다시금 되살려내고자 했던 일련의 움직임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는데요. 그럼에도 프랑스어가 붙은 이유는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가 ‘르네상스’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라는
중세시대 기독교 미술은 12세기에 등장한 고딕(Gothic) 미술로 절정을 이룹니다. 고딕이라는 이름은 후기 르네상스 미술가들이 자신들의 이전 시대 작품이 너무 소박해서 미개인이나 고트족이 만든 것이 분명하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인데요. 조롱조에 가까운 표현이지만 오늘날까지도 그 이름이 관행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시기 유럽은 도시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집이자 생활의 중심지인 성당이
비잔틴 미술 이후, 11세기 무렵부터 13세기 초까지 번성한 미술 양식을 우리는 로마네스크(Romanesque)라고 부릅니다. 11세기를 전후해 유럽 각지의 수도원들이 문화적 구심점을 하게 되었으며, 정치적 안정과 함께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함께 나타난 양식이죠. 원래 이 용어는 주로 건축에서 사용되었는데요. 이는 수도원 조직이 자신들의 높아진 권위와 역할에 맞는 건축물을 찾게 되었기